2011년 12월호

“KTX-산천, 승객 태우고 ‘고장 테스트’하다 멈춰 섰다”

위기의 한국고속철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1-11-23 12: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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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4일 멈춰 선 707열차, 원인은 개선 중인 모터블록 계전기 고장
    • 승객 수백 명 환승…“시험장치 테스트는 심야 시운전해야”
    • 전문가 “안전 불감증” vs 코레일·로템 “대수롭지 않다”
    • 독일 기술진이 KTX-산천 고장 원인 규명… 국산 기술력 ‘머쓱’
    • 추가 50량은 출고검사도 못해… 로템은 월 70억원 물어낼 판
    • KTX-산천 ‘양호’ 판정한 제작·성능 검사기관 무용론 대두
    • 입찰위원, “입찰 당시 ‘한국형 원한다’ 언질 있었다”
    “KTX-산천, 승객 태우고 ‘고장 테스트’하다 멈춰 섰다”

    국내외 기술진이 고장 원인 규명에 나선 KTX-산천. 제작 검사에서는 전 항목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다.

    잦은 고장으로 국민의 질타를 받은 한국형 고속열차 ‘KTX-산천’ 문제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로템의 기술력 부족’ vs ‘코레일의 잦은 설계변경 요구와 촉박한 납기’라는, 고장원인을 놓고 벌인 양측 공방이 1라운드였다면, 2라운드는 추가 도입 예정인 KTX-산천 50량을 놓고 진행 중이다. 코레일은 추가 50량만큼은 완벽한 열차를 받겠다고 통보했고, ㈜현대로템(이하 로템)은 외국 기술진까지 불러들여 고장 원인 규명에 나섰다. 그러나 11월4일 용산발 여수행 KTX-산천 707열차가 천안아산역 인근에 또 멈춰 서면서, KTX-산천의 기술력에 대한 의문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신동아’는 10월호 ‘승객 싣고 시운전하는 국산 고속철, 올 스톱 고려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기사를 통해 KTX-산천의 문제점을 긴급 진단했다. 충분한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납기(36개월)를 맞추다보니 제작·설계 결함이 많았고, 동시에 시운전 기간이 짧아 보완할 시간도 부족했다는 지적이었다. ‘한국형 고속열차 밀어주기’와 관련해 입찰 과정에서의 의혹도 제기했다. 이 기사는 9월23일 코레일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감사 자료로 활용됐다. 국감 당시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제작사(로템)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의원님, 제작사 기술력의 전반적인 부족 이런 것을 우리가 모두 주의를 환기시켜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사에서 사고, 고장 원인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 그런 실정입니다.”

    허 사장은 앞서 KTX-산천에서 발생한 ‘견인 중 제동’ 같은 중요 결함 6건은 로템이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X-산천 4호와 7호에서 각각 발생한 ‘견인 중 제동’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데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걸리는 것으로, 이럴 경우 열차가 갑자기 서게 된다. 결국 운용사(코레일)와 제작사(로템) 간 공방은 12월 말 도입 예정인 KTX-산천 50량 인수 문제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예정대로라면 이 50량은 이미 출고검사를 끝내고 시운전에 나서야 하지만, 현재 완성차 테스트도 받지 않았다.

    KTX-산천은 로템이 2005년 11월 호남·전라선 KTX 도입 계획에 따른 공개입찰에 참여해, 2006년 6월 100량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용화에 이른다. 이후 90량, 50량 등 3회에 걸쳐 240량 공급 계약을 맺었는데, 이 중 190량은 현재 운행 중이다. 50량은 12월30일 도입예정이었다.



    KTX-산천 50량으로 ‘불똥’

    “KTX-산천, 승객 태우고 ‘고장 테스트’하다 멈춰 섰다”

    9월23일 국회 국토해양위의 코레일 국정감사에 허준영 사장(왼쪽)과 (주)현대로템 이민호 사장이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기다리고 있다.

    로템은 난감한 표정이다. 이미 납품한 열차도 납기 지연으로 814억원의 지체상금을 물었는데, 50량의 출고마저 늦어지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지체상금을 또 물어야 한다. 로템은 ‘신동아’의 질의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난 6월 말 승인된 절차에 따라 50량의 생산을 완료했다. 코레일은 지난 9월7일 창원공장에서 출고검사를 시행하던 중 ‘서류미비’를 이유로 검사인원을 철수시켜 지금까지 출고검사를 받지 못했다. 12월30일까지 인도하지 않으면 하루 2억3500만원, 월 70억5000만원을 물어야 한다.”

    코레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코레일 엔지니어링처 관계자의 주장이다.

    “출고검사 요청이 오면 14일 내에 가서 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9월7일) 가서 보니 출고검사에 앞서 받아야 하는 제작검사확인서도 받지 않았다. ‘서류미비’는 제작검사기관의 검사확인서를 말하는데, 법적으로도 확인서가 있어야 출고검사를 할 수 있다. 앞서 인수한 90량도 그렇게 했다.”

    로템은 “반드시 확인서가 있어야만 출고검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90량 출고검사를 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검사를 받았다”며 평행선을 달린다.

    이러한 양측 주장 이면에는 지난 수개월간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집중 비판을 받은 ‘KTX-산천 트라우마’가 숨어 있다. ‘신동아’ 취재 결과, 코레일은 지난 9월 운행 중인 KTX-산천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이 완벽하게 개선돼야 50량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로템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제점을 알았으니 인수하기 전에 완벽히 개선된 차량을 받자는 취지에서다.

    “가능한 한 KTX-산천의 불량요소를 모두 점검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신뢰성을 확보하라는 주문이다. 기존 도입한 190량에서 발생한 문제가 도입 예정인 50량에서 또 생기면 곤란하다. 로템은 별도로 국내외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진을 꾸려 설계 오류와 고장 원인을 찾고 있다. 일부 개선된 점도 있지만, ‘견인 후 제동’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문제점 개선돼야 50량 받겠다”

    정인수 코레일 기술본부 차량기술단장의 설명대로라면, 50량 도입일은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 로템은 외부기술진과 함께 견인 중 제동, 신호장치 고장, 난방접촉기 불량 등 문제점에 대한 개선 사항을 매주 코레일에 통보하고 있다.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로템이 해결하지 못한 KTX-산천의 고장 원인규명과 설계입증을 외국(독일) 기술진이 하고 있다는 점. 외국 기술진의 손을 빌려 설계 잘못과 고장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인데, 그동안 수천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순수 국내기술을 강조한 로템으로서는 체면을 구겼다. 코레일은 로템이 자발적으로, 로템은 코레일 권고로 독일 기술진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철도 관계자 A씨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세계 네 번째로 고속철도를 개발했다고 자랑한 로템으로서는 ‘해외 연구진의 검증’이 부담이었을 거다. 자신들이 규명하지 못한 고장 원인을 외국 기술진이 밝혀 해결하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 부족을 자인한 셈이다. 기술 유출 문제도 신경 쓰일 것이다. 코레일이 ‘깐깐하게’ 나오니까 고육지책 아니겠나. 50량 인계와 호남고속차량 입찰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장원인을 찾아야 했으니까.”

    2014년 도입 예정인 호남선 고속차량 250량에 대한 입찰은 11월17일까지 국제 경쟁입찰로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KTX-산천 고장 원인을 찾고 있는 국내외 기술진은 주요 장치의 문제점을 찾아냈을까? 코레일과 로템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현재 ‘견인 중 제동’은 지난 5월 소프트웨어 수정으로 동일한 고장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로템은 고장 발생 원인이 이물질 접촉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물질 접촉을 막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호장치와 난방접촉기 등은 고장 원인을 파악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모니터링 중이다. 일정 테스트를 거쳐 안전성이 검증되면 기존 KTX-산천 전 차량에 확대 적용하고, 이미 제작된 50량에도 바꿔 적용해 인수한다는 것이 코레일과 로템의 복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모니터링은 더 큰 문제를 부를 수 있다. 고장 개선 중인 장치를, 승객을 태우고 정상 운행 중인 KTX-산천 차량에 적용해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시험용 장치’를 상업 운행 열차에 장착해 시험하다가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처음 적용하는 만큼 시스템 불안정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

    실제 용산발 여수행 KTX-산천 707열차가 11월4일 천안아산역 인근에 멈춰 선 사고도, 새 장치를 시험 적용해 운행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신동아’ 취재 결과 처음 확인됐다. 문제의 장치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고장을 일으킨 모터블록. 이 장치의 문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접지계전기(모터블록 고장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추가해 설치했는데, 이 접지계전기가 고장을 일으켜 속력이 준 것이다. 당시 707열차는 인근 서대전역으로 운행한 뒤 승객을 대기 열차에 갈아타게 했다. 다행히 19분 지연 도착으로 마무리됐지만, 수백 명의 승객은 영문도 모른 채 불편을 겪어야 했다. 사고 열차 외에도 이 장치를 설치해 시험 적용 중인 열차(1편성)는 또 있으며, 다른 시험 장치들도 모니터링 중이다.

    707열차 테스트 중 고장

    “(테스트 중인 모터블록 접지계전기 고장이) 사실이라면 안전 불감증이 우려된다. 고속열차는 100% 안전하다고 해도 운행 중 고장이 생겨 안정화가 필요한데, 시험 개발용 제품을 승객을 태운 차량에서 모니터링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최대한 빨리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고 보지만, 모니터링은 승객이 없는 새벽 시간에 해야 했다. 접지계전기 고장이 자칫 모터블록 전체 성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성능 시험과 시운전 과정에서 걸러냈어야 했는데 그때 제대로 못한 거 같다.”

    대학교수 B씨의 지적과 달리 정작 제작·운용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로템 측은 “새로 단 접지계전기는 기존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코레일의 승인을 얻어 장착한 장치”라며 코레일로 화살을 돌렸고, 코레일은 “접지계전기가 고장 나면 모터블록을 차단해 열차 속력이 느려지거나 서게 될 뿐 크리티컬한(중대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또 선로 검사 등으로 야간 테스트 운행이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이유를 댔지만, 시속 300㎞ 이상의 속도를 감안하면 장치 테스트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쨌든 문제를 찾아 개선 중인 장치도 이처럼 다시 고장이 발생하면 남은 50량에 대한 출고 일정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출고일을 늦추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코레일 안팎에서 ‘괘씸죄’라는 해석과, ‘하자보증 기간(3년)을 감안한 노력’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괘씸죄는 그동안 KTX-산천 고장 원인을 ‘코레일의 잦은 설계변경 요구’라고 주장한 로템을 ‘길들이는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하자보증 기간 내에 교체한 문제의 장치는 교체 시점부터 보증기간이 다시 적용(3년)되기 때문에 코레일로서는 수리비용 등을 감안하면 꼼꼼히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레일이 제기한 법정 소송과 관련해서는 양측 모두 ‘합의’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로템 측은 “차량 영업중지에 따른 손실비용 배상 범위와 산정기준은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협의 과정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고, 코레일은 “가능하면 법적 판단까지 가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로템과 협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코레일은 지난 8월 로템을 상대로 KTX-산천의 운행 지연과 요금 반환에 따른 손실금액(2억5864만원)과 영업 중지에 따른 손실금액(8억6200만원) 등 모두 11억2000여만원의 피해구상 청구 소송을 냈다. 시간이 지나면 영업중지에 따른 손실금액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소송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코레일 역시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닐 듯하다. 코레일이 로템에 지연금 배상을 촉구한 시기는 지난 2월. 2010년에만 28건의 크고 작은 고장이 있었지만 1년여가 지나 대응한 것이다. 코레일 측은 “2010년에는 KTX-산천의 안정화 기간으로 받아들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 문제를 담당할 부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2010년 말 수도권정비단에서 이 업무를 맡게 됐다”고 해명한다. KTX-산천의 잦은 고장으로 국민의 우려가 팽배하던 지난 8월, 코레일은 ‘소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장 책임’을 로템으로 돌리고, 조속한 원인 규명을 압박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카드였지만, 코레일 역시 잦은 고장에 따른 심각성은 1년 뒤에야 인식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KTX-산천 사태를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점은 검사기관의 신뢰성과 관련법 미비다. 고속열차가 상업운전을 하기까지는 설계도면 승인(코레일)부터 철도안전법에 의한 제작검사(한국철도차량엔지니어링), 출고검사(코레일), 성능검사(철도기술연구원), 종합 시운전까지 여러 차례 검사 및 확인 단계를 거친다. 그 수많은 전문검사 기관의 검사를 통과했는데도 왜 고장이 잦을까. 지금도 고장 원인이 파악되지 못하는 장치가 어떻게 검사를 통과했을까.

    코레일이 “KTX-산천은 차량 인수 이후에 문제점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외부 기관에서 각종 시험을 통과해 증명서까지 첨부했으니 기술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KTX-산천의 검사확인서에는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돼 있다.

    “검사 통과 후 문제… 난감하다”

    ‘신동아’가 입수한 (사)한국철도차량엔지니어링의 검정증명서에는 성능 및 작동검사, 품질검사, 조립검사, 시운전 검사 등 전 항목에 걸쳐 ‘양호’ 판정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코레일이 제시한 도면과 사양서, 계약서의 모든 조건에 부합된다”고 검정증명서 발급 이유를 명기했다. 다만 일부 차량에 한해 기타 항목에 ‘방송장치 일부 항목 보완 진행 중’이라고 표기된 게 전부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성능시험 증명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코레일이 민주당 강기정 의원(광주 북갑·국토해양위)에게 제출한 ‘KTX 산천 시험운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조치결과’ 문건에 따르면 KTX-산천의 시험 운행 중 발견된 설계·제작 결함은 모두 83건이었다. 이 중 설계 결함이 36건, 제작 결함이 30건, 설계·제작 결함이 7건, 성능문제가 3건 등이었다. 시나브로 검사기관의 검증 능력에 의문이 드는 대목. 이에 대해 한 검사기관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검사를 통과했는데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기술이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 규정으로 검사항목을 명문화했다고 모든 것을 커버하는 건 아니다. 검사 항목은 최소한을 규정한 거다. 지난 5월 발견된 모터감속기 용접부 균열 문제는 제작·성능검사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운행하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시험이나 검사에서 놓친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확인하고 있다. 제작과 검사 기술력을 높여 하나하나 고쳐나가야 할 것 같다.”

    코레일 역시 비슷한 주장이다. 코레일은 로템에서 제출한 설명서 314종, 설계도 3138매를 승인했다.

    “예를 들어 철도차량 에어컨에 어떤 성능이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면 제작사(로템)는 요구사항에 맞게 준비를 한다. 우리가 하는 설계승인은 그때 중국산 싸구려 제품을 쓰지 않았나 하고 살펴보는 수준이다. 사실 처음 만든 사람(제작사)이 아니면 잘 모른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견인 중 제동’ 문제도 전기선이 단락돼 문제를 일으켰다면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검사기관의 잘못일 수 있다. 초기 KTX-산천에 적용된 팬터그라프(전기공급 장치)는 중편편성(10량의 두 열차를 이음) 시운전을 할 때 문제가 생겨 제품을 모두 교체하기도 했다. 검사 기술력과 검사항목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최근 고속열차 검정기관 지정을 취소하라는 의견을 국토해양부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운전도 마찬가지다. 철도안전법 ‘철도차량성능시험지침’에 따르면 예비주행은 초도편성 5000㎞ 이상, 양산차량은 1000㎞ 이상 하도록 돼 있지만 이러한 거리 역시 ‘경험칙’에 의해 최소 거리를 규정한 것일 뿐이다. 복수의 철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기대한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현재 개정 철도안전법이 법제처 심사 중이다. 개정안은 제작사들이 계약에 의해 제작·검증을 책임지고, 구매자는 계약대로 돼 있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게 핵심이다. 현재처럼 정부와 검증기관이 고속열차를 검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작사가 새 제품을 쓸 때 스스로 내구성을 입증하지 않으면 구매자는 승인을 하지 않으면 된다. 제작사는 분명 좋은 제품을 쓸 것이다.”

    이에 대해 로템은 답변서를 통해 지금까지의 KTX-산천 문제는 ‘우리만의 잘못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로템 “우리 잘못만은 아니다”

    “KTX-산천, 승객 태우고 ‘고장 테스트’하다 멈춰 섰다”

    2005년 KTX 입찰 기술평가 당시 로템의 기술력 문제를 지적한 권성렬 부경대 교수.

    “KTX-산천의 문제는 차량 개발 이후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험 부족과 관련된 기술이 대부분이다. 국내 운영환경에 적합한 선로와 가선, 운영조건 등에 관한 경험을 축적해 제작 설계에 반영돼야 완성된 고속철 기술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단순 설계와 제작기술뿐 아니라 전반적인 고속철 기술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입찰 평가에서는 이러한 운영과정의 문제에 대비해 운영적합성을 비중 있게 평가하도록 돼 있다. 이 대목에서 ‘로템이 어떻게 낙찰받았을까’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기 마련. 당시 ‘한국형 고속열차’인 로템 차량을 밀어주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입찰 평가위원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권성렬 부경대 교수(전기공학과)는 당시 기술평가위원 17명 중 유일하게 로템에 낮은 점수를 줬다. 그는 로템의 운영 시스템과 운영 능력에 대한 경험 부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로템과 프랑스 알스톰사(‘유코레일’이라는 한국 에이전시를 세워 입찰 참여). 기술제안서 비율 80%(가격제안서는 20%)가 낙찰에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기술평가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2005년 11월29일부터 2박3일간 대전의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17명이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2.5t 분량의 자료를 모두 검토했다. 두 회사 관계자가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질의응답도 했다. 사업수행계획, 운영환경 적합성, 신호시스템 등 평가배점 기준에 따라 모든 데이터를 검증했다. 기술평가 배점 기준은 완벽에 가까웠다. 엄격한 기술표준에 따르도록 했다.”

    ▼ 평가위원 중 유일하게 로템에 낮은 점수를 줬는데….

    “그런가? 어떻게 알았나?”

    기자는 사전 입수한 입찰 당시 기술평가 보고서와 공고문, 배점기준표 등을 보여줬다.

    “평가위원으로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자료를 가져온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하겠다. 이해해달라. 먼저 사업수행실적과 운영적합성, 신호시스템 등 종합적으로 평가해봤더니 유코레일이 더 뛰어났다. 로템은 차량 조립 능력은 좋았지만, 이 복잡한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선 인식이 낮았다. 각 열차 차량 시스템 뿐 아니라 전체 차량이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이런 인식이 낮았던 거다. ‘폴트 톨러런트 시스템(Fault-Tole-rant System)’이 갖춰졌느냐?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컴퓨터 전원이 끊어지거나 교란되는 것을 막아줘 컴퓨터 에러를 막아주는 보호기기)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운행 중 전자제동제어장치(ECU) 같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ECU에 문제가 생기면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시속 300㎞로 달리면 앞이 안 보이고, 비상제동하면 3.3㎞를 달려 서게 된다. 이런 차량 시스템과 제어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점수가 낮은 이유다.”

    로템은 시스템 운영 인식 낮아…잦은 고장 이유

    ‘폴트 톨러런트 시스템’은 컴퓨터 가동 중 일부에 고장이 발생해도 자동적으로 보완, 수정해 시스템 기능정지를 막는 온라인 시스템으로, 병원 등 시스템 기능이 정지돼서는 안 될 곳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 채택돼 있다. 그의 지적처럼, KTX-산천은 1월14일과 25일 ECU 고장으로 열차가 멈춰 서는 등 시스템 불안정으로 인한 고장이 많이 발생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코레일은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기존 KTX-1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덧붙였다.

    ▼ KTX-1의 문제점 개선이라면?

    “여럿 있었다. 바닥재를 고무가 아닌 불연성 재료를 요구했다. 유코레일은 KTX-1과 같은 재료를 쓰겠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인 유코레일 전무는 프레젠테이션에서 ‘KTX-1 바닥재는 유럽에서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반발했다. 로템 측 관계자는 ‘G7 개발과정에 많은 돈을 들였고 국내 200여 개 기관이 함께 산학연구를 하고 있다’고 국내기술을 강조했다.”

    ▼ 기술평가 당시 평가와 관련한 지침이 있었나?

    “기술평가를 하게 되면 그 기관에서 전체적인 설명을 한다. 먼저 기관(발주처) 이익,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그때도 그랬다.”

    ▼ 국가의 이익이라면 ‘한국형’인 로템 낙찰을 염두에 둔 말인가?

    “‘신동아’ 10월호 기사를 봤다. 기사에 나온 대로다. 당시는 국가적으로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열차(HSR-350X)를 밀어주는 분위기였다. 한국형 고속열차는 2007년까지 시스템 기능과 성능을 개선 중이었는데, 예정 기간보다 앞당겨 입찰에 참여해 조금 의아했다.”

    ‘신동아’ 10월호는 KTX-산천 결함의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복수의 철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당시 로템 낙찰을 위한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 기사에 나온 대로라면, 기술평가 당시에도 로템을 밀어주는 분위기였나?

    “점심 식사를 하다가 한 평가위원이 발주처(코레일) 관계자에게 물었다. ‘기관과 국가의 이익’이 어떤 의미냐고. 그랬더니 그 관계자는 ‘우리는 좋은 차를 원하는 게 아니다. 한국형을 원한다’고 했다.”

    ▼ 그 말이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보나?

    “나는 오히려 로템에 낮은 점수를 준 사람이다. 웃어 넘겼다.”

    기술평가 당시 평가위원 17명(코레일 소속 6명, 외부인사 11명)의 평균 점수는 로템이 75.3점, 유코레일(알스톰의 한국 에이전시) 63.8점이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유코레일에 높은 점수(74점, 로템은 71.9점)를 줬다.

    ▼ 최근 KTX-산천 안전대책을 어떻게 보나?

    “수동적이라는 느낌이다. 국토부가 내놓은 안전대책을 보면 프랑스 전문교육기관(SNCF)으로부터 전문교관 및 운영교육 과정 이수자를 고속철 기술력 향상에 활용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전문교육 이수자는 146명(차량 54명, 전기 54명, 시설 38명)이다. 이 인원 가지고는 시스템 맞추기도 어렵다. 시운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다 해봐야 한다. 다만 높은 국산화율과 비교적 빠르게 개발·제작을 진행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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