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에디슨과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

  • 예상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안중기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입력2012-04-20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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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경제는 반세기 만에 비약적 성장을 했지만 향후 ‘먹을거리’는 늘 걱정이다. 중국은 쉼 없이 부상하고 세계경제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출현이 절실하다. 어떤 인물이 21세기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가. 2012년 3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호모 디아볼루스(Homo-diabolus)가 세상을 바꾼다’에 그 답이 있다.<편집자>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스티브 잡스(왼쪽)와 에디슨.

    2011년 11월 시사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 따라가기 전략에 따른 지난 50여 년간의 한국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략을 버리고 혁신을 통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 만에 절대빈곤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나라로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되고 있지만, 기존의 다른 선진국이나 기업이 이룩해놓은 성과를 따라가는 형식에 불과했으므로 지금부터는 스스로 나아갈 길을 독창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즉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는 ‘킬러 상품(killer product)’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39%(2010년 기준)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국가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은 74개(2009년 기준)로 세계 13위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이 객관적 능력을 갖췄지만 세계인을 사로잡을 제품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이 처한 딜레마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혁신가의 출현이 절대적이다. 토머스 에디슨, 스티브 잡스 등과 같이 자본주의의 전환기에 등장해 나라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 말이다.

    MIT가 매년 발표하는 ‘레멜슨-MIT 발명지수’ 2012년판에 따르면 미국 젊은이들은 가장 위대한 혁신가로 에디슨(52%)과 잡스(24%)를 꼽았다. 그 뒤는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벨(10%)과 퀴리 부인(5%),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3%) 등이 이었다.

    에디슨과 잡스는 자본주의 전환기에 이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에디슨은 전구, 축음기 등 제2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제품들을 발명했고, 잡스는 PC와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 정보화 시대를 앞당겼다.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에 버금가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곧 에디슨이나 잡스에 비견되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혀 새로운 제품, 산업, 조직, 경영방식, 인력 등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가장 위대한 발명가이자 가장 한심한 사업가”

    2011년 10월 ‘뉴욕타임스’는 에디슨과 잡스가 가진 독특한 특징에 대해 보도했다. 이들은 △공식적 교육을 거부했고 △거대한 규모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형상화하는 능력을 보유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며 △직원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못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

    이들은 어린 시절 말썽꾸러기의 자질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선생이 교육을 포기해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중퇴다. 잡스는 대학교육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대학 1학년 때 자퇴했다. 에디슨과 잡스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했고, 그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수시로 해고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바람직하지 못한 경영인’이다. 두 사람은 기업가의 사회적 의무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기부행위에도 인색했다.

    에디슨과 잡스는 평생을 말썽꾸러기로 살았다는 점에서 ‘말썽꾸러기형 인간(호모 디아볼루스, Homo-diabolus)’라고 분류할 수 있다. ‘호모 디아볼루스’란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Homo)에 말썽꾸러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데빌(devil)의 라틴어인 디아볼루스(diabolus)를 합성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표준형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이를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economicus)’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에디슨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이자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업가”라고 칭했을 정도로 에디슨은 경제적 가치에 무덤덤했다. 잡스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지만 이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에디슨과 잡스는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표준적 가치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재능에 맞춰 다양한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했다는 면에서 ‘자본주의의 말썽꾸러기’라고 볼 수 있다.

    복잡계 이론을 통해 살펴보면 호모 디아볼루스는 창의성과 밀접하다.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창의성은 안정적 상황과 혼돈 사이에서 발현된다. 헬렌 슐만(Helen Shulman)은 “혼돈으로 전이하기 직전의 상태인 ‘혼돈의 가장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아주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하므로, 이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즉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창의성이 극대화된다는 것.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개인의 창의력은 안정적 조화에서 부조화로 전이될 때, 혹은 조화로운 특징보다 부조화적인 특징을 더 많이 가진 개인에게서 쉽게 발현된다. 일반적으로 창의력은 오랜 기간의 치밀한 몰입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몰입은 조화보다는 부조화적인 현상으로 치밀한 몰입의 시작은 조화로움에서 부조화로의 전이를 뜻한다. 즉 부조화적 특징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만큼 몰입하기 쉽다는 의미다. 조화로움과 창의성은 반비례 관계이며, 호모 디아볼루스는 당연히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헨리 포드부터 잡스까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표적인 혁신기업 창업주 대다수가 호모 디아볼루스였다. 역사적으로 혁신은 대부분 당시 사회의 표준과 거리가 멀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주도했다. 헨리 포드와 에디슨, 월트 디즈니는 각각 고등학교,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혁신기업 창업가 역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사회적 표준을 따르지 않았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최근 한국 역시 부조화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등 호모 디아볼루스가 많이 등장할 수 있는 씨앗이 보인다. 현재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아이돌 가수는 기획사 시스템을 통해 길러졌는데, 이는 ‘만들어진 호모 디아볼루스’라고 하겠다. 연예기획사는 노래, 연기 등 그들이 가진 한두 가지 재능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형태로 부조화성을 극대화했다. 2004년 데뷔한 아이돌 가수 중 89%가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이었지만, 2005년 이후는 그 비율이 66%로 떨어졌다. 이는 이들이 사회적 표준과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호모 디아볼루스’ 의도적으로 죽이는 대한민국

    반면 호모 디아볼루스의 자질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국제화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돼 메달을 딴 영재 20명 중 13명은 의과대학, 1명은 치과대학으로 진학했다는 조사가 있었다. 창의적이고 능력 있지만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 부조화를 낮추고 조화로움을 증진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금융·의료·법조계 등 안정적 직업에 안착한다. 이는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와 유관하다.

    부조화적인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사회일수록 호모 디아볼루스의 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창의적이게 된다. 호모 디아볼루스가 갖고 있는 자질이 발현될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는지에 따라 창의적인 인간은 혁신가 혹은 단순한 말썽꾸러기가 될 수 있다. 호모 디아볼루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천재와 같은 다른 부조화적인 인간들도 그만큼 활동공간이 넓어지며 해당 사회 역시 그만큼 창의적이 되는 셈이다.

    호모 디아볼루스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부조화적인 호모 디아볼루스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교육이다. 의무교육의 목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인간을 만드는 데에 있기에, 이에 따른 초·중등교육은 호모 디아볼루스형 인간에게 부적합하다. 호모 디아볼루스형 인간은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특별한 재능을 시험해보고 키울 기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호모 디아볼루스형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투 트랙’으로 교육해, 호모 디아볼루스형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십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호모 디아볼루스형 학생이 조기에 대학에 입학해 그에 맞는 학과에서 자신의 능력을 먼저 시험해볼 수 있도록, 대학 입시를 이원화해야 한다. 호모 디아볼루스형 학생에게 초·중등 교육과정 월반을 허용하고 대학 과정에서는 교양과정 수강을 의무화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썽꾸러기 인간형이 한국 경제를 구한다”
    기업 내 소행성 조직 운영

    둘째, 호모 디아볼루스형 인간이 영원히 말썽꾸러기 기질을 유지할 수 있게 사회의 포용력을 넓혀야 한다. 한국은 소수자와 비전통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실시된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4개 국가 중 거의 모든 부문에서 14위를 기록해 전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사회는 주류와 구별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처럼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고 비주류 사람들에게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등 소수자가 겪는 사회·경제적 장애를 최소화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호모 디아볼루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남과 다른 생각’이 평균적인 사고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내에서도 호모 디아볼루스를 키워야 한다. 그를 위해 기업은 호모 디아볼루스로만 구성된 독립적인 일종의 ‘소행성(asteroid)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좋다. 소행성은 우주의 말썽꾸러기면서도 창조자다. 작고 서로 관련성도 없고 불규칙한 모습에 궤도가 일정하지 않지만, 다른 소행성이나 행성, 혜성 등과 충돌하면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우주질서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기업은 호모 디아볼루스의 소행성 조직에 완벽한 재량권을 부여하고, 기존 조직은 최소한의 간섭만 하는 후견인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좋다. 인사, 예산, 보상 등 모든 측면에서 소행성 조직에 완전한 재량권을 부여하면 기존 조직은 시도할 수 없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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