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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전문건설

외면받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건설사 두 번 울린다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외면받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전문건설사 두 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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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법률 효과를 목적으로 당사자 간의 의사표시 합치에 의한 법률행위’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가 쌍방합의로 의견일치를 이뤄 법률적 효력을 갖도록 작성하는 것이 계약서다. 계약서만 합리적으로 작성하면 갑과 을 사이의 불공정 논란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수직적, 종속적인 방식으로 운용되는 건설산업 현장에서 작성되는 계약서 가운데 상당수는 갑을관계에 따른 불공정 계약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계약서 작성 시점부터 불공정 거래가 만연한 이유는 원도급사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탓이다. 공사에 참여하려는 하도급사는 많지만 원도급사는 적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불공정 거래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의 유찰로 저가 하도급 유도

건설 경기가 악화된 이후 전문건설사들은 “원청사들의 불공정 하도급 행위로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고 아우성이다. 한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하도급업자인 전문건설사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어려움에 불공정 거래 관행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불공정 하도급 행위는 공사발주 단계에서부터 계약서 작성, 공사 이행과 마무리까지 시공 전(全) 과정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건설조합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시공 능력 100대 종합건설업체 중 23개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거나 법정관리를 받고 있고, 이들 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4100여 개 하도급사까지 동반 부실로 이어져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2004년 39.1%였던 중소건설사의 공사 수주 비율은 2010년 30.5%로 급감했고, 2012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내거나 자진폐업한 전문건설업체는 36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건설사의 평균 영업이익률 역시 -6%로 급감해 ‘일하고 돈 못 버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건설사들이 적자 공사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초저가로 하도급 대금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하도급업체를 선정할 때 원도급자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하도급사들이 입찰에 참가하면 고의로 유찰시킨다. 그 후 2~3회 재입찰을 실시해 초저가 하도급을 유도한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최저가 낙찰을 받은 하도급업체들은 원청사로부터 다음 공사에서 손실 보전을 약속받고 공사에 참여하지만, 손실 보전 약속은 구두선에 그치기 일쑤다.

한 전문건설사 대표는 “건설 현장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며 “다음 공사에서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원청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전문건설사는 드물다”고 단언했다. 유찰에 따른 재입찰이 일상화하면서 원도급 공사금액 대비 하도급공사 금액은 공공공사의 경우 64.6%, 민간공사는 66.4%로 평균 65%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원도급 낙찰률조차 발주공사 금액의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근 10년간 최저가 발주공사의 원도급 평균 낙찰률은 69.1%였다. 1억 원 발주공사의 원도급 낙찰금액은 평균 7000만 원이 안 되는 수준에서 결정됐고, 하도급 계약 금액은 7000만 원의 65% 수준인 4550만 원 선에서 하도급 공사가 이뤄지는 셈이다.

‘위약벌’ 조항에 이중고

더 심각한 문제는 하도급계약 자체가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 굴지의 D사는 ‘전쟁 또는 사변, 지진, 폭동, 반정부 시위 등의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인한 공사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갑(D사)은 별도의 이행 최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도급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쟁이나 지진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 때문에 공사 이행을 못해도 그 책임을 모두 하도급사가 지도록 한 계약서는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표준하도급계약서는 계약 해제 또는 해지를 위해서는 ‘서면으로 상당한 기간을 정해 계약의 이행을 최고한 후 기간 내에 계약이 이행되지 아니하는 때에 당해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 혹은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표준계약서 내용이 전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건설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도급계약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는 공사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부담을 ‘특수조건’ 등의 명목으로 하도급사에 전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사 이행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민원처리 비용과 야간, 돌관작업(24시간 공사), 산재처리 비용까지 모두 ‘특수조건’으로 간주하고 하도급사 책임으로 돌려 원청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

서울 강북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건설사 대표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원청사들은 각종 특약조건을 내걸어 공사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추가 비용을 보전해주려 하지 않는다”며 “불공정한 하도급 계약서는 결과적으로 하도급 대금 감액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폭로했다.

1군 건설업체인 D사가 건설 현장에서 하도급계약 때 사용한 계약서에는 특수조건으로 ‘위약벌’ 조항을 두고 있다. 공정위가 제시한 표준하도급계약서는 ‘계약이행 및 공사대금지급보증’을 규정한 제7조에서 “을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 또는 해지한 경우, 갑은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에 따른 손실에 상당하는 금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도급사가 공사 이행 의무를 다하지 않아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때에는 그에 따른 손실분만큼의 금액을 청구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D사는 이 조항에 ‘위약벌’이란 특수조건을 붙였다. D사가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하도급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이행보증금은 갑에게 실제 발생한 손해와 관계없는 위약벌로 하며 계약 위반시 공정률과 관계없이 을은 갑에게 계약이행보증금을 전액 납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다시 말해 D사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한 하도급사는 공사 도중 계약 해제 또는 해지를 당하면 공사 과정에 투입된 비용 외에도 위약벌로 ‘계약이행보증금’ 전액을 납부해야 한다. 전문건설업계는 이 같은 위약벌 조항이 원청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표적 불공정 계약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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