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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전차’를 경제대국으로 ‘무티(엄마) 리더십’의 3選 질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녹슨 전차’를 경제대국으로 ‘무티(엄마) 리더십’의 3選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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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4월 동독 출신의 수수한 중년 여성이 통일 독일의 보수 우파 정당 기독교민주당의 첫 여성 당수가 됐다. 그가 정치인으로 장수하리라고 내다본 이는 드물었으나 13년 후 그는 3선 총리에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됐다. 실업난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를 부활시키고 유럽 재정위기 와중에도 탄탄한 성장세를 이끌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정책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는 유일한 지도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이탈리아 사람, 포르투갈 사람, 그리스 사람이 술집에 갔다. 과연 누가 술값을 냈을까. 정답은 ‘독일 사람’이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행한 이 씁쓸한 농담은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유럽의 경제 상황이 그만큼 나쁘다는 것. 둘째, 세계경제에서 독일이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나라라는 것. 독일 총리가 주요국 중앙은행장이나 거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못지않게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이유다.

2004년, 인구가 5억 명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들이 유럽연합(EU)의 닻을 올렸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가 넘는 거대 경제권이 출범한 이때만 해도 EU의 앞날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 EU가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리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왔다.

메르키아벨리

하지만 출범 9년을 맞은 2013년 유럽은 세계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잦아들 줄 모르는 재정위기 후폭풍 때문이다. 2008년 터진 세계 금융위기의 여진이 가시기도 전인 2010년 4월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에서 비롯된 유로존(EU 가입 28개국 중 유로화를 자국 통화로 사용하는 17개국)의 재정위기, 즉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막대한 국가 부채와 높은 실업률에 따른 경제난은 세계경제 전체의 성장동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당초 남유럽 일부 국가의 일시적 위기일 것이라는 초기 전망과 달리 최근에는 그 여파가 프랑스, 영국 등 EU 내 우등 국가로도 서서히 번질 조짐을 보여 불안감이 더 커졌다.

그런 유럽에서 유일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는 국가가 있으니,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최근 경제지표는 눈부시다. 지난해 독일의 실업률은 1990년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인 6.8%로 떨어졌다. 무역수지 흑자는 1881억 유로로 사상 최대. 올해 상반기(1~6월)에도 독일 연방정부는 85억 유로 흑자를 기록했다. 2분기(4~6월) GDP도 0.7% 증가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신음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대조를 보였다. 앙겔라 메르켈(59)이 처음 총리로 집권할 때인 2005년만 해도 두 자릿수 실업률, 빠른 고령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등으로 ‘낡은 전차’라고 놀림받던 것을 떠올리면 상전벽해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지도자를 싫어하는 국민은 없다. 독일 국민은 9월 22일 총선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교민주당(기민당)-기독교사회당(기사당) 보수연합에 몰표를 줬다. 보수연합은 하원 630석 중 311석(득표율 41.5%)을 차지해 메르켈 총리가 치른 3차례 총선 중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2005년과 2009년 총선의 보수연합 득표율은 각각 35.2%, 33.8%). 이로써 2005년 11월부터 집권한 메르켈은 2017년까지 총리 자리를 보장받게 됐다. 12년은 1979~1990년 11년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뛰어넘는, 유럽 여성 지도자 중 최장 집권 기간이다.

2005년 첫 취임 때 독일 최초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최초 총리,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 총리라는 ‘3관왕’ 타이틀을 거머쥔 메르켈은 이번 승리로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도 추가했다. 그에게 독일의 전설적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대처 전 총리의 이름을 붙인 ‘새로운 비스마르크’ ‘게르만 철의 여인’‘메르켈+마키아벨리’를 합친 ‘메르키아벨리(Merkiavelli)’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물리학을 택한 까닭

메르켈 총리는 1954년 7월 서독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폴란드계 혈통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폴란드 서부의 포즈나 출신이다. 출생 당시 이름은 앙겔라 카스너. ‘메르켈’은 대학 졸업 후 5년간 함께 산 첫 남편의 성이다. 그는 재혼 후에도 첫 남편의 성을 유지하고 있다.

메르켈은 생후 몇 주 만에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했다. 동독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서독으로 물밀 듯 이주하던 시절, 그의 아버지가 역(逆)주행을 선택한 것은 종교 때문이다.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막 끝내고 결혼한 호르스트 카스너는 어린 딸 앙겔라가 태어나자마자 ‘신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들을 교화하라’는 교회의 명령에 복종해 동독으로 향한다.

동독에 아무 연고도 없던 그의 가족이 정착한 곳은 인구가 300여 명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 주의 시골마을 크비트초프. 사회 분위기는 극도로 어두웠다. 벽촌인데도 악명 높은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가 늘 모든 주민을 감시했고 전화 한 통도 자유롭게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교회라는 특수한 공간은 어린 메르켈에게 삶과 죽음, 빈부격차, 속죄와 구원 등 인간사의 고뇌와 일찍 대면하게 만들었다. 척박한 환경이 그를 일찍 철들게 하고 인격을 수양시킨 셈이다.

메르켈은 공부를 잘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1973년 동독의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전공은 물리학. 메르켈은 훗날 인터뷰에서 “물리학을 선택하면 공산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쉽게 대학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라이프치히대학 교수들은 공산주의 이념보다 전공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뒀다. 메르켈은 물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공부하며 실험실에서 청춘을 보냈다. 졸업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학부 졸업논문은 미국 전문학회지에 실렸을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던 1977년 메르켈은 동급생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했다. 하지만 성격 차이로 5년 만인 1982년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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