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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재닛 옐런 美 연준 신임 의장 지명자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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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다. 여자가 대학을 가는 것도 흔치 않던 시절 명문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스타 경제학자의 아내’라는 꼬리표뿐.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그는 마침내 미국 중앙은행 최초의 여성 수장(首長)에 올랐다.
‘매(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보다 날카로운 예측 능력을 지닌 비둘기(경기 부양을 중시하는 디플레이션 파이터).’

올해 세계경제의 가장 큰 이슈였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의 후임자 선정이 끝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0월 9일 4년 임기의 연준 새 의장으로 재닛 옐런(67) 연준 부의장을 지명했다. 상원 인준이 끝난 후 내년 2월 1일 공식 취임하는 그는 1913년 설립돼 올해로 꼭 100주년을 맞는 미국 중앙은행의 첫 여성 의장이자 15번째 수장이다.

연준 의장은 ‘경제대통령’으로 불린다. 슈퍼파워인 미국 경제를 주무르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과 금리를 결정한다는 점, 세계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버냉키 의장이 펼쳐온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을 집행할 시점이 가까웠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버냉키 의장이 6월 19일 출구전략을 공식 언급한 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고 이로 인해 주요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는 점은 연준 의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한국은행보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옐런은 1979년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사임한 이후 35년 만에 등장한 민주당 출신 중앙은행 수장이다. 또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과 벤 버냉키 현 의장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후손이다. 세 번 연속 유대계 출신 연준 의장이 탄생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옐런은 오바마 대통령이 염두에 둔 ‘1순위’가 아니었다. 오바마는 클린턴 2기 정권의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해 정·관계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뚝심이 세기로 유명한 로런스 서머스를 노골적으로 선호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2009~2010년 미국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 격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맡아 오바마와 개인적으로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독선적인 성격에다 여성 비하 발언 등 잦은 설화로 구설에 오른 서머스 전 장관은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과거 서머스와 한솥밥을 먹었던 미국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과 수백 명의 경제학자가 옐런을 차기 의장으로 뽑아달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도 옐런을 두둔하고 나섰다. 결국 서머스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후보 지명을 스스로 고사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친삼촌과 외삼촌이 모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불과 26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40세 이하의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는 노벨상’이라는 존 베이츠 클락 메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경제학자다. 이런 서머스 대신 옐런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옐런은 과연 7%가 넘는 실업률과 지지부진한 경기 회복으로 신음하는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침체기 정부 개입 중시

재닛 옐런은 194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늘 우등생이었고 브루클린 포트해밀턴 고교 시절에는 교지 ‘더 파일럿’의 편집장도 지냈다. 졸업 전 그는 교지와의 인터뷰에서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학에서 경제학, 수학, 인류학 중 하나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약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출신의 옐런은 아이비리그의 8개 사립대학 중에서도 부잣집 자녀가 많기로 유명한 로드아일랜드 주 브라운대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예일대에서 평생의 은사인 제임스 토빈 교수를 만난다. 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빈 교수는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고,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인 ‘토빈세’의 주창자로 유명한 현대 경제학계의 거두.

신케인스 학파의 핵심이던 토빈 교수는 시장 자체의 효율성을 강조한 통화주의 학파와 달리 경기침체 때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이런 토빈의 영향으로 옐런 역시 정부 개입을 중시하고 특히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는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물가 안정이며, 통화정책 집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중앙은행과 행정부는 굳이 가깝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믿는 상당수 중앙은행 관계자의 소신과는 차이가 있다.

고용과 정부 개입 중시라는 성향은 역설적으로 옐런이 미국 중앙은행 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뽑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금융위기 이전 4~5%대이던 미국 실업률이 이후 7~8%대로 치솟으면서 실업난이 현재 미국 경제의 최대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금융위기 동안 사라진 일자리는 800만 개에 달한다. 금융위기 후 5년이 지났지만 이 가운데 겨우 절반 정도만이 되살아났다. 양도 모자라지만 일자리의 질은 더 문제다. 되살아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판매직 등 저임금 저숙련 근로자를 위한 것이다.

옐런은 2002년 토빈 교수가 사망하자 예일대 신문에 ‘그는 인류 복리를 개선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준 인물’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해 스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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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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