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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재닛 옐런 美 연준 신임 의장 지명자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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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에서 만난 평생 반려자

옐런은 1971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6년까지 하버드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하버드에서 그가 가르친 학생 중 하나가 서머스 전 장관이다. 40년 후 스승과 제자가 연준 의장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는 두 사람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옐런은 1977년 연준 이코노미스트가 됐다. 그 무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역시 연준에서 일하던 남편 조지 애커로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다. 옐런보다 6세 연상으로 현재 UC버클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애커로프는 중고차 시장의 정보 불균형을 다룬 ‘레몬 이론’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이다.

같은 유대계이며 결혼 당시 옐런보다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애커로프는 소문난 애처가다.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소감문에서 “우리 부부는 성격 면에서도 완벽히 맞을 뿐 아니라 거시경제 현안에서도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다”며 아내 사랑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결혼 후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된 그는 학교에 ‘부부 패키지’ 교수 자리를 제안해 아내의 취업을 도왔다. 이후에도 아내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결혼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옐런을 ‘유명 경제학자 애커로프의 아내’ 쯤으로만 생각했다.

옐런 부부는 1981년 외아들 로버트를 얻는다. 그도 부모의 뒤를 이어 경제학을 전공했고 현재 영국 워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옐런 부부는 아들의 보모를 고용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줬다. 높은 임금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보모가 아이를 더 잘 봐줄 것이라는 ‘경제적 고려’에서였다.



금슬 좋은 부부는 실업에 관한 공동 논문도 수차 집필했다. 1980년대 초엔 보모와의 임금 협상 경험을 토대로 ‘실업률이 치솟을 때 기업들은 왜 전반적인 급여 삭감 대신 인력 구조조정을 택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보육의 질 저하를 우려한 부모들이 보모에게 시세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듯, 기업들도 업무의 질 하락을 우려해 핵심 인력의 임금 삭감 대신 잉여 인력의 구조조정을 택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이런 소신은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실업난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옐런은 자신이 정책 당국자가 됐을 때도 이런 소신을 고수했다. 결국 그는 버냉키 의장과 손발을 맞춰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기준금리가 낮아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으로 금융시장에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 정책 집행을 주도했다.

족집게 경제 전망으로 명성

금융위기 후 신음하던 미국 경제는 양적완화로 일단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좀 무지막지한 방법이긴 해도 많은 돈이 한꺼번에 풀리면 신용도가 낮은 가계와 기업도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 당장 손에 쥔 돈이 없어도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아 소비와 투자를 늘릴 여지가 생긴다. 금융위기의 예언자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조차 “양적완화는 ‘변칙적이고 미친’ 정책이지만 금융위기 때 연준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비전통적 방법인 양적완화는 버냉키 의장처럼 대공황 전문가가 아닌 이상 후임자가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적절한 시점에서 거둬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미국 경제학계와 금융시장이 차기 의장으로 옐런을 적극 지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적완화에 부정적 견해를 종종 피력한 서머스 전 장관과 달리 오랫동안 버냉키와 손발을 맞춰온 옐런이 차기 수장이 돼야만 정책 집행에 연속성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옐런은 1994년 연준 이사가 됐다. 연준 이사는 연준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해 7자리밖에 없는 미국 경제계의 핵심 요직이다. 그는 이후 승승장구한다. 연준 이사(1994~1997),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1997~1999),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2004~2010), 연준 부의장(2010~ )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연준의 속사정에 가장 정통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족집게 경제 전망’도 옐런의 위상과 유명세를 높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9~2012년 연준 주요 임원들의 경제 전망 발언과 그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 옐런이 1점 만점에 0.52점을 받아 0.45점을 받은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 제임스 불라드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 받은 낮은 점수(각각 -0.01점, 0.00점)를 감안할 때 옐런이 내놓은 경제 전망의 정확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옐런은 올해 1월 공개된 2007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1년에 8번 열리는 미국 기준금리 수준 결정 회의) 회의록에서도 “부동산 과열이 심각하지 않다”고 언급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에 맞서 “주택시장의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미국 부동산시장의 과열 조짐을 과소평가해 2008년 금융위기의 선제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버냉키 의장의 전망과 대비된다. 덕분에 ‘준비된 연준 의장후보’ 옐런의 명성도 더 높아졌다.

2007년 12월 FOMC 회의록에서도 옐런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는 대다수 연준 이사가 “미국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경기침체(recession)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경기침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비관론을 주장했다. 불과 9개월 후인 2008년 9월 15일 자산 2000억 달러(약 220조 원)가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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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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