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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대기업 임원의 모든 것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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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대 최대 임원 승진’=‘역대 최대 임원 퇴사’
  • ● 겉은 화려하고, 속은 타들어가고
  • ● 신규 임원 임기 통상 3년…실적 나쁘면 언제든 짐 싸야
  • ● 10대 그룹 상장사 임원 비율 1% 미만
  • ● 연봉도 부익부빈익빈…삼성전자 5억, SK계열사 1억대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조직의 별’이라는 대기업 임원에 오르려면 평균 20년이 걸린다. 높은 연봉에 비서를 두고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와 골프장 회원권을 제공받는 대기업 임원은 회사원들의 꿈이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 임원들은 “임원 승진을 통보받았을 때 가장 기뻤지만, 이후로는 ‘임시직원’의 비애를 많이 느낀다”고 푸념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지원과 혜택 뒤엔 실적 압박이 똬리를 틀고 있다. 1년 단위로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임원은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이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속앓이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기업 임원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ㅋㅋ 올랐다.”

“ㅎㅎ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한마디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인생이 풍요로웠고 즐거웠습니다.”

12월 초 한 재계 인사에게 거의 동시에 날아든 문자메시지다. 앞의 두 통은 각각 부사장에서 사장,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사람에게서 왔고, 세 번째 메시지는 전무에서 부사장 승진에 실패하고 회사를 떠나게 된 이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는 벚꽃”

대기업 인사철에는 이처럼 희비가 교차하는 문자메시지가 답지한다. 승진 소식에는 ‘ㅎㅎ’ ‘ㅋㅋ’처럼 기쁨을 뜻하는 문자를 쓰고 문장이 짧다. 하지만 퇴사 소식을 전하는 문자메시지에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과 함께 글이 전반적으로 길다. 승진 소식을 전한 이에겐 대개 전화로 축하하고, 퇴직 임원에 대한 위로는 착잡한 심경을 배려해 문자메시지로 하는 게 보통이다.

매년 인사철이 되면 기업은 임원 승진자 명단을 앞 다퉈 발표하고, 언론은 새로 임원에 오른 이들을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이면에선 승진자 못지 않은 숫자의 임원이 퇴사한다. ‘역대 최대 승진’이라는 말은, 뒤집어 해석하면 ‘역대 최대 임원 퇴사’가 된다. 기업들은 퇴사 임원 현황 공개를 꺼린다. 언론도 ‘샛별’에 관심을 둘 뿐 퇴장하는 임원에게는 주목하지 않는다. 퇴사 임원은 회사에 버림받으면서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잊혀간다.

전무급 이상 부사장, 사장으로 퇴사하는 임원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대기업마다 처우가 조금씩 다르지만, 전무 또는 부사장으로 퇴사하면 1년, 사장을 지내면 최소 2~3년간 ‘자문역’에 위촉해 기존 연봉의 50~70%를 지급한다. 하지만 초급 임원인 이사 또는 상무로 퇴사하면 퇴직금 수령과 동시에 임원으로서 제공받던 모든 혜택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최근 대기업 상무로 퇴사한 인사는 “임원은 화사하게 피었다가 이내 땅바닥에 나뒹구는 벚꽃과 같다. 한때 아무리 화려했어도 회사를 떠날 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행성’ 밑에 ‘유성’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면 흔히 ‘별을 달았다’고 한다. 군인이 장성으로 진급하는 것만큼 힘들고, 장성이 되면 처우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데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임원=조직의 별’은 옛말이 됐다.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기업 임원의 위상은 조직의 별에 견줄 만했다. 회사 규모가 날로 커짐에 따라 승진이 빨랐고, 임원이 되면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렸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후 임원의 위상과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임원은 1000명이 넘는데, 이렇게 임원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면서 임원 한 사람이 거느리는 직원이 서너 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대기업 임원의 지위가 ‘별’에서 ‘행성’, 심지어 ‘유성’으로 낮아졌다는 자조도 나온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재벌 오너의 제왕적 기업운영 행태가 여전한 우리 기업 현실에 비춰보면 대기업 임원 가운데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보다 오너의 신임으로 빛나 보이는 임원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오너 주위를 돌며 그의 신임을 받아 빛을 내는 대기업 임원은 그냥 별이라기보다 행성에 가깝다는 얘기다. 그나마 그룹 계열사 사장쯤은 돼야 행성급 임원이라 할 만하다. 임원 중엔 승진 때 반짝 빛나고 2~3년 뒤 소리 소문도 없이 퇴사한 이가 허다한데, 그들은 행성도 아닌 유성이라는 것.

대기업 임원에 오르면 대개 최고경영자(CEO)와 목표관리를 위한 MBO (Management by Object)를 작성한다. 자신이 담당할 업무에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제시하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보장받는다. 목표관리를 위해 세부적으로 균형점수표(BSC·Balanced Score Card)를 작성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재무적 목표와 직원교육, 연구개발(R·D)투자 등이 종합적으로 기록된다. 목표 지표는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로 계량화하는데 여기에도 재무적 목표와 비재무적 목표를 함께 제시한다.

임원은 이처럼 CEO 또는 상급자와 맺은 MBO를 근거로 매년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성과에 대해 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승진 혹은 퇴사 상황을 맞는다. 임원들이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성과가 나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대기업 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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