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국내 ICT벤처 중국 진출 붐 정부 규제·복제·언어 장벽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01-22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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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서른 살이라면 지금 당장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할 것이다.”

    조정래 작가는 장편소설 ‘정글만리’에서 “중국이 14억 인구의 내수시장으로 돌아섰다”며 “중국에 대한 대응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보기술(IT) 분야에도 주효한 메시지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3억6000만 명으로 미국보다 2배 이상 많다. 인터넷 이용자는 2015년까지 8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은 스마트폰, 모바일 서비스만이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 상황. 이에 국내 벤처들의 해외 진출 방향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오로지 ‘벤처의 고향’ 미국 실리콘밸리에 열광했다면, 이제 그 열풍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

    무료 메모장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컬쳐노트’는 2009년 11월 구글 플레이스토어 출시 이후 4년 동안 다운로드를 5400만 건이나 기록했다. 특히 95%는 미국, 스페인, 독일, 일본 등 국외에서 다운로드됐다. 메모장 앱의 선두주자였지만 ‘컬쳐노트’는 중국 시장에는 진출할 수 없었다. 중국 사용자 대부분이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등 기본 마켓이 아니라 바이두(Baidu), 샤오미(xiaomi), 완도우지아(Wandoujia) 등 ‘로컬 앱 마켓’에서 앱을 다운로드하기 때문. 외국에서 만들어진 앱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별도의 과정을 통해 중국 로컬 마켓에 진출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어 버전 앱을 부담 없이 다운로드하는 것과 반대로, 중국 사용자들은 자국어 서비스를 선호한다.

    국내 ICT벤처 중국 진출 붐 정부 규제·복제·언어 장벽
    중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

    ‘컬쳐노트’를 제작한 벤처 소셜앤모바일은 2014년 2월 중국 로컬 마켓에 ‘컬쳐노트 중국어 버전’을 공개하면서 중국 앱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김미재 소셜앤모바일 이사는 “중국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무료 서비스를 통해 중국 사용자를 확보한 후 수익 모델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짜이서울’은 처음부터 중국만을 타깃으로 한 국내 ICT 벤처다. 짜이서울은 매거진을 월 3만 부 발행하는데, 중국어로 된 한국 여행 매거진 중 최대 규모다. 짜이서울은 상하이 푸둥에 지사를 운영하며 상반기 중국 법인을 설립하고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장재영 대표는 “2009년 가을 베이징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다”며 “중국인의 한국 여행에 부가가치를 높이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국내 벤처에 중국은 ‘제품 판매 시장’일 뿐이었다.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2013년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해외로 제품·서비스를 수출하거나 진출한 기업은 8000여 곳이다. 그중에서 중국과 거래한 업체는 48.8%로 다른 국가에 비해 중국과 교류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제품을 단순 수출하는 데 그쳤고 온라인 혹은 모바일 서비스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수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국내 ICT 기반 벤처의 중국 진출 관련 통계도 없으며 담당 부서도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등에 흩어져 있다.

    ICT 벤처의 중국 진출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다. 2010년 구글은 중국 시장 철수를 발표했다. 정부의 철저한 검열과 끊임없는 해킹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유해 정보가 유포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글로벌 ICT 기업의 서비스를 제한한다. 대신 바이두, 알리바바(Alibaba), 유쿠(Youku), 웨이보(Weibo) 등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국 사이트가 성행한다. 조상래 플래텀 대표는 “우리가 페이스북, 구글에 열광할 때 중국 인터넷 업체들이 몸집을 불려 현재 바이두, 텐센트(tencent), 알리바바 등 중국 인터넷 사이트는 글로벌 톱 10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외국 자본 출자 비율, 콘텐츠 내용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아이폰 앱스토어를 통한 앱 판매 수익의 20% 이상을 중국 정부가 세금 및 규제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등 수익적인 규제도 많다.

    중국 사용자들의 앱 사용 패턴 역시 글로벌 기업에 불리하다. 중국 내 스마트폰 사용자 상당수가 아이폰의 앱스토어처럼 스마트폰에 내장된 앱 마켓 대신 ‘로컬 앱 마켓’을 이용한다. 더구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경우 구글과 중국 정부의 갈등 때문에 중국에 발매되는 구글폰에 공식적으로 들어가 있지도 않다.

    국내 ICT벤처 중국 진출 붐 정부 규제·복제·언어 장벽

    중국에 진출한 국내 벤처 ‘짜이서울’의 웹페이지와 매거진.



    무조건 ‘헌 하오’(매우 좋다)

    국내 ICT벤처 중국 진출 붐 정부 규제·복제·언어 장벽

    지난해 11월 20일 중국 상하이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상하이 2013’에 국내 벤처 소셜앤모바일이 참가해 중국 소비자들과 만났다.

    중국에는 120여 개의 로컬 마켓이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의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아 앱의 불법 복제가 빈번하고, ‘무형의 콘텐츠를 돈을 지급하고 산다’는 공감대가 적어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국내 ICT 벤처가 중국 진출을 가장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언어다. 중국인들은 자국어로 된 앱을 선호하지만 영어에 비해 중국어에 능통한 개발자, 디자이너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짜이서울의 서울 사무실 공용어는 중국어다. 직원 30명 중 10명은 중국에서 유학한 한국인, 10명은 한국에서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한국인, 나머지 10명은 아예 중국인이다. 장 대표는 “회의에 중국인이 1명만 있어도 무조건 중국어로 얘기하는 것이 철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진출을 꿈꾸는 벤처는 대부분 중국어에 능통한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아직 준비가 안 된 IT업체의 중국 진출을 돕는 컨설팅 업체도 생기는 추세다.

    중국에서 사업을 해본 사람들은 말한다. 사업보다 어려운 것이 중국인을 대하는 일이라고. 짜이서울 장 대표는 “중국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잘 이해해야 한다. 회의에서 제안을 하면 중국인은 동의하지 않아도 무조건 ‘헌 하오(매우 좋다)’ 한다. 정작 한국에 돌아와 확인 e메일을 보내보면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과 업무 협약을 할 때 완전히 성사될 때까지 섣부른 기대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우리 기업가들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기본적인 존중이 없으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며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벤처 차이나의 지원

    중국은 이미 IT산업의 주변국이 아니라 세계 최대 IT시장이자 핵심 세력이다. 2013년 중국 ICT 시장은 424조 원 규모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는 한국(77조 원)의 5배 이상 규모며 격차는 더욱 빠르게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은 2012년 통신, 인터넷, 클라우드 등 ICT 세부산업 분야에 대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ICT 기반 산업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중국에 진출하려면 중국을 알아야 한다. 최근 중국 진출을 앞둔 벤처를 위해 중국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 2008년부터 벤처 관련 정보를 교류하는 ‘고벤처 포럼’을 진행하는 등 ‘한국 벤처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지난해 ‘고벤처 차이나 포럼’을 열어 두 달에 한 번꼴로 진행한다.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VR빌딩에서 열린 ‘제3회 고벤처 차이나 포럼’에서 이철희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중국인의 소비 트렌드와 관련한 강의를 했고, 벤처기업 관계자와 학생, 투자자 등 70여 명이 경청했다. 고 회장은 “고벤처 차이나를 통해 중국에서 사업하다 은퇴한 분들의 노하우를 젊은 창업자들에게 이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ICT벤처 중국 진출 붐 정부 규제·복제·언어 장벽
    한편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미래글로벌창업지원센터(B2G) 등에서도 중국 진출과 관련해 마케팅, 번역, 특허출원 등 실질 업무를 도와준다. 고 회장은 “중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묘하게 섞인 나라이므로 충분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중국 ICT시장의 주도권을 한국 벤처들이 가져야 한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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