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주)해성기공 문일섭 대표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3-20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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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우리나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인천 송도 동북아무역센터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높이도 높이지만, 여느 고층건물과는 외형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강 반포대교 남단에 새로 들어선 새빛둥둥섬도 마찬가지다.

    철골구조물은 구조물의 형상(곡선이나 아치 같은)을 자유자재로 변형하기 쉽고, 고층빌딩 시공 시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초고층빌딩이나 특이한 디자인의 건축물은 대부분 철골구조로 뼈대를 세운다. 대형 경기장, 공항터미널, 발전소 등도 마찬가지다.

    (주)해성기공은 이런 철골구조물을 생산, 시공하는 강구조물(steel structure) 전문건설업체다. 철골 제조와 시공을 합쳐 지난해 1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동종 업계에서 1, 2위 규모다. 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한 우리나라 강구조업계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문일섭(67) 해성기공 회장은 스무 살에 일용직 근로자로 시작해 철골업계 일인자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4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철골업계의 산증인이기도 한 그는 지난 1월 강구조물공사업협의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기술을 배우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처음 한 일이 철골이었다. 당시는 오함마(대형 망치)로 철골을 자르는 등 모든 일을 사람 손으로 다했다. 선배 기술자들을 보며 이 업계에서 1등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꿈을 이룬 셈이다.”



    강구조물 외길 인생

    1971년 보성공업사를 창업한 문 회장은 해성기공을 인수하면서 1983년 (주)해성기공으로 재창립했다. 건설 경기가 호황이던 시절이라 회사는 쑥쑥 성장했다. 그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재투자했다. 다른 업종으로 눈길을 돌리지도 않았고, 종합건설회사를 만드는 등 몸집을 부풀리려 하지도 않았다. 오직 철골업계 한길을 걸었다.

    “1992년 인천 검단공단에 강구조업계 최초로 기계자동화라인을 갖춘 대형공장을 세웠다. 우리 공장을 본 다른 기업들이 우리를 모델 삼아 비로소 자동화라인을 갖추기 시작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검단공장으로는 부족했다. 1998년 충남 천안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했다. 약 15만7000㎡(4만7000평) 부지에 공장 시설 4개를 세웠다. 이곳에서 연간 건축 분야 철골구조물 6만t과 토목 분야 강재 교량구조물 1만5000t을 생산한다. 천안공장은 1999년 건설교통부에서 시행하는 ‘철강구조물 제작공장 인증제’에서 전문건설업체로서는 처음으로 건축분야 1급 공장인증을 취득했다.

    “천안공장을 준공하면서 고부가가치 파이프(PIPE) 구조물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터미널과 한강 새빛둥둥섬이 우리 파이프 구조물로 만든 것이다. 파이프 구조물 분야에서는 우리가 선두주자다.”

    ▼ 위기가 있었다면?

    “위기는 늘 있다. 3, 4년에 한 번씩은 원청업체가 부도를 냈다. 특히 2000년 여러 원청업체로부터 연이어 부도를 맞았는데, 그 금액이 커서 회사의 존속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대형건설사는 부도를 내면 정부에서 국고로 지원해준다. 그런데 정작 부도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하도급업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죽으란 이야기다.”

    ▼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

    “무리하게 외부 차입을 하지 않는 등 보수적인 경영을 한 게 컸다. 당시 진행하던 인천국제공항터미널 공사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또한 문학월드컵경기장, 인천대교 등 사회간접시설 공사를 수주하며 생산기술 및 품질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2005년 건설교통부장관 유공 표창을 받은 데 이어, 2009년엔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일본처럼 진출하기 힘든 곳이 없다. 특히 철골 분야는 일본이 세계 1등이라 대기업도 일본에 철골을 수출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15년 전부터 신일본제철에 우리 제품을 수출한다. 그것도 가장 까다로운 제품을.”

    국가산업 발전 공로 대통령 표창

    ▼ 그동안 건설한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는다면.

    “송도 동북아무역센터, 한강 새빛둥둥섬, 서울시 신청사는 물론 인천·제주·김해공항 여객터미널, 월성·태안·당진·세종발전소, 아셈(ASEM)타워, 고양시국제전시장(KINTEX), 국회 제2의원회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재 서울대 관정도서관을 짓는데, 완성되면 탄성이 절로 나올 것이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아부다비공항 관제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페라·발레극장도 우리가 만들었다. 말레이시아 MATRADE CENTER도 시공 중이다.”

    해성기공은 2010년 3월 중소기업청 이 시행하는 경영혁신형 중소기업(MAIN-BIZ) 인증을 받았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인정받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2011년 기업부설연구소를 만들어 연구개발(R·D)을 지속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호서대와 산업협력을 통해 신기술 연구개발에도 주력한다. R·D에 연간 수억 원씩 투자한다. 중소기업으로는 큰 액수다.”

    ▼ 성과가 있다면?

    “업계에서는 드물게 강구조물 제품 관련 특허를 3개나 가졌다. 기존 H빔보다 가벼우면서 더 튼튼하고 원가도 더 저렴한 아이테크 빔도 자체 개발했다. 또한 건축용 조립식 빔과 관련한 디자인등록도 출원했다. 지난 2월 폭설로 무너져 대학생들이 숨진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에 사용된 자재가 PEB다. 우리가 개발한 조립식 빔 LTS는 PEB보다 강도가 더 세면서도 공사비는 더 적게 든다. 앞으로 PEB 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한다.”

    직원·협력업체 위한 상생 경영

    ▼ 앞으로의 계획은?

    “국내 시장은 저가 수주 경쟁이 심해 일감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직원을 감축할 생각은 없다. 기술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지금까지는 신일본제철에만 납품했는데 일본의 일반 건설사와도 거래할 생각이다. 지난해 (주)일본철골평가센터로부터 일본 강구조물의 공장인증등급 중 일본 M grade를 취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해외 건설사와도 직거래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려 한다. 이미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내 경영 철학이 ‘죽을 때까지 회사에 투자하자’다. 그래야 직원들이 안심하고 회사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오너가 직원들과 상생하는 경영을 하는 것처럼 해성기공은 협력업체와의 상생 경영에 방점을 둔다. 원청업체에서 대금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과 근로자 임금은 밀리지 않고 최우선적으로 지급한다는 원칙이 대표적이다. 대금 지급 조건도 개선해매년 현금 비중을 늘린다.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협력업체의 기술력도 계속 향상돼야 한다. 협력업체가 새로운 기계나 시스템을 들여오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투자금의 일부를 우리가 무이자로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또한 현장노동자들의 안전 보건에도 신경을 쓴다. 해성기공은 2011년 11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시행하는 KOSHA 18001(건설업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취득했다. 현재 이 인증은 전문건설업계 전체에서 약 50개 업체만이 보유 중이며, 이 중 강구조물 업체는 2곳뿐이다.

    ■ 원청업체 대금결제 횡포에 하도급업체 줄도산 위기

    문일섭 (주)해성기공 회장은 전문건설업체를 경영하며 겪는 어려움을 묻자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과거보다는 결제 조건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점이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전문건설업체에 공사대금의 적기 수령은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13년 11월 대한전문건설협회가 발표한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체감 자금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 중엔 대금지급 지연, 원도급자 부실로 인한 하도급대금 미회수가 큰 문제로 지적됐다.

    공사 과정에서 현재까지 완성된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공사금액을 기성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도급사들이 발주자로부터 선금 또는 기성금을 받고도 하도급자에게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문건설업계는 하소연한다. 이로 인해 자재·장비업체, 근로자 임금까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전문건설업체가 부도에 이르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것.

    법적으로 수급인은 발주자로부터 기성금을 받으면 15일 이내에 하수급인에게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17.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이 기간을 넘기면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지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원도급자는 발주자로부터 현금을 수령한 비율대로 하도급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는다. 심지어 건설한 아파트가 미분양될 경우 하도급업체 가족·임직원 명의로 미분양 아파트를 계약하도록 강요하거나 골프회원권으로 하도급 공사대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하도급 공사대금으로 받은 미분양 아파트는 현금화가 곤란하거나, 팔아도 헐값이어서 하도급업체들은 공사자금 부족,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다.

    이에 대해 이종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은 “공공공사부터 발주자가 하도급대금 지급 여부를 매월 확인토록 제도화해 하도급대금이 제때 지급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법적으로는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하도급자가 발주자에게 직접 하도급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을(乙)의 위치에 있는 하도급자로서는 갑(甲)의 눈치 때문에 청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하도급대금 체불 우려가 높은 저가낙찰공사에 대해서는 직불을 의무화해 체불을 사전 차단하고, 원도급자의 하도급대금 체불 시 발주자가 하도급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하고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초고층빌딩, 예술 건축물도 우리 없으면 불가능했죠”

    해성기공이 지은 송도 동북아무역센터, 새빛둥둥섬, 아부다비공항 관제탑(왼쪽부터).

    원도급사, 정해진 법도 안 지켜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도 문제로 지적됐다. 2001년 도입된 외담대는 하도급업체가 원도급업체로부터 지급받기로 한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원도급업체와 약정한 은행에서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받아 공사대금을 조기에 현금으로 확보하고, 상환일이 되면 원도급업체가 대출금을 갚아주는 제도다. 원수급자가 상업어음을 발행한 후 결제를 하지 못하면 수취인인 하수급자까지 자금난으로 연쇄도산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게 원래 취지였다.

    문제는 원도급업체가 부실해져 만기 때 은행에 대금을 결제하지 못하면 대출금 상환과 연체에 대한 책임이 하도급업체로 넘어간다는 것. 원도급사는 대금을 결제하지 않아도 부도처리되지 않아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반면, 하도급사는 원도급사의 채무를 떠안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건설은 1400여 하도급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외담대 등 상거래 채무가 1700억 원에 달했다. 원도급 건설사가 뿌린 외담대는 하도급 전문건설업체 부실의 주요 원인이 된다. 외담대가 하도급사들의 줄도산 기폭장치가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상매출채권 미결제의 일차적 책임은 원도급사에 있으므로 원도급사가 하도급 공사대금을 외담대로 지급 후 미결제 시 하도급자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폐지해야 한다. 또한 외담대 발행을 강화해 부실 가능성이 높은 원도급사의 발행을 막아 피해를 원천차단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담대나 어음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하는 경우 ‘어음지급 보증서’를 의무적으로 교부토록 하도급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외담대에 민간 지급보증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원도급사가 어음대체 결제수단 이용 시 외담대 대신 기업구매전용카드나 기업구매자금대출로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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