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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보다 ‘소신’ 택한 현대 경제학계의 양심

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명예’보다 ‘소신’ 택한 현대 경제학계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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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현존하는 경제학자 중 최고의 독설가’ ‘부시 정권의 영원한 저격수’ ‘참여형 지식인의 표상’….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쏟아진 평가다. 그는 경제학자 중 최초로 뉴욕타임스(NYT)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감세 정책, 이라크 전쟁 등에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2014년 2월 28일 폴 크루그먼(61)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 블로그(krugman. blogs.nytimes.com)에 짤막한 글이 올라왔다. “2015년 8월부터 뉴욕시립대(CUNY)에서 일할 것이다. 프린스턴이라는 최고의 대학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다. 분배와 정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다. 뉴욕타임스(NYT) 기고도 계속하겠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예일, 스탠퍼드, MIT,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 등을 거쳐 프린스턴대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해온 크루그먼은 소위‘엄친아 중 엄친아’다. 또 프린스턴대는 경제학 분야에서 하버드대, 시카고대와 함께 독보적인 ‘빅3’로 꼽힌다. 일반 경제학자도 아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교수를 하고 싶어 하는 프린스턴이라는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떠나 한국의 전문대와 유사한 커뮤니티 칼리지인 뉴욕시립대로 옮긴다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된 이유다.

게다가 거액의 연봉을 받고 사기업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하버드나 예일처럼 프린스턴에 견줄만한 다른 명문대로 옮기는 것도 아니니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했다. ‘간판’과 ‘스펙’에 목숨 거는 나라가 아닌 미국 내에서도 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크루그먼 교수가 새롭게 일할 뉴욕시립대의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는 소득, 부, 고용 등 사회 불평등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학원 과정을 두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 수준이 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 수준이다. 미국이 자랑해온 ‘중산층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온 만큼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관심사인 분배 및 정의 문제를 더욱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재닛 고르닉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 소장은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인 크루그먼 교수가 우리 학교에 온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부시 저격수’로 불릴 정도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및 공화당의 감세, 규제 완화, 전비 지출 등에 날선 비판을 해온 그의 이력을 감안할 때 뉴욕시립대로의 이적은 예견된 행보였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크루그먼 교수는 상아탑에 갇혀 현학적인 고담준론을 즐기기보다는 현실의 부조리를 바꿔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단순히 공화당과 보수주의 진영만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도 예외는 없다. 크루그먼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원일 때부터 “실천 방안이 없는 당신의 비전과 정책은 공허하다”며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모았다.

평생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 그가 왜 분배 정의와 소득 불평등 연구에 집착하며 미국 주류 사회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미국 정치권과 월가 전체에 독설을 퍼붓는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배경을 탐구해보자.

‘新무역이론’의 탄생 배경

크루그먼은 1953년 미국 뉴욕 주 알바니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1974년 예일대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크루그먼은 1977년 불과 24세의 나이에 MIT에서 변동환율제도를 주제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고 2년 후 명문 MIT의 교수가 됐다. 그가 박사 과정 학생일 당시 지도교수였던 루디 돈부시 교수는 훗날 크루그먼에게 노벨상의 영예를 안긴 ‘신(新)무역이론’의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크루그먼 또한 돈부시 교수를 ‘경제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크루그먼이 주창한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은 19세기 이후 국제무역이론에서 절대 진리로 여겼던 비교우위 이론의 허점을 보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제시한 비교우위 이론은 ‘국가 간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각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잘 만들 수 있는 상품이 있고, 이를 서로 교환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일본처럼 기술이 발달한 나라는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남미 칠레처럼 농산물이 풍부한 나라는 농산물을 싸게 생산해 서로 교환하므로 무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현실의 무역이 반드시 비교우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기술 수준이 비슷한 여러 나라가 기술 수준이 비슷한 동종 제품을 사고파는 거래가 훨씬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국과 독일은 다 자동차 강국이지만 미국 소비자도 벤츠를 사고, 독일 소비자 또한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를 산다. 왜 그럴까.

크루그먼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로 ‘규모의 경제’와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를 들었다. 생산 규모를 늘리면 상품을 만들어내는 비용이 줄어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그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선진국은 더 다양하고 많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고, 여러 나라에 수출할 수 있다. 소비자의 기호 또한 천차만별이기에 국산품과 수입품 중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을 고르다보면 무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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