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정년까지 롱~런하는 비범한 중년의 평범한 특징

  • 박지원 |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jwpark@lgeri.com

    입력2015-01-20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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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中年). 인생에서 청년과 노년 사이의 세대를 일컫는 말로, 대략 40~60세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중년은 아직 젊고 의욕적이면서도 성숙함과 노련함이 갖춰지는 아름다운 시기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년이 시작되는 40대나 중년의 한복판에 서 있는 50대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 중년의 우울증 환자가 증가한다는 뉴스 보도에서 보듯, 언제부턴가 중년의 삶은 힘들고 퍽퍽한 것으로 회자된다.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점점 버거워지는 가계 지출, 은퇴 후의 삶, 자녀의 출가와 부모의 죽음 등에 이르기까지 인생에서 큰 변화나 갈등을 겪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심리학자인 엘리엇 자크는 인간 발달 단계에서 큰 변화를 겪는 이 시기를 ‘중년의 위기(Middle Life Crisi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국 워릭대 앤드루 오스왈드 교수와 미국 다트머스대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의 연구 결과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준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지수는 40대에 들어서면서 하강 곡선을 타다가 노년기가 돼 다시 상승하는 U 커브를 그린다고 한다. 즉 중년에는 직장 및 가정생활에서의 스트레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과부하 상태가 되면서 신체적 감정적 소진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조직의 변화와 위기감

    문제는 회사 내에서 이러한 ‘위기의 중년’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실제로 조직 내 40~50대 구성원 비중이 높아지고, 설상가상으로 일터의 변화는 중년 직장인의 위기감을 높인다. 현재의 중년 직장인은 과거 소수의 중년이 확고한 위계질서 기반에서 조직을 이끌던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에서 롱런(long-run)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기 때문이다.



    중년 직장인의 위기를 부르는 조직 내 큰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이 많다고 대접받는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에는 직급이 낮거나 승진 시기가 다소 느려도 어느 정도 나이에 의한 파워가 작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나이에 따른 예의는 사회 정서상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챙겨주거나 존경해주는 시대는 끝났다. 존경의 척도가 나이에서 실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차장, 부장이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무적인 일을 안 하려 하거나 전문적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금세 조직에서 도태되기 쉽다.

    정년까지 롱~런하는 비범한 중년의 평범한 특징

    정년까지 현역 팀원으로 뛰어야 하는 시대다. 생존하려면 대비가 필요하다.

    둘째, 포지션 획득이 어렵다. 과거에는 ‘장(長)’ 자리는 하나씩 맡았다가 퇴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에 팀장 노릇을 할 법한 나이의 중년 직장인이 여전히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조직 성장 정체, 낮아지는 퇴사율, 조직 노쇠 등으로 중년 인력이 늘어나는 구조가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정년까지 현역 팀원으로 뛰어야 하기도 한다.

    문제는 포지션, 즉 조직의 장을 맡는 것이 인정 또는 존중받는 기준이라고 굳게 믿던 현재의 중년 직장인이 실무자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다. 단순히 포지션 확보를 목표로 한다면 조직에 장기간 정착하며 성과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도래했다.

    셋째, 가속화하는 지식 진부화의 속도도 위기감을 높인다. 예전엔 40대의 경험이 훌륭한 자산이었으나 급격하게 변화하는 요즘 세상은 40대 노하우의 영향력이 약화된다. 그간 쌓아온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자산이 구닥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신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사원이 늘어난 것,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도 버거울 수 있다. 조직의 이러한 변화로 결국 40대 중후반의 직장인은 자아 존중감이 하락하고 동기부여가 안 되며 역할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예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 탓에 현재 40대 직장인에게는 정년 연장 시대에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 모델(role model)마저 없는 상황이다. 정년이 연장된다고는 하나 중년 직장인이 체감하는 불안이나 불만은 사라지지 않으면서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

    회사는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이에 적합한 인력 운영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하지만, 구성원 스스로도 정년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철학이나 태도 등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임원이 아닌 현역으로 많은 나이까지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 회사에 기여하고 후배에게 모범이 되는 인재가 있다. 실무자로서 롱런하는 중년 직장인이 가진, 아주 평범하지만 또 결코 평범하지 않은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

    현역으로 롱런한 사람의 특징 중 첫 번째는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를 신경 쓰기보다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두고 회사와 동료, 후배에게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한 부장 중 한 사람은 정년퇴직 이후 재계약을 통해 60이 넘은 나이에도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려 노력한 것을 롱런의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나이 들었다고 고참 대우 받으려 하거나 귀찮고 힘든 일을 떠넘기기 시작하면 후배들이 불편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이 여든에도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받는 배우 이순재 씨 역시 나이로 권위를 세우기보다 주어진 배역과 작품을 위해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 하면 늙어버리는 것이다”고 말한다(TVN ‘꽃보다 할배’에서).

    그는 고령에도 시트콤 코믹 연기에 도전해 시청률 상승에 일조하는가 하면, ‘꽃보다 할배’에선 다들 자는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동안 여행 서적을 보면서 숙소와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하고, 함께 여행하는 다른 ‘할배’들을 통솔했다.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고 PD나 다른 출연자들의 도움을 받을 법도 한데, 언제나 작품을 위해 기대 이상의 역할 변화를 시도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정신없이 수행하다가 문득 일정 포지션, 즉 팀장이나 임원 승진에서 탈락하면 ‘조직은 이렇게 몸 바쳐 열심히 일해온 나를 몰라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불만이나 분노, 열등감 따위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롱런한 인재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외적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롱런 비결은 크게 2가지다. 먼저 나의 꿈이나 일의 목적,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 등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내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되새긴다면 불만을 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보다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는 점이다. 고령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질문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발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일하며 얻는 10가지 행복’의 저자 다사카 히로시는 “일에 대한 철학은 현실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닻”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의미 있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 나만의 경쟁력을 위한 ‘롱런’

    정년까지 롱런한 사람들의 세 번째 특징은 실력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년 지도’의 저자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내세울 만한 장점이나 특기가 없다면 이제는 정년까지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과거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이제는 현재의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장은 “쉽게 설명된 다양한 지식이 인터넷에 널려 있는 세상이지만 이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하며 “젊었을 때부터 탄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나이 들어서도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머리가 굳어서’라며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6년 미국 시사지 ‘타임’은 ‘인간의 지식 업무 능력은 45세를 지나 60세까지 발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실은 바 있다. 미국 UCLA 버클리 의대 신경과학자 연구팀이 1958년 당시 21세 대학생 142명을 대상으로 40년간 장기 임상 실험을 실시한 결과, 인간의 뇌기능이 60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미 해군 최초 여성 제독이자 최초의 컴파일러를 개발하고 ‘프로그램 버그’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40대가 돼서야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첼로 대가 파블로 카잘스가 90세 이후에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지금도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직장에서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해 일하던 분야에 대해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은 ‘노화’라는 통념에 사로잡힌 게으름이 아닐까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년까지 롱~런하는 비범한 중년의 평범한 특징

    현재 40대 직장인에게는 정년 연장 시대에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 모델(role model)마저 없는 상황이다.

    # 호기심의 끈

    네 번째 특징은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흔 혁명’의 저자 다케무라 겐이치는 “나이를 먹었지만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호기심을 그대로 가졌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태도로 일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에 대한 경륜이 쌓이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에 대해 ‘다 해봤어’‘몰라서 하는 소리야’라는 말로 자신이 가진 지식 범주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잘못된 생각을 꼬집은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기존의 틀을 깨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만 롱런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장은 “회사 생활 20년이면 사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아는 지식이 최고인 양 안주하며 머무르려 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고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 ‘상대성이론’등을 읽어보면 유독 재미있는 분야가 있더라”며 60이라는 나이를 무색게 하는 지적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 자기 성찰과 감사하는 마음

    롱런한 인재의 다섯 번째 특징은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성찰 덕분에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즉 자신의 한계나 약점을 알고 이를 수용했으며, 자신이 지니지 못한 다른 사람의 강점을 인정하고 또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들에게서 퇴직할 시점에 임원이 되지 못한 것, 아주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스트레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는 점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건강한 것에 감사했고, 나보다 나이 어린 팀장이더라도 그를 도와 팀의 성공에 일조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으며, 후배 팀원들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마음도 넓다는 특징이 있었다. 남을 탓하는 부정적 심리는 불안을 회피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감사와 자아 성찰의 마음가짐을 깊이 새기는 삶의 자세는 스스로에게 자아존중감을 북돋워주고 임원이란 자리가 아니어도 일 속에서 성취감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산성 vs 침체성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중년을 ‘생산성 vs 침체성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중년은 자신 이외의 타인의 발전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생산성을 창출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성숙한 사람은 이 시기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경우에는 관심이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결국 침체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조직 운영 방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조직 내 중년층이 두터워지면서 개인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야만 정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조직에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포지션 획득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상사가 됐다고 불만과 불평에 가득 찬 상태로 회사 생활을 한다면 과연 에릭슨이 말한 ‘생산성’의 창출이 가능할까. 침체에 빠지느냐, 생산성을 올리느냐는 결국 개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도 이들을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일에 초점을 맞추고 성취감을 갖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애를 살펴보고 차근차근 꿈과 목표를 계획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비단 중년 인력뿐 아니라 젊은 인재들에게도 자신의 꿈이 무엇이고, 회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회사는 중년 인력에 대한 동기부여 방안을 마련하고 긍정적 커뮤니케이션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 포지션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은 패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변화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샐러리맨이 아닌 전문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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