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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몸집’ 불리고 아들은 ‘몸매’ 가꾸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아버지는 ‘몸집’ 불리고 아들은 ‘몸매’ 가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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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考 끝에 꺼낸 카드

일단 결정을 내리면 즉각적으로 실행했다. 정 부회장은 아우디를 거쳐 폴크스바겐 총괄 디자인 책임자로 있던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려고 직접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몇 차례 끈질긴 설득 끝에 그를 디자인 총괄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고, 이후 디자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단행했다.

페르디난드 피에히 폴크스바겐 그룹 이사회 의장은 2012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그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로 가게 한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는 그 정도로 대단한 명성을 자랑했다.

당시 기아차에서 가장 우선시한 제작 기준은 성능이었다고 한다. 효율성과 디자인이 충돌하면 디자인을 포기했다. 하지만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한 뒤에는 디자인 원안을 유지하며 성능과 효율성을 추구했고, 독자 디자인 개발에도 착수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지금은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은 밋밋한 기아차의 얼굴에 ‘패밀리룩’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기아차 직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2006년 정 부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선언할 때만 해도 기아차는 영업적자를 냈다. 현대기아차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을 기아차에서 빼내야 한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그룹 후계자가 적자 기업에 있으면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처지의 정 부회장으로선 일단 ‘단기 성과’를 내야 했는데, 느닷없이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디자인으로 성과를 보려면 최소한의 자동차 개발 기간인 3~5년이 필요했다. 그는 반짝 실적 대신 장기 처방을 선택한 것이다.”



우려와 달리 디자인 경영이라는 승부수는 이후 빛을 발했다. 2008년 6월 ‘직선의 단순화’를 기반으로 한 기아의 패밀리룩이 탄생했고, 로체 수정 모델을 시작으로 포르테, 쏘울 등이 잇달아 출시됐다. 쏘렌토R, K7, 스포티지R, K5 등 R시리즈와 K시리즈가 등장하자 기아차 영업이익은 조(兆) 단위로 상승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6년 27만 대에 불과했던 기아차 국내 판매 대수는 2010년 48만5000대로 79% 급증했고, 기아차는 이후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하며 전 세계에 ‘디자인 기아’를 각인시켰다. 정 부회장을 잘 아는 재계 인사 A씨는 이렇게 말했다.

‘단기 매출’보다 ‘브랜드 가치’

“정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가 되고 나서 2, 3년 뒤를 내다보는 결정을 하는 걸 보며 그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수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수학은 논리적 사고 틀을 길러주고, 역사는 과거 사건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예측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말하곤 했다.”

정 부회장은 디자인 경영과 함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도 나섰다. 2006년 당시 기아차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환율. 환율이 달러당 900원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기아차 이익은 급감했다. 기아차의 해외시장 판매 비중은 79%에 달하지만 해외공장 생산 비중은 9%에 불과해 환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였다.

결국 정 부회장은 해외공장 건설 프로젝트와 해외법인 체질 개선책을 들고 나왔다. 유럽에 최초로 세운 슬로바키아 공장과 미국 조지아 주 공장은 정 부회장이 직접 챙긴 ‘작품’이다. 장기 재고 차량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판촉비가 급증해 헐값 판매를 마다않던 해외 판매법인에는 밀어내기와 저가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 단기 매출 증대를 위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이 같은 체질개선 전략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2008년 169.1%에 달하던 기아차 부채 비율이 2010년 92.8%로 뚝 떨어졌다. 2008년 4조6000억 원이던 순차입금도 2010년 6280억 원으로 눈에 띄게 줄었고, 2010년 현금 보유액은 2조256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현장을 알아야 올바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현장 경영 철학이 이런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임직원들의 중론이다. 정 부회장이 2009년 현대차 부회장에 오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로 불안감이 커지자 유럽으로 날아가 현지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직원들과 대응전략을 논의했다.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현대차의 친환경차를 기자단에 직접 소개했다. 3월에도 중국공장을 살펴보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그가 해외 공항에서 수행원 하나 없이 백팩을 메고 직접 캐리어를 끌고 가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의 지인 B씨는 정 부회장이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이유를 대학 시절의 경험에서 찾았다.

“정 부회장은 모교인 고려대 도서관 건설 현장에 할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안전모를 쓰고 감독하던 광경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했다. 가끔 현장에 가보면 가기 전에 보고받은 것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하더라. 사업 현장을 방문하면 직원들의 생각을 읽고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백팩 메고 다니는 부회장

그의 말처럼, 정 부회장의 핵심적인 경영 리더십은 인재와 소통 중시, 유연성, 소탈함, 글로벌 감각 등으로 요약된다. 피터 슈라이어 영입 사례에서 보듯,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하면 반드시 영입하고 전폭 지원한다. 단지 ‘스펙’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열정과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미술관에서 현대차 잡페어를 여는가 하면, 해외 유학생을 채용할 때 지원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오디션 방식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그가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늘 당부하는 말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실수하더라도 도전하는 게 낫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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