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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경제제재 연타 맞다 진주만 카운터펀치

2차대전은 ‘경제전쟁’ / 일본편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美 경제제재 연타 맞다 진주만 카운터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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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후발주자 일본, 英 면화 무역시장 점유율 추월
  • ● 日 야심 드러낸 ‘對華 21개조’…미·영 견제 자극
  • ● 美, 석유금수 조치 이어 자산동결로 日 압박
  • ● 日 “어차피 한 번은 날 전쟁…”
10월 5일 일본, 미국, 캐나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맺는 데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 역내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전 세계 GDP의 40%에 해당하는 31조 달러나 된다.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유무역권이 탄생하리라는 전망이다.

‘TPP 지도’를 보면 공교롭게도 70~80년 전 일본이 공들이던 세계무역지도와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극심한 보호무역 시대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국, 유럽 등 제국주의 열강이 채택한 불평등한 보호무역의 희생양이 자국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도 그런 왜곡된 경제질서 아래 자위권 차원에서 발동한 불가피한 선택지였다고 주장한다.

종전 70년을 맞은 올해 일본은 총리 담화에서부터 의례적인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저변에 깔린 광범위한 ‘피해자’ 정서 때문인지 반성의 진정성은 약해 보인다.

日 섬유재벌의 공세

일본이 2차대전을 ‘경제전쟁’이라고 일컫는 배경에는 근대화의 첫 단계인 메이지유신(1868년)부터 시작돼 1차대전 이후 급성장한 자국의 경제규모 확대와 관계가 깊다. 메이지유신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일본은 주도적 산업혁명을 통해 실질 국가총생산(GNP)은 6배, 실질 광공업생산은 30배, 실질 농업생산은 3배 커졌다.

특히 중공업 분야의 기틀은 자국의 피해가 없던 1차대전 시기에 집중적으로 다져졌다. 대전 후인 1920년경엔 미국, 영국에 근소하게 뒤진 세계 3위의 조선(造船) 강국으로 변모했을 정도였다. 대전 기간에만 40만t의 선박을 미주와 유럽 지역에 수출했다.

일본은 1930년대부터 중국대륙에 본격 진출하면서 미국을 자극했다. 이에 따라 요즘으로 치면 북한이나 몇 년 전 이라크와 쿠바에 가해진 징벌적 경제제재가 일본에 행해졌고, 궁지에 몰린 일본이 일종의 자위권 차원에서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며 2차대전을 일으켰다는 것이 일본 측 논리다. 미국과의 누적된 갈등구조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인데, 사실 그전에 이미 영국과 대립하면서 당시 국제질서 체제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국과 일본의 뿌리 깊은 무역마찰은 20세기 초반의 면화제품 생산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세계경제 및 무역거래의 발전이 식민지 인도에 생산기지를 둔 영국의 면화제품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무역에서 섬유제품의 비중이 20%에 육박했고, 그 섬유제품 시장의 50% 이상을 영국이 점유했다.

일본은 뒤늦게 섬유산업에 뛰어들었지만, 산업혁명이 영국에 비해 100년가량 뒤처졌기에 설비가 노후화한 영국에 비해 기계들이 훨씬 신형이고 우수했다. 지금의 중국처럼 인건비도 영국에 비해 저렴했다. 증기기관 방적기에 더해 전등 시설을 대대적으로 도입, 24시간 내내 조업이 가능한 오사카방적(大阪紡績, 1882년 창업) 같은 대형 회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섬유재벌들이 중국 칭다오, 상하이 등지에도 대형 방적공장을 세우고 저가 의류를 아시아 시장에 집중 공급하자 영국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졌다.

20세기판 아베노믹스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은 몇 년 전 리먼 사태와 비슷하게,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던 당시의 일본 경제를 위축시켰다. 일본은 1929~1931년 수출 규모가 반감됐다. 그래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빠르게 회복해 1932년에는 예전 수준을 소폭 뛰어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결정적 동인이 된 것은 지금의 아베노믹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주도하의 인위적 엔저를 통한 수출 장려책 덕분이었다.

일본 경제전문가 다케다 도모히로 씨의 최근 저서 ‘머니 전쟁’에 따르면 구화폐 기준으로 1929년 100엔당 49달러이던 것이 1933년엔 24달러 전후로까지 떨어진다.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면제품, 잡화는 물론 당시 이동수단으로 크게 인기를 끌던 자전거까지 수출전선에 나서며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1936년부터는 세계적으로 100만 대 이상을 수출했으며, 당시 영국산에 비해 절반 가격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계 분야 수출품 순위는 1위 자전거(16.2%), 2위 선박(14.8%), 3위 철도차량(11.5%), 4위 자동차 및 부품(11.4%)이었다고 한다.

무역 상대국은 대부분 영국 식민지이던 인도, 호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일본의 면화 수출량만 봐도 1928년에는 영국의 37% 수준이었으나 1932년에 92%로 급성장한 뒤 1933년부터는 급기야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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