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기업 화제

신사업 집중 육성, 지주회사 롤모델

SK㈜ ‘이유 있는 변신’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6-04-21 09: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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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소재, 의약품 생산사업 확장 본격화
    • 카셰어링 업체 지분투자로 공유경제도 확산
    한국에 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3년. 당시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래 지금껏 130개 넘는 기업이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경영효율을 높인다는 취지 아래 지주회사 체제로 탈바꿈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외 경영환경은 급변했지만, 지주회사 대다수는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면서 경영에 참여하는 순수 지주회사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리스크가 도사린 사업 확장에 나서기보다 주식 보유에 따른 배당금과 브랜드 사용료라는 안정적 수입원에 의지하는 편을 택한 것. 이러다 보니 관계사 실적에 울고 웃는 천수답(天水畓)식 경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비해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한다. 가령 이세돌과 ‘세기의 대국’을 벌인 알파고는 구글의 지주사 알파벳이 투자하는 ‘딥마인드’의 작품이다. 구글 창업자들은 기업의 장기 성장을 이끌 ‘혁신 DNA’를 유지하기 위해 검색 사업은 구글로 몰아넣고, 당장 실적을 내기 어려운 미래 사업은 알파벳 산하에 뒀다. 지주사를 통한 장기 투자와 사업 확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지난 2월 알파벳은 6년 만에 애플을 누르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 탈환에 성공했다.     



    사업영역 전방위 확대

    한국에도 기존의 순수 지주회사 노릇에 안주하지 않고 신사업 육성 등 자체 성장을 위해 뛰는 기업이 있다. 지난해 통합지주회사로 출범한 SK주식회사가 대표적이다. 불황 속에서도 다양한 투자 및 사업 확대를 통해 자체 성장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국내 반도체 소재 업계는 SK㈜의 ‘빅딜’에 주목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특수가스를 생산·판매하는 SK머티리얼즈(옛 OCI머티리얼즈)를 SK㈜가 인수한 것. SK머티리얼즈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삼불화질소(NF3) 분야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업체로,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 업체들도 인수에 관심을 보여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반도체 소재 핵심 기술의 국내 보유와 안정적 공급을 기반으로, SK는 SK머티리얼즈를 반도체 소재 종합기업으로 적극 투자·육성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삼불화질소, 육불화텅스텐(WF6), 모노실란(SiH4) 등 기존 제품 외에도 고부가 제품 확대를 통한 사업영역 다각화로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SK머티리얼즈는 3월 SKC가 보유한 SKC에어가스 지분을 전량 인수해 특수가스뿐 아니라 산업가스로도 사업영역을 넓히기로 결정했다.

    SK는 반도체 투자가 증가하는 중국에서의 사업 확대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기존 중국 법인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지 판매를 적극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SK머티리얼즈는 한국과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 중 유일하게 중국 장쑤(江蘇)성 및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NF3 생산·물류 설비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월 10일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주차장에 마련된 쏘카(Socar) 차량인 기아자동차 ‘레이’를 직접 탑승했다. 최 회장은 차량 외부를 살펴본 뒤 탑승해 내비게이션 등 비치 물품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이어 쏘카 관계자에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반인이 쏘카를 예약하고 타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최 회장의 쏘카 탑승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주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공유경제에 대한 최 회장의 관심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는 SK㈜의 쏘카 투자가 계기가 됐다.

    SK㈜는 카셰어링 분야의 빠른 성장성에 주목해 지난해 11월 국내 카셰어링 1위 사업자 쏘카의 지분 20%를 확보했다. 카셰어링 시장은 향후 5년 내 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SK는 내부의 주유·정비·렌트 사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등 카셰어링 사업에 활용 가능한 유·무형의 자산을 보유한 만큼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쏘카는 2012년 3월 제주도에서 사업을 시작해 현재 약 130만 명의 회원을 보유했다. 서울시 나눔카 대행 등 다각도로 사업 확장을 하는 가운데 성장 모멘텀 확보를 위해 그동안 투자 유치 노력을 기울여왔다.


    종합제약사 도약 목표

    쏘카 지분 투자엔 스타트업과의 협력관계 구축 및 공유경제 확산을 위한 ‘착한 투자’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카셰어링 사업은 2000년 이후 유럽·북미에서 본격화했으며,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국내에서도 매년 30%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며, 2020년엔 회원 수 1000만 명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통 체증, 공해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여함으로써 정책적 지원도 기대되는 분야다.

    SK㈜의 신성장 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제약의 경우 중추신경계 신약 개발과 의약품 생산사업의 확장이 본격화했다. SK㈜의 신약 개발 자회사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YKP3089)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탁월한 약효를 인정받아 뇌전증 신약 중 세계 최초로 임상 3상의 약효시험 없이 신약 승인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국내 뇌전증 분야 최고 전문가로 YKP3089 임상 2상에 참여한 이상건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금까지 YKP3089와 같이 뛰어난 약효를 보인 약물은 없었으며, 특히 난치성 환자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도 YKP3089가 2018년 시판되면 미국에서만 연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두게 되고, 향후 뇌전증 치료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내다본다. 제약산업 전문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모니터(Datamonitor)에 따르면,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14년 49억 달러 규모에서 2018년 61억 달러로 연평균 6% 이상 지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을 포함, 국내 최다인 15개 신약후보 물질의 임상시험 승인(IND, Investigation al New Drug)을 FDA로부터 확보했다. 현재 수면장애 신약(SKL-N05)의 글로벌 임상 3상이 진행 중이고, 급성 반복발작 신약(PLUNIAZ)은 신약 승인 신청을 마친 상태다.

    SK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속에서도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신약 개발에 장기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SK바이오팜을 지주회사인 SK㈜ 아래에 둔 것도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다.  

    SK바이오팜의 비전은 단순 신약 개발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제약사들이 대개 임상 1상 혹은 2상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하는 데 반해, SK바이오팜은 글로벌 마케팅과 판매까지 자체적으로 맡는 종합제약사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4월 1일 신약개발연구소를 대덕연구단지에서 판교 테크노밸리로 이전했으며, 향후 바이오기업들과의 연구개발(R&D) 협업 확대와 사업 확장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SK의 바이오·제약 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은 의약품 생산업체 SK바이오텍이다. SK㈜는 지난 2월 SK바이오텍 지분 100% 인수와 4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SK바이오텍은 SK바이오팜이 지난해 4월 의약품 생산사업을 분할해 설립한 회사다. 지분 인수를 통해 SK는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2020년까지 약 85조 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의약품 생산시장에 본격 뛰어든 것이다.



    “지주회사도 자체 성장해야”

    SK바이오텍은 2015년 매출 757억 원, 영업이익 200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6%에 달해 미국과 유럽의 주요 CMO(위탁생산) 회사 영업이익률 평균인 15%를 훨씬 웃돈다. 저가 복제약이 아닌 특허권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의 원료 의약품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SK바이오텍은 현재 대덕연구단지 내 4개 생산설비를 운영 중이며, FDA와 유럽의약품기구, 일본 후생성의 현장 실사를 통과할 정도로 우수한 품질관리 역량을 인정받는다. 의약품은 각국 허가기관 및 제약사의 엄격한 규정을 충족하는 시설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

    SK바이오텍은 지난해 11월 세종시 명학산업단지에 증설 부지를 확보해 현재 16만L 생산 규모를 2020년까지 64만L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완제 의약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유망 업체와의 협력 및 인수합병(M&A)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도 SK바이오텍에서 생산하게 된다.

    국내에서 SK㈜처럼 신사업을 자체 발굴해 적극 투자하는 지주회사는 많지 않다. 대다수는 자체 사업을 갖지 않은 순수 지주회사다. SK㈜가 이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는 국내외 경영환경에서 지주회사도 개별 자회사와 마찬가지로 자체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생존과 더불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조대식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2013년 취임해 통합지주회사 출범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조 사장은 “지주회사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체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뛰어 기업 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SK㈜는 앞으로도 성장성이 높은 사업영역을 중심으로 자체 투자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성장 포트폴리오 구축에 힘쓸 계획이다. 이에 따라 SK가 경쟁력을 지닌 에너지·화학, ICT, 반도체 등의 사업 영역을 중심으로 M&A, 지분투자 등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SK㈜는 이를 통해 출범 당시 약속한 ‘2020년까지 매출 200조 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미래 성장사업 육성과 사업형 지주회사로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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