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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브렉시트 쇼크’ 현장취재

  • 런던=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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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스널 벵거 감독의 고민
  • ● 410만 명 재투표 청원…9월 국회 논의
  • ●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다스리자”
  • ● “관용, 포용, 개방 정신 흔들림 없다”
  • ● ‘연내 협상 시작 2018년 12월 EU 탈퇴’
  • ● 한국, EU-영국 이중 규제 가능성
영국에 고립된 영국 ‘해가 빨리 지는 나라’로?

7월 2일 런던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브렉시트 반대자들. [정현상]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휴대전화 2대를 들고 문자에 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2015~2016 시즌에서 2위에 오른 강호 아스널을 20년 가까이 이끌어온 명장(名將). 7월 5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유로2016 4강전(프랑스 대 독일)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프랑스인으로 영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인 그에게도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비록 투표는 하지 않았지만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자신의 일도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분간 괜찮겠지만 장기적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EU 국가 선수들은 영국의 지역 선수들처럼 국경 장벽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영국이 EU 안에 있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도 이처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EU 선수 332명이 떠나야 할 것이라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한국 선수도 파운드 환율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됐다. EPL 구단들은 앞으로 복잡한 절차 때문에 외국인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 더 시티, EU에 대한 반감

정말 영국 국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일까. 브렉시트는 그들의 일상을 온통 뒤바꿔놓을까. 영국 중하층 계급에게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 이상이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영국 영화 ‘피버 피치’(1997). 애인보다 축구가 더 중요한 영국 남자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아스널 축구 팬인 주인공이 1부 리그 우승을 21년 만에 맛보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영국의 자부심이던 EPL이 몰락한다면 영국인의 축구 문화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영국 바깥에서 보면 브렉시트는 분명 영국인의 제 살 깎아먹기 같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아웃’ 51.9%, ‘인’ 48.1%)가 세 가지에 대한 항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민 급증,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 더 시티) 금융인들, 유럽연합(EU) 관료주의가 그것.

소외된 잉글랜드 하층 백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선거일 아침 영국 전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투표를 포기한 젊은이가 많았다, 거짓 공약에 속아 탈퇴를 결정했다, EU가 뭔지도 모르고 투표했다 등등의 분석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영국 사람들이 브렉시트를 택하기까지의 긴 역사와 그들의 속내에 대해선 제대로 분석하는 언론이 없었다. 예고된 경제위기를 알면서도 브렉시트를 택했다면 뭔가 정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알고 싶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자가 런던을 찾은 7월 1일은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지 일주일 뒤였다. 저녁에 런던 시내 패링던 역 근처의 퍼브(pub)에 들렀을 때 대형 스크린에선 윔블던 테니스 경기 장면이 나오고 있었고,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경기를 지켜봤다.

런던 외곽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사라 클리버 씨는 “EU 잔류에 투표했다. 투표 이전부터 주택 경기가 좋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앞으로 더 나빠진다고 하니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는 K씨는 재투표 가능성을 묻자 “해외 출장 중이어서 투표를 하지 못했는데, 나도 EU 잔류에 투표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결정된 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 유로 2016에서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패해 억울하다고 경기를 다시 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 닥치는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런던의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국면 전환 단계 같다. 주말에도 예고된 시위 같은 것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토요일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처럼 시민사회가 요동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상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주말에 국회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일대가 시위대에 점령당했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 사건이 줄을 잇고 있었다. 금융중심지 ‘더 시티 오브 런던’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고, 정치권은 새로운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요동쳤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민의 속마음과 영국의 미래를 7가지 키워드로 추적해봤다.

1. 웨스트민스터 시위대 ‘유럽으로 행진’
7월 2일 오후 1시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광장. 화창한 날씨 같은데 마른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유럽으로 행진(March for Europe)’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 부근에서 국회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광장까지 약 3km 구간에 차량이 전면 통제되고, 약 3만 명의 시위대 행진이 이어졌다. 브렉시트 이후 최대 시위다. 거짓 공약 때문에 국민투표 결과가 잘못 나왔다며 항의하는 시위지만 거리로 나선 이들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시위를 하다가 인근의 퍼브로 몰려가 맥주로 목을 축이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전파된 이번 시위 계획은 이러했다.

7월 2일 토요일 오후 런던, ‘유럽으로 행진’에 참가합시다.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입니다. 이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음악 도구, 깃발, 배너를 들고 나오세요. SNS에 #MarchForEurope 단어를 퍼뜨립시다.’

출발지: 런던 파크레인 30
시간: 오전 11시부터
복장: 컬러풀
행진구간: 파크레인에서 국회의사당 광장까지

시위대에는 EU 깃발을 든 이도 있고, 집에서 만든 배너에 갖가지 눈에 띄는 글귀들을 적어 나온 이들도 있었다. 북소리에 맞춰 ‘Bremain(British+ remain)’ ‘거짓 공약으로 결정된 브렉시트(BREXIT, Built in Lies)’  ‘우리는 모두 EU가 필요하다(We all need EU)’ ‘Eton Mess’(사립학교인 이튼스쿨 출신 정치인들이 망쳐놓았다는 뜻) 등을 외쳤다.

코미디언 마크 토머스는 “분노와 실망, 뭔가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 시위를 조직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투표가 공정한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 탓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좌절감에서 벗어나 뭔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 광장에 설치된 단상에 오른 토머스는 파크레인에서부터 행진해온 시위대를 맞이하며 비틀스의 ‘헤이 주드’를 선창했다. 시위대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음악인 자비스 코커는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세계지도를 들고 “여러분은 지리적 여건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영국은 유럽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벗어나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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