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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유럽지식인의 반격

신자유주의로는 인류 미래 없다

  • 장행훈 경원대 교수

신자유주의로는 인류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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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품과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더욱 푸는 등 자유무역의 길을 토의하기 위해서 미국이 오랫동안 준비한 12월초의 시애틀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는 세계각국에서 모인 4만여명의 NGO(비정부기구)회원들과 시애틀 경찰의 충돌로 수라장으로 변하고 세계 134개국 통상장관과 무역전문가들은 회의 의제에도 합의하지 못한 채 뿔뿔이 헤어져야 했다.

시애틀의 WTO회의가 농민, 노동자,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이익대표들의 격렬한 반대시위로 상가 유리창이 깨지고 경찰과 충돌한 시위자들이 다치는 유혈사태로 바뀐 것은 이제 WTO회의가 단순한 무역회담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WTO를 통상과 고용과 같은 전통적 경제문제만을 토의하는 기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숨쉬는 공기, 그들이 사는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는 장소, 우리의 생활환경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모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반인에게는 낯선 세계무역기구가 각국의 국회에서 통과한 국내법까지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나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지게 됐다.

이제는 WTO를 신자유주의 및 세계화의 대행기관으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애틀 WTO회의의 결렬은 단순히 미국이 자국의 농산물과 서비스의 판로를 확장하기 위해서 준비한 계획이 좌절됐다는 사실보다 훨씬 큰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21세기에 들어섰다. 새 세기에도 지난 20여년간 국경을 넘어, 이데올로기의 벽을 뚫고 세계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맞닥뜨리게 될 것 같다. 레이건과 대처 치하에서 그 활력을 과시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특히 소련이 붕괴한 이후 세계의 유일한 가치로 군림하게 됐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국경의 벽을 낮춰 시장이 경제를 지배할 수 있도록 자유의 영역을 최대한으로 확대하여 자본과 물자가 자유롭게 유통하게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매력적이다. 세계화의 논리는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세계화의 함정

국경도 경비병도 없는 세계화는 처음부터 금융의 세계화를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양의 외화가 짧은 기간에 아무 통제 없이 들어오고 나가게 되면 경제생활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이 간단한 진리, 그 위협을 프랑스의 ‘르몽드’ 같은 신문에서는 90년대 초부터 지적하고 경고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매력에만 눈이 어두운 개도국의 정부나 학자들은 매력 뒤에 가려져 있는 함정을 보지 못했다. 그 무지와 과도한 욕심의 대가가 한국을 비롯해서 태국, 인도네시아가 97년부터 겪은 외환위기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계은행과 IMF(국제통화기금)가 몇 해 전부터 과감한 외환자유화를 권고했고 그 권고를 따른 것이 아시아에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세계은행의 부사장이며 경제학자인 스티그러츠까지도 “이들 나라에서 자본이동을 자유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인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 하루에 거래되는 외환의 양은 1조8000억 달러로 상품과 서비스 교역액의 54배에 달한다. 이 거액의 돈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래될 수 있다. 환차(換差)를 노리는 외환투기꾼들의 환거래 때문이다. 이들의 장난으로 외환시세가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외채가 많은 약소국가는 이들의 농간에 피해를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도 그 피해국의 하나다

무력해지는 국가

금융시장은 거래되는 외환량이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뿐 아니라 이른바 파생(Derivatives)상품, 선물(Future)상품 등 거래상품이 다양하고 규칙이 워낙 복잡하다. 이 복잡한 규칙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십여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금융시장의 지배자’로 간주되며 이들의 말 한마디, 몸 동작 하나에 따라 값이 오르내리고 증권시장이 요동치기도 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금융그룹과 비교할 때 국가의 힘은 정말 미약하다. 1994년 12월의 멕시코 금융위기가 그 예일 수 있다. 멕시코를 돕기 위해 미국이 IMF와 세계은행과 함께 단시일에 모을 수 있었던 외화총액은 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미국의 3대 연금 기금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Fidelity Investment), 밴가드 그룹(Vanguard group), 캐피털 리서치 매니지먼트(Capital Research Management)가 운영하는 자금을 합하면 5000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돈이 이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이것이 세계화다. 이 거액의 자본은 사이버 공간에서 전지구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한다. 이 사이버 공간이 일종의 새 국경이고 새 영토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상당수 국가의 운명이 이 사이버 영토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회계약도 없고 이들을 제재할 법도 제재할 사람도 없다. 이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의(恣意)로 만들어 놓은 법이 있을 뿐이다. 그 법은 그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금융재벌들은 정부로 하여금 인기 없는, 그러나 불가피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국가가 시장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틱’의 이냐시오라모네 주간에 의하면 금융의 세계화는 세계적 금융그룹을 위한 독자적인 ‘국가’를 하나 만들었다. 이것은 초국가적인 ‘국가’로 독자적인 제도와 기구, 그 영향력 망(網)과 행동수단을 갖추고 있다. IMF, 세계은행, OECD, WTO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기구는 ‘시장의 미덕(美德)’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 초국가적 국가는 금융시장과 대재벌기업이 좌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의 후계자인 WTO는 1995년 이후 의회민주주의의 제어권 밖에 있는 초국가 기관이다.

WTO는 노동, 환경 또는 공공보건분야에서 회원국에 법률의 폐지를 요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원국의 법률이 WTO 규정에 저촉될 때 ‘통상자유 위반’이라고 선언하고 회원국에 그 폐지를 명할 수 있다. 시애틀회의에 그렇게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1995년 이후 OECD에서 논의돼온 다자간 투자협정(MIA)도 WTO와 비슷한 권한을 인정하는 초국가적 규제를 시도하는 협정이다. 주로 프랑스 언론에서 쟁점으로 보도하고 있고 영-미 언론에서는 크게 취급하지 않았지만 문화주권을 침범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협정이다. 원래는 1998년 조인될 예정이었는데 서유럽의 많은 시민단체들이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여 아직도 최종안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기업합병으로 한 국가의 GDP(국내총생산)을 능가하는 거래기업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기업 제너럴 모터스(GM)의 매출액은 덴마크의 GDP를 능가하고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매출액은 포르투갈의 GDP보다 많다. 엑슨-모빌의 매출액은 오스트리아의 GDP보다 앞선다.

신자유주의원칙에 따른 공기업의 민영화로 대기업은 그 규모가 더욱 커지고 대조적으로 국가는 점점 그 권한이 줄어든다. 1990~97년에 세계적으로 국가가 민영화한 재산은 그 총액이 513억 달러에 달했다. 이제 세계에서 100대 그룹에 드는 다국적 대기업은 하나 하나가 120개 국가보다 수출량이 더 많다. 23위 안에 드는 기업들은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와 같은 개발도상의 거인국들보다 더 많이 수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수출량은 전세계 무역량의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대금융그룹, 대미디어그룹의 경영주들과 이들 다국적 기업의 경영주들은 권력의 실체를 장악하고 강력한 로비를 통해서 각국의 정치적 결정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고 있다. 거대기업의 권력증대로 이들 앞에서 전통적인 반권력(反權力)-노조, 정당, 독립언론-은 점점 무력해지는 것 같다. 세계화의 제1차적인 주역도 국가가 아니라 이들 다국적 대기업이다. 국가는 점점 그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정복의 주역이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의 정복자는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산업그룹, 금융그룹이다. 지구를 지배하는 지배자가 지금처럼 그 수가 적은 것은 일찍이 없었다. 이 재벌그룹은 미국, 유럽, 일본의 3대 경제권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절반은 미국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복자의 출현은 근본적으로 미국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지구적인 영향력을 가진 금융과 기업그룹이 다시 덩치를 키우는 기업합병이 기술과 정보혁명의 영향하에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998년 세계적으로 기업합병 규모는 2조 유로(2조 1000억 달러)를 넘었다. 세계화가 그만큼 빨라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화는 다른 국가의 정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시장 정복을 노린다. 이 현대적 새 권력의 관심은 왕년의 침략이나 식민시대처럼 영토의 정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富)를 장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정복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정복도 그 과정에 무수한 피해자를 내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토착산업체가 세계화의 강풍에 휩쓸려 쓰러지고 있으며 그 결과 사회가 입는 고통이 엄청나다. 대량실업, 불완전 고용, 직장의 불안정, 소외현상이 나타난다. 유럽에만 5000만명의 실업자가 생겼고 전세계적으로는 실업자와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이 10억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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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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