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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속에 있다

일본총리 자문단 ‘21세기 일본의 구상’보고서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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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라는 말에 만족하지 않는다.

너무 오래 그 자리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에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자문단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가 지난달 총리에게 전달한 보고서는 바로 그에 대한 회답이다. 보고서에 ‘영어공용론’이 들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그것은 보고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초 오부치 총리가 간담회를 구성하며 던진 화두는 ‘부국유덕(富國遺德)’이었다. 총리가 “지금 우리는 잘삽니다. 그러나 잘 살 뿐만 아니라 덕도 있는 국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 이 보고서다. 오부치 총리가 말하는 ‘덕(德)’의 개념은 확실치 않다.

대체로 경제력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면에서 세계무대에서 존경받는 국가, 영향력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물론 달라진 일본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오부치 총리는 1월28일 정기국회 본회 연설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보고서는 일본 및 일본인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가 21세기 최대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숱한 고난을 극복해온 우리 일본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안에 있다’는 보고서의 제목은 일본 및 일본인 안에 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힘차게 선언하고 있다. 정말로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이런 평가로 볼 때 오부치 총리가 보고서의 내용을 전부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꽤 참고할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이날 신문 한 면에 해당하는 오부치 총리의 긴 시정연설 구석구석에는 벌써 보고서의 냄새가 상당히 배어 있었다. 정치인들이 이 보고서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지 알 수 없지만 이 보고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웃국가,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국가의 지식인들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료들이 만든 보고서가 아니라 비교적 발언이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참신함도 눈에 띈다.

보고서는 6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장이 총론이고 나머지는 간담회를 구성하고 있는 5개의 분과별 보고서에 해당한다. 5개 분과는 이름부터 발상의 전환을 느끼게 한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본’ ‘풍요로움과 활력’ ‘안심할 수 있고 윤택한 생활’ ‘아름다운 국토와 안전한 사회’ ‘일본인의 미래’라는 분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오부치 총리의 말대로 ‘곤충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새의 눈’으로 본 것이므로 큰 틀에서 본 일본의 장래라 할 수 있다.

간담회는 1999년 3월30일 16명으로 출발했다. 좌장은 가와이 하야오(河合準雄)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이 맡았다. 5월에는 33명이 추가됐다. 학계 경제계 언론계는 물론이고 문화계 인사 등도 폭넓게 참여했다. 8월에는 오부치 총리까지 참석해 ‘합숙’을 해가며 토의를 하는 등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였다. 책상머리에서 회의만 한 것이 아니다. 국내외 인사들의 의견도 두루 수렴했다.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방크 사장도 의견을 개진했다.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5개국 70명과 접촉했는데 이중 한국인은 모두 18명으로 비중있게 다뤘다. 김종필(金鍾泌) 당시 국무총리, 이종찬(李鍾贊)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 어어령(李御寧)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최상룡(崔相龍·현 주일대사) 당시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장, 조석래(趙錫來) 효성그룹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간담회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높아서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의 김태동(金泰東) 위원장 등 9명이 집단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시대가 바뀔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저런 청사진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청사진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할 만한 역량과 의지를 그 국가가, 아니면 정치적 리더가 갖고 있느냐이다. 이 점이 보고서 내용보다 더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눈으로 그 가능성을 해부해 보자.》

이 보고서는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라는 큰 제목 아래 ‘일본의 프런티어는 일본 속에 있다- 자립(自立)과 협치(協治)로 건설하는 신세기’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은 총론(제1장)과 5개 분과별 보고서(제2장에서 제6장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과별 배경 설명 및 의미는 주로 총론에 해당하는 제1장의 내용을 참고했고, 총론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과 구체적인 방법론 등은 각 분과별 보고서에 실린 내용을 요약했다. 발췌할 때는 역자가 판단해 일본을 이해하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이 보고서에서 새롭게 등장한 조어(造語), 번역상으로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지 않는 용어들은 별도의 설명(상자 기사)을 달았다. (번역·정리/ 신정화)

[ 일본의 거대한 잠재력 ]

일본 국민들은 1990년대 들어 무엇인가 크게 변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거품경제의 붕괴, 고베 대지진의 충격, 그리고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옴진리교 테러사건과 나고야(神戶) 연쇄살인사건 등-은 일본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더 나아가 일본사회의 가치체계와 윤리규범이 병들었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현 일본사회의 경직성과 취약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전(戰前)시대부터 일본 내부에 조금씩 일상적으로 축적되어 온 결과다.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강조된 ‘서양 따라잡기’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서양 따라잡기’ 모델에 기초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서방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 동안 쌓아올린 국가시스템은 일본의 정치·사회에 안정을 가져왔고 국민들은 이 시기를 ‘성공시대’로 기억하게 됐다.

그러나 전후 일본의 성공모델은, 정확히 말해 모델에 대한 과신은 일본의 활력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제는 ‘서양 따라잡기’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완성된 새 모델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답을 외부에서 찾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를 참고로 하면서도 일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즉 일본의 미래에 적합한 모델은 일본 안에 잠재하는 뛰어난 자질, 재능,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고 꽃피우는 것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일본 ]

21세기 일본의 프런티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그것들이 일본 외부가 아닌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것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일본어 ‘센쿠(先驅)’는 우리말로 ‘선각(先覺)’의 의미를 갖고 있다. 남보다 앞서서 나간다는 뜻에서 ‘개척정신’으로 바꾸었다(역자).

일본에는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개인이 앞서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는 일본인에게 팽배한 ‘평등’의식과 관계가 깊다.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고 종(縱)적 조직, 횡(橫)적 의식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21세기 일본은 개척정신으로 무장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도전과 활약에 일본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의 평등’을 종결시키고 ‘새로운 공평성’을 도입해야만 한다. 개인의 능력과 재능에는 차이와 격차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업적과 장래성을 평가하는 ‘공정한 격차의식’을 갖고 ‘기회의 평등’이 보증돼야 한다. 동시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의 개념을 바꿔야 하며 특히 영어교육을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

①교육의 전환: 개인과 사회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개척정신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의 균질성과 획일성을 타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메이지 시대의 교육목표인 근대화를 위한 인재양성법의 근본부터 고쳐야 한다. 평등을 위한 교육에서 각 개인의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변화시킨다.

‘의무로서의 교육’은 최소한으로 하고 엄격하게 시행한다. 반면 ‘서비스로서의 교육’은 시장 질서에 맡기고,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지원에 그쳐야 한다. 예를 들어, 초중등교육은 교육의 내용을 엄선해 현재의 5분의 3까지 내용을 축소한다. 학교는 주 3일 수업을 한다. 이 3일은 ‘의무로서의 교육’을 하고 나머지 2일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사회 양식에 비추어 건전한 목적을 지닌 일을 한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5분의 3으로 삭감된 교육내용은 국민이 국민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저 한도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별도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적으로 제공되는 보충수업교실을 개설한다. 이 보충수업은 학교 교사가 3일 수업 후 남은 2일 동안 실시해도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교사들이 학교 밖에서 자신들이 경영하는 학원에서 실시해도 된다. 이 부분은 의무교육의 연장이므로, 국가가 그 비용을 100% 부담한다.

한편 주3일의 교과내용을 완전히 소화한 학생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한층 고도화된 전문영역-학업, 예술, 스포츠, 각종 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이 부분은 민간교육기관이나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교육집단이 참가하며 나아가서는 기존 학교의 교실을 개방해도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행정에 해당하므로, 거기에 알맞은 재정 지원을 행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교육 쿠폰을 지급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제도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르며 악용을 방지할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쿠폰 전매 금지, 또는 민간 교육기관과 지도자의 자격 인정 등 논의할 문제는 산더미 같다.

이 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장에만 맡겨두었던 문화활동을 국가가 지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극장, 콘서트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생애학습강좌, 보이스카우트 활동, 지역시민운동 등이 이제와는 다르게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된다. 기존 교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기초적인 부분(학교교육)은 공적으로 보장되지만 개인적인 노력과 열의에 따라 자유롭게 민간교육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부담할 교육비 총액은 현재보다 증가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는 앞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다.

의무교육 수료 후 교육은, 현재의 고교를 포함해 자유화와 다양화 그리고 상호경쟁원칙에 맡겨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이 각각의 이념과 학풍에 따라 개성화되며 그에 따라 원하는 학생상을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 고교교육은 그것을 어느 정도 지향하면서, 동시에 실제 사회의 다양화라는 목적에 맞춰 한층 더 복선화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그 정도로 준비를 갖추면 다음은 학생과 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일본사회의 다양화는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애에 걸쳐 문화와 친숙하고, 모험심이 풍부하고, 자기 책임에 눈을 뜬 기품 있는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

②일본의 국가전략으로서 영어교육: 국제 공용어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를 알고,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기초능력을 구비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영어교육 문제는 단지 외국어 교육이 아닌 일본의 국가전략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일본인 모두가 사회인이 될 때까지 실용영어를 구사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 위에서 학년에 구애받지 않는 수준별 반편성, 영어교사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충실한 연수, 외국인 교원의 과감한 확충, 외국어 학교에 영어강의를 일임하는 등의 방법이 고려돼야 한다.

그와 함께 공적 기관의 간행물과 홈페이지를 일어와 영어로 작성하도록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영어를 제2공용어로 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하지만 이것은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며, 우선 영어를 국민의 실용어로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성이 일본의 힘이다

과거 일본 사회는 동질성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다양화 시대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은 곧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다음 4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①스스로 설계하는 생: 국가와 공적 기관이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 수준의 사회보장을 제공하는 가운데 그 이상의 것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②지방자치 강화: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중앙이 지방에 부(富)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중앙집권형이었다. 21세기에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사 및 시읍장에게 이관한다는 지방분권의 발상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지역정부의 존재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역이 수평적인 관계에 서야 한다. 또한 지역주민이 서비스와 부담을 선택하는 본래적 의미의 ‘자치’가 구축돼야 한다. 지역행정은 최대한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집행이 가능한 조직이 되도록 하며, 반면 중앙정부의 역할은 전 국가적 차원의 일로 축소한다.

③과감한 이민정책: 글로벌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일본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종합적인 환경을 만든다. 간단히 말해 외국인이 일본에서 살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와 그를 위한 ‘이민정책’을 마련한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문호를 개방해 자유롭게 외국인의 이주를 허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인의 이주·정주를 촉진하는 명시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있는 유학생에 대해서는 일본의 고교·대학·대학원을 수료한 시점에서 자동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우선책’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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