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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도청망 에셜론 공포

폭파·납치·미사일, 단어만 나오면 감시대상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전세계 도청망 에셜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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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캐나다·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에 있는 에셜론 조직은 정보수집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이용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리스트는 매우 광범위하며 해당지역 주요 인사의 정책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이 시스템은 전세계 주요 정치가와 테러리스트 명단을 확보하고 감시하고 있다. 또 금융거래 예금이체, 항공기 진로, 주식정보, 국제회의, 시위, 반정부그룹도 주목한다.》
오늘도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GCSB) 직원 A씨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된 전세계 도청망 에셜론을 지원하는 뉴질랜드 정부 요원이다. 컴퓨터가 부팅되자 A씨는 비밀 번호를 입력한 뒤 키워드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그의 비밀 번호는 ‘******’. 이 번호는 매주 바뀐다. 오늘 아침 에셜론 시스템에 묶여 있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기지의 정보 분석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밀 번호를 입력하자 정보를 분석하는 지침이 나와 있는 기본 화면이 뜬다. 서로 다른 영역을 표시하는 네자리 숫자 코드가 화면 왼쪽에 세로로 열거되어 있다.

A씨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는 모두 어제 밤과 오늘 새벽, 태평양 상공에 떠있는 인텔세트7 위성이 낚아챈 따끈따끈한 통화와 전문 내용이다. 인텔세트7 위성은 동시에 9만건의 개인 통화나 팩스를 걸러낼 수 있다. 여기에 모아진 메시지는 곧바로 A씨가 일하는 뉴질랜드 정부통신안보국(GCSB)으로 보내진다. 뉴질랜드 GCSB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 에셜론 기지에서 보낸 자료도 쌓인다. 위성 통신을 도청하는 데 핵심은 강력한 컴퓨터다. 지상에 합법적으로 건설된 도청기지는 위성이 낚아챈 수백만의 통신들을 컴퓨터로 걸러낸다. 키워드와 주요 주소가 입력된 컴퓨터는 무수한 통신을 수천, 수백 단위로 축소한다. 이렇게 줄이고 나면 A씨 같은 정보 분석 요원들이 투입된다.

A씨 컴퓨터 화면에 뜬 숫자 코드 가운데 4066은 러시아 트롤 어선 어부들의 교신 내용이고 5535는 남태평양 상공을 날아가는 일본의 외교 전문, 4959는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교신이다. 7859는 한국과 중국 대륙 사이의 교신 내용이다. A씨는 한반도 담당이다. 그는 오늘 하루동안 작업할 영역 코드인 7859를 쳐 넣었다. 7859를 입력하자마자 순식간에 모니터에 ‘조사 결과’가 뜬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수많은 교신이 오고가지만 A씨 컴퓨터에는 키워드를 검색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필요한 교신만 추려낸다.

검색된 결과는 모두 50건. 이 50건을 검토하는 것이 A씨의 오늘 과제다. 이 가운데 상부에 보고할 만한 내용이 발견되면, 곧바로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다섯째까지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오늘 키워드는 ‘마약’이었는데, 넷째 통신까지는 주고 받는 농담이고 다섯째는 영화에 나온 마약 이야기다. 그런데 여섯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A씨는 곧바로 통화 내용 전체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일단 영어로 번역한 뒤, 다시 이 내용을 에셜론 시스템인 UKUSA 네트워크에 통용되는 정보 보고 형식으로 작성했다.

“오늘 한 건 했어.”

A씨는 쾌재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에셜론 최전방에서 진행하는 작업이다. 가상 인물 A씨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BRS Search’라는 조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대한 기초 정보를 여러 분석가가 동시에 그것도 짧은 시간에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BRS Search 프로그램은 축적된 문서를 단어, 개념, 구(句), 절 등 여러 문장 단위로 분석한다. 이 프로그램은 데이터베이스 안에 축적된 문서 수백만장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단번에 끄집어낼 수 있다. 시간은 몇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나온 정보 분석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BRS 조사 프로그램은 ‘사전 프로그램(Dictionary program)’이라고도 부른다. 메시지 수백만 건 안에 있는 모든 단어와 숫자를 읽고 지정된 키워드와 숫자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누군가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이런 작업들은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에셜론 시스템이 노리는 ‘단어’는 이런 것이다. 우선 사람이나 배, 조직, 국가나 주제 이름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에셜론이 미리 지정한 텔렉스나 전화 번호, 개인과 사업가, 비정부기구, 정부 조직 인터넷 주소나 텔렉스도 들어간다. 가령 각국이 주고받는 외교 전문 가운데 ‘수바(Suva,남태평양 피지섬의 수도)’나 ‘원조(aid)’라는 용어가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면 곧바로 검색할 수 있다. 여기서 영사관(consular)급에서 주고받는 일반적인 전문을 추리고 싶다면 ‘NOT consul’이라고 쳐 넣으면 영사관급 전문은 바로 빠진다.

키워드로 교신내용 검색

어느 정도냐면 분석 요원이 ‘납치’라는 키워드를 쳐 넣으려다, 자판을 잘못 두드려 ‘망치’라고 썼다고 하자. 순식간에 에셜론에 협조하는 세계 각 기지에 쌓인 자료에서 ‘망치’라는 표현이 든 교신이 걸러진다. 이처럼 에셜론은 모든 국가와 기업, 개인끼리 주고받는 교신 내용을 검색한다.

이는 어떤 이가 특정인의 전화를 결사적으로 도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이 어쩌다 에셜론이 주목하는 ‘단어’를 말하거나 이런 단어 조합을 주고받기만 해도 에셜론 요원의 관심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도청망 컴퓨터가 모든 통화 내용을 다 잡아내지는 않는다. 도청망 컴퓨터가 주목하는 단어는 ‘파괴’ ‘납치’ ‘암살’같은 의미 있는 용어다. 무역 분쟁이 잦은 요즘에는 ‘클레임’이나 ‘덤핑’같은 용어도 관심 대상이다. 일단 이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대화 내용은 주목받는다.

이 감시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요 인사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당신이 전화로 대학 동창에게 사고뭉치인 당신 아들 일을 의논한다고 치자. 동창에게 당신이 화가 난 목소리로 “내 아들놈이 지난 밤에 참지 못하고 기어이 폭발했다네”라고 하거나, 대화 중에 성이 나서 ‘납치’라든지 ‘파괴’ 라는 용어를 썼다고 하자. 이 용어는 에셜론 감청 컴퓨터가 노리는 키워드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신은 평범한 사람인지라, 적절한 분석 시스템을 거치면(이 경우 테러리스트를 식별하는 과정) 아마도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대화 내용이 분명하지 않거나, 중간에 끊기거나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신참 분석가가 판단을 잘못한다면 당신 이름은 영원히 ‘잠재적 테러리스트’ 명단에 저장될 것이다. 몇주 뒤나 몇년 뒤 당신이 다시 한번 비슷한 단어를 말한다면 감청 컴퓨터는 처음보다는 훨씬 빨리 이를 잡아낼 것이다. 당신 이름은 이미 등록된 상태고 두번째 발언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때 당신 이름은 ‘잠재적 명단’에서 ‘유력한 감시 대상’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

이 시스템 아래서는 특별히 당신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알 필요도 없다. 문제가 되는 키워드만 있으면 자동으로 검색해 낸다. 에셜론 시스템 아래서 5개 국가의 중앙 컴퓨터는 자국이 지정한 키워드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공유하는 다른 4개국 정보기관인 미국NSA, 영국 GCHQ, 호주의DSD, 캐나다 CSE가 정한 단어도 조사한다. 모든 도청 내용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 모든 시스템을 개발한 기관은 바로 미국 국가안보국(NSA)이다. 사실 최근 30년간의 컴퓨터 기술 발전은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에셜론 시스템이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IBM 컴퓨터에서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기술 진보는 NSA와 에셜론에 이바지했다. NSA는 컴퓨터 산업 초창기에 자금 수백만달러를 민간 기업에 제공했고, 컴퓨터 회사가 만든 시제품을 가장 먼저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NSA가 없었다면 컴퓨터 산업이 지금보다 10~15년은 뒤져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일반에게는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까마득한 미래 일로 여겨지던 50년대, NSA 기술진은 초보적인 컴퓨터 기계라도 인간 두뇌보다는 암호문 패턴을 찾는 일에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0년대 후반에 최초의 데스크용 컴퓨터 보가트(Bogart)와 솔로(Solo)를 도입한 것도 NSA이다.

하지만 에셜론이 처음 창설될 때는 지금처럼 강고하고 유기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NSA가 1952년 공식 출범했지만 에셜론 활동은 1947년 UKUSA라는 국제 조약으로 시작했다. 이 해에 조약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나토 회원국이었다. 이 조약은 처음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저 서로 수집한 정보를 주고받고 이를 중앙정보처리 본부로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 NSA가 출범한 뒤, 양상은 달라졌다. 우선 회원국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화이트 앵글로색슨 국가로 확정했다. NSA는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다. 회원국들은 대신 감청 기지를 제공했다.

에셜론 본부는 영국 맨위드 힐

에셜론 시스템 본부는 영국 요크셔 맨위드 힐(Menwith Hill) 기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미국인 10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이 기지는 1956년께,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 기지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통신수단을 동시에 도청하는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예산 수십억 달러가 매년 투입되고 있다. 이 기지에는 거대한 골프공 모양의 둥근 구조물이 24개 서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속에는 위성 접시 안테나와 도청 장비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물은 미국 첩보위성이 보내는 정보를 저장하고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상공에 떠 있는 상업 위성이 중계하는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이 기지가 주로 모으는 것은 국제적인 안보 이슈에 관한 정보다. 무기 확산 방지, 마약 수출이나 테러리즘에 관한 정보는 단골 메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8년에 비밀 해제된 유럽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지는 불법 도청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군사적인 목표물도 엿듣는 것이다.

에셜론 시스템이 맨위드 힐 기지와 관계있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1988년 7월 한 미국 신문기사에서 처음 불거져 나왔다. 당시 문제 신문인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는 공화당 하원의원 스톰 터몬드의 전화 통화가 자동으로 도청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도청이 엉뚱하게도 영국 맨위드 힐에서 일어난다는 보도였다. 이 뉴스의 제보자는 ‘록히드 우주.미사일 주식회사’의 사원 마가레트 뉴삼이었다. 맨위드 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미 하원 관계자에게 이 곳에서 일할 당시 이어폰을 통해 스톰 터몬드 의원의 전화 내용을 도청했다고 진술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조사진은 증인들을 심문하고 에셜론 시스템의 계획과 지침을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허사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공식적으로 정해진 도청 대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에셜론은 전세계의 모든 통신 내용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문 대상이었던 하급 요원이 하는 일은 주어진 이름이나 단어를 컴퓨터로 검색하는 일뿐이었다. 결국 조사진은 이 시스템에 손을 대지 못했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가 서로 스파이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려진 일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중요한 것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감시하는 기지가 바로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기 때문이다. 호주 관련 사실은 1970년대 후반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셜론 호주 기지에 대한 단서가 처음 잡힌 것은 1975년 무렵이다. 에셜론 호주 기지는 캔버라 근처의 숲이 우거진 해안인 데킨에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설을 처음에는 데킨 전화 교환국 정도로만 알았다. 이후 1977년 3월9일 호주 야당 총재 빌 하이든은 이 도청망과 관련해 정부에 중요한 질문을 했다. 같은 해 4월19일 호주 총리 말콤 프레이저는 국가 안보 이익에 관련한 사항이라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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