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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로 세계 정복한 맥도날드 성공신화

어디서,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햄버거맛 낸다

  • 박태견 tggpark@yahoo.co.kr

어디서,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햄버거맛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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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년 밀크셰이크 기기 외판원인 크로크는 캘리포니아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는 맥도날드 형제를 만났다. 맥도날드 형제의 상술을 세심히 관찰한 크로크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무릎을 치고, 이 형제와 계약을 맺었다. 그날 이후 맥도날드는 전세계를 덮는 마이다스의 손이 되었다. 맥도날드의 신화는 메뉴를 단순화하고 모든 공정을 표준화하고, 화장실 운영 규칙까지 만든 매뉴얼을 배포함으로써, 어느 곳에서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햄버거 맛을 낼 수 있게 한 데 있다. 한국 정치는 대통령 일개인의 능력에 따라 융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한국 정치를 맥도날드처럼 표준화·매뉴얼화해, 어떠한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최악의 경우를 피하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 지구촌 어디에선가 다섯 시간마다 하나씩 반드시 새로 가게를 여는 기막힌 프랜차이즈 식당이 있다. 10년 전인 지난 1990년까지만 해도 신규 매장은 15시간마다 하나씩 만들어졌다. 그런데 불과 10년 사이 세 배나 빨라진 것이다. 이런 신규 매장 신설 속도는 전세계 기업 중 넘버 원이다.

5시간마다 하나씩 매장 열어

이렇게 놀라운 확대재생산 능력을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은 다름아닌 M자형 황금빛 아치 문양과 광대 모양의 로날드 맥도날드 캐릭터로 유명한 ‘맥도날드(McDonald’s)’다. 맥도날드는 미국의 상징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상징이자 최대 성과물이다. “미국의 정보원들이 뚫지 못하는 나라에도 맥도날드 영업 사원들을 보내면 모든 일이 성사된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 자본이 침투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침투하는 두 가지 제품이 있으니,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맥도날드는 최근 한반도 긴장 완화를 틈타 금강산 관광특구를 시작으로 북한에도 진출하는 계획을 적극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맥도날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자. 자화자찬이 대단하다. “전세계 119개국에 2만7000개의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 수만 150만 명에 달한다. 확장 속도도 빨라 99년 한 해에만 1790개의 레스토랑이 새로 문을 열었다. 매일 5개씩 늘어난 셈이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해외(미국에서 본 외국)에서 오픈했다. 2000년에도 1800∼1900개의 레스토랑이 새로 오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에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은 4300만 명. 전세계 인구의 거의 1%에 육박하는 사람이 매일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찾는 셈이다. 지난 99년에만 38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그중 33억 달러가 이익이었다. 수익증가율도 13%나 됐다.” 자화자찬할 만한 실적이자 대단한 성장세다. 국내에서는 1988년 압구정동에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240개의 점포가 영업중이다. 내년에는 100개를 더 늘릴 계획이다. 매출 신장세도 놀라워, 진출 첫해인 1988년에는 19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2000년에는 2300억원어치에 달해 12년 만에 120배로 늘어났다. 맥도날드의 간판 제품인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감자튀김)는 지상에서 가장 단순한 음식에 속한다. 일각에서는 ‘정크 푸드(Junk Food: 쓰레기 음식)’라고 부를 정도로 영양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별볼일 없다. 심장병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수치만 높여주는 그렇고 그런 음식이다. 하지만 전세계 인구의 1%가 매일같이 이 음식을 먹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정크 푸드를 만들건 말건 맥도날드 열풍은 범지구촌에서 더해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이라는 부자 나라가 먹는 음식이라는 막연한 호기심 때문인가. 아니면 밥 먹을 시간도 아껴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는 세계 노동환경의 변화 때문인가.



외판원과 음식점 형제의 만남

이런 의문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맥도날드의 50년 성장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날드는 두 사람의 창의적인 음식점 주인과 탁월한 경영능력을 갖춘 밀크셰이크 기기 외판원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직후인 1954년의 일이다. 당시 52세이던 밀크셰이크 기기 외판원 레이먼드 크로크(Raymond Kroc)가 자기 제품을 많이 사준 단골고객을 만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 버나디노에 있는 한 휴게소 식당을 찾았다. 가게 주인은 모리스 맥도날드와 리처드 맥도날드(Maurice & Richard McDonald) 형제였다. 1948년 일반 식당을 인수해 패스트푸드점으로 개조한 이 형제는 독특한 방식으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형제가 운영하는 가게에는 한 번에 5개의 밀크셰이크를 만들 수 있는 기기가 8대나 있었다. 한두 개만 비치하는 다른 음식점과는 크게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많은 기기를 설치했는데도 휴게소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식당 밖까지 손님들이 줄 서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종업원들도 대단히 바빠, 흰 모자에 흰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은 쉴새없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 등을 나르고 있었다. 레이먼드 크로크는 ‘왜 이 집은 유독 이렇게 장사가 잘 되나’ 하는 흥미를 갖고 지켜보았다. 원인은 철저한 효율성 추구에 있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탁월한 경영자였다. 이들은 수십 가지에 달하던 휴게소 식당의 메뉴를 햄버거·프렌치 프라이드 포테이토·파이·밀크셰이크·소다수 등 9가지로 줄였다. 설거지 시간 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도자기 접시나 유리컵을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 종이제품과 플라스틱제품을 사용했다. 주문을 받은 후 60초 안에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햄버거 생산라인을 공정화했다. 훗날 존 러브는 ‘맥도날드, 아치의 뒤쪽’이라는 책에서 ‘맥도날드 형제는 음식 만드는 과정을 단순화하고 반복적이며 쉽게 배울 수 있는 작업으로 바꾸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착안해 자동차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던 일관 생산방식(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음식 제조과정에도 도입했다는 분석인 것이다. 맥도날드 형제는 햄버거 가격도 최저 15센트로 경쟁사들에 비해 파격적으로 낮춰버렸다. 박리다매(薄利多賣) 전술이었다. 오늘날 맥도날드를 있게 한 각종 경쟁력 요인을 초창기부터 골고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꼼꼼하게 관찰한 끝에, 원인을 찾아낸 크로크는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다!” 30여 년을 미국 전역을 돌며 밀크셰이크 기기를 팔아왔기에 남다른 경영 안목을 갖고 있던 크로크는 곧바로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 사업제휴를 제안했다. 미국 전역에 맥도날드 체인점을 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도날드 형제는 큰 욕심이 없는 평범한 음식점 주인이었다. 지금 가게에서 해마다 10만 달러 정도씩 벌어들이는데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 끝에 크로크는 950달러라는 헐값에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 대신 체인점으로부터 받는 프랜차이즈 비용을 매출액의 1.9%로 정하고, 이 가운데 0.5%를 맥도날드 형제에게 주기로 했다. 이것이 맥도날드 성장 신화의 시작이다. 프랜차이즈 독점권을 따낸 크로크는 다음해인 1955년 4월15일 일리노이주 데스 플레인스에 최초로 체인점 1호를 개점했다. 그런 뒤, 미국 해안 도시를 따라 본격적인 체인점 개설에 나섰다. 크로크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대목은 ‘매뉴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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