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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이수현 신드롬 그후의 일본열도

  • 이영이

이수현 신드롬 그후의 일본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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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이수현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죽은 지도 거의 한 달이 돼가고 있다. 한일 양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던 그의 희생정신은 ‘이수현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지난 1월 27일 일본 조간신문에는 ‘도쿄(東京) JR 신오쿠보(新大久保) 전철역에서 전동차에 치여 3명 사망-선로에 떨어진 사람과 구조하려던 두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면과 사회면에 비교적 비중있게 취급되긴 했지만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전철역 구내에서의 전락사고는 흔히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이날 사회면에는 전날 저녁 사이타마(埼玉)현의 다른 전철역에서 남자 한 명이 선로에 떨어져 사망한 1단 기사도 함께 실렸었다.

이날 기사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조하려다 숨진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채 신오쿠보역의 구조나 사고원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물론이고 다른 일본사람들도 ‘또 전철역 사고가 났다보다’며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27일 오전 사망자의 신원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에 커다란 감동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자신의 소중한 목숨마저 잃어버린 두 남자중 한사람이 한국에서 유학 온 일본어학교 학생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곧 전철 타니까 30분 후면 집에 도착할꺼야.”

지난해 1월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赤門會)에 입학해 일본어를 배우던 이수현(李秀賢·26·고려대 무역학과 4년 휴학중)씨. 그는 지난달 26일 오후 7시경 신오쿠보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전철역에서 여자친구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불과 1,2분 뒤에 자신의 눈앞에 펼쳐질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전철을 기다릴 때였다. 술에 취한 30대 남자가 비틀거리더니 홈에서 미끄러졌다. 선로에 떨어져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며 허우적대자 이씨는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뛰어내려 그 남자를 끌어올리려 했다. 옆에 있던 세키네 시로(關根史郞·47·카메라맨)씨도 함께 뛰어내려 이씨를 도왔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신오쿠보역을 지나는 JR은 전동차 운행 간격이 2,3분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역과는 달리 플랫폼 밑에는 선로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대피구도 없었다. 신오쿠보역에 들어오던 전동차의 운전사는 70m앞에서 이들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이미 늦었다. 시속 70km 가량의 속도로 달려온 전동차가 비상 브레이크로 멈추려면 170m 가량의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금요일 저녁 러시아워였던 현장에서는 200여명이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존경의 탄성과 안타까움의 한숨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던져가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 했던 두 사람의 의로운 죽음을 보고 모두들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주인공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유학생이었다니, 그것도 6개월 후면 귀국해 고려대에 복학할 예정이었던,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가 되길 꿈꾸던 촉망받는 젊은이었다니.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구하려 목숨을 던졌던 사람’(아사히신문) ‘정의감이 강했던 사람…일본과 한국을 맺으려던 계획은 꿈으로’(요미우리신문), ‘당신의 용기, 잊을 수 없습니다’(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이씨의 신원과 의로운 죽음에 대해 보도하자 일본 사회는 다시 한번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한국인 유학생의 살신성인에 놀란 일본

그저 못본 체하고 지나갔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을 그 상황에서 자기나라도 아닌 이웃나라에 유학 온 젊은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은 단순한 ‘감동’ 수준을 넘어 커다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 후에도 일본 신문들은 연일 이씨에 관한 기사로 1면과 사회면을 채웠다.

아사히신문은 1월 28일자 ‘천성인어(天聲人語·1면 고정컬럼)’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많은 독자들을 울렸다.

“‘마음이 선한 사람이 먼저 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고 어느 한 시인이 말했다. JR 신오쿠보역의 뉴스를 들으니 이 구절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망한 세키네씨의 친구는 “그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는 것은 서툴렀지만 무엇이든지 열심이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의 친구는 “평소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갑작스런 상황의 행동에서 나타난다. 두 사람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모르는 사람을 구하려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일본에는 어두운 사건도 많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환한 불빛이 밝혀졌다. 인간은 선한 면을 갖고 있다.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착한 사람도 적지 않다. 아니 착한 사람이 훨씬 많음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신문으로 한국에 비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산케이신문까지도 이씨 신원확인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리는 등 날마다 이씨 관련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산케이신문은 1월 30일자로 다음과 같은 사설까지 실었다.

“JR신오쿠보역에서 홈에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죽은 두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결과적으로는 두 사람까지도 희생됐다.…그러나 그것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던져 ‘용기’와 ‘자기희생’의 소중함을 국민들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는 이국땅에서 전혀 모르는 일본인을 구하려고 주저없이 선로에 뛰어내렸다. 한국에서 자라난 이씨의 이런 행동은 전후(戰後)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것이다.”

이씨가 다니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에는 이씨 빈소가 마련된 28일부터 조문객들이 몰려 발디딜틈 없었다. 일본에 온지 1년이 조금 넘는 젊은 유학생이 그렇게 많은 사람과 사귀었을리도 없는데 찾아오는 조문객마다 눈시울을 적시며 이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추도식이 거행된 29일에는 1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와 학교 앞 도로에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이중 절반 이상은 뉴스를 보고 이씨를 추도하기 위해 찾아온 일반시민들이었다.

29일 도쿄 외곽도시인 후지사와(藤澤)시에서 찾아왔다는 한 남성(49)은 “곤란한 사람을 보고 돕겠다고 생각은 해도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자기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있는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이씨가 평소 박애정신이 넘쳤기 때문”이라며 울먹거렸다. 또 아카몬카이가 위치한 아라카와(荒川)구의 한일친선협회회장인 도리우미 다카시(鳥海隆·78)씨는 “한국의 젊은이는 사람을 공경하는 유교정신을 갖고 있다. 이씨의 숭고한 마음에 감동했다”며 애도했다.

정치권, 우익단체도 큰 관심

언론과 시민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추도식에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를 비롯해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자민당 간사장 등 정계 거물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이들 역시 이씨의 의로운 죽음을 되새기며 숙연해 했다.

모리 총리는 “한일 관계를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라고 들었는데 의로운 일에 목숨을 잃게 돼서 안타깝다”며 “이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일본 젊은이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가토 전간사장은 이씨의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과거 한일간에 좋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고노 외상은 조문을 한 후 잠시동안 빈소옆에 마련된 별실에서 이씨 부모를 위로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아드님의 행동은 너무나 훌륭한 행동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상심하셨겠느냐”며 “아드님이 소중한 목숨을 던져 다른 사람을 구하려 했던 용기 있는 행동을 우리 모두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총리의 딸이자 현역 정치인으로 활약하는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중의원 의원은 28일 저녁에 이어 29일 추도식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다나카 의원이 빈소를 두 번이나 찾은 이유는 사고 당일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 이씨와 동갑인 아들로부터 울음섞인 전화를 받았기 때문. 이씨의 죽음을 남달리 안타까웠다는 그는 이날 조문을 마친 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훌륭한 행동이었지만 역시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니 몸을 잘라내는 것만큼이나 아픕니다. 아무 것도 해드릴 수 없지만 꽃 한송이 정도는 제 손으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이날 추도식에서는 오기 지카게(扇千景) 국토교통상과 도쿄경시총감이 이씨의 용감한 행동을 기리는 감사장과 메달 등을 보내왔으며 내각부 산하 법인인 일본 선행회(善行會) 등 시민단체로부터의 감사장도 전달됐다.

도쿄경시청은 또 숨진 두 사람에게 ‘경찰관 직무에 협력한 자의 재해급부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재해보상금과 장례보상금 등을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도쿄경시청이 이처럼 보상을 결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관할서인 신주쿠(新宿)경찰서의 가가와 히데토시(加川英俊) 서장은 “범인체포 과정에서 돕던 민간인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사례는 있지만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례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면서 “일본인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을 높이 평가해 가능한 한 최대한의 보상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고 전철회사인 동일본철도사도 사고현장인 JR 신오쿠보역 구내에 이씨와 세키네씨의 추모비를 세울 계획이다. 이 회사는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두 사람의 의로운 죽음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사고현장에 두 사람의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으며 유족들로부터도 이미 동의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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