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가다 ②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이탈리아 나폴리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1/3
  • 도시 자체가 거대한 유적지라 늘 방문객들을 주눅들게 하는 로마와 달리, 나폴리에는 곳곳에 서민적 삶의 체취가 묻어 있다. 쾌적한 지중해의 기후를 배경 삼아 도시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어느새 중세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정신의 여유로움을 지향하는 이들의 고향이 바로 나폴리다.
이탈리아 반도 서남부 해안가에 자리잡은 베수비오산. 기원전 79년 8월24일,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막 끝낸 오후 1시, 베수비오는 거대한 굉음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불길을 내뿜었다. 땅이 흔들리고 뒤이어 불덩어리 같은 돌멩이가 비오듯 쏟아졌다. 불덩어리에 이어 화산재가 민가를 덮쳤다. 베수비오 화산 동편 기슭의 고대도시 폼페이는 이렇게 4m 높이로 쌓인 돌멩이와 화산재 밑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 아래에서 죽어간 사람은 2000명이라고도 하고 5000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긴 불운의 고대도시 폼페이는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후손들에게는 황금을 선사하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나폴리와 더불어 남부 이탈리아의 대표적 관광지로 일년 내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화려한 유적지로 거듭 탄생한 것이다. 나폴리에서 전철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화려했던 고대로마와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그린 듯 빛깔도 뚜렷한 벽화에는 에로티시즘이 넘쳐난다. 폼페이에는 대재앙을 안긴 베수비오산이지만 나폴리 쪽에서 바라본 이 산은 산타루치아 항구와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꾸며주는 장식일 뿐이다.

수백년간 변하지 않은 해안풍경

로마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2시간 반, 한국의 시골과 닮은 전원풍경이 지루해질 즈음, 이탈리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20∼30층 규모의 고층빌딩 숲을 발견하게 된다. 수도 로마에서도 볼 수 없는 초현대식 건물들이 나폴리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나폴리를 한적한 항구도시라고 생각했던 선입관은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기도 전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역 광장에 나서 본격적으로 나폴리와 마주하면서 생각은 다시 한 번 바뀐다. 화려한 현대식 도시는 역 광장 우측 일부분에 그칠 뿐, 도시의 대다수는 아직도 고대풍의 아담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나폴리 중심부에 있는 왕궁박물관에는 17세기 나폴리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가 전시돼 있다. 그런데 그림 속의 나폴리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설명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마치 요즘의 나폴리 풍경화로 착각할 정도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이 수백년 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정집 대문에도 정교한 동물 조각이 있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실물 크기의 석상을 보노라면 이 도시 사람들의 만만찮은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로마가 ‘광장의 도시’로 불릴 만큼 도심 곳곳에 광장을 안고 있는데, 나폴리도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광장이 많다.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종점으로도 활용되는 가리발디광장이 펼쳐진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카보광장, 단테광장, 델제수광장, 플레비시트광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광장이 등장한다. 물론 광장이라고 해서 사전적 의미 그대로 ‘넓은 공간’은 아니다. 도로가 도로와 이어지는 여유 공간에 조각상 하나 세우고 나무 몇 그루에 벤치 한두 개만 갖추고 ‘광장(piazza)’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방인이 나폴리에서 길을 찾을 때는 목적지 인근 광장 이름만 알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용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州)의 주도(州都)다. 인구는 대략 110만명, 로마, 밀라노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3의 도시다. 나폴리 만(灣) 안쪽에 위치하는 천연의 양항으로, 배후는 베수비오 화산의 서쪽 기슭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시가는 동쪽으로 차차 높아지는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다. 부산을 가본 사람이라면 나폴리 항과 이어지는 중심가 구조가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산이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무차별적으로 들어선 건물로 슬럼화돼 있다면, 나폴리는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했다는 점이 다르다. 항구 주변은 최대한 과거 모습을 유지하면서 늘어나는 인구는 도시 외곽에 주택가를 건설해 수용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키운 결과다.

로마황제가 탐낸 카프리섬

나폴리 항은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2의 상항(商港)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산타 루치아’라는 가곡으로 유명한 서편 항구는 1924년에 확장된 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공업은 서쪽 포지리포 지구 및 남동해안을 따라서 발전하고 주택지구도 교외에 부단히 발전해 갔다.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 가로수가 끝이 없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꼽힌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이런 속담 때문인지 나폴리 시내는 유럽 각국에서 찾아온 노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나폴리 남쪽 30km 해상에 떠 있는 작은 섬 카프리는 폼페이만큼이나 유명한 관광지다. 2000년 전, 카프리의 아름다움에 반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나폴리 인근에 있는 황제 개인 섬인 이스키아를 나폴리에 주는 조건으로 이 섬을 얻었다고 한다. 면적이 카프리의 네 배나 되고 온천도 솟는 이스키아를 아낌없이 내줄 정도로 아우구스투스의 넋을 빼놓은 화려한 섬 카프리. 그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예 로마를 떠나 이 섬의 별장에 기거하며 방대한 로마제국을 통치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최저 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다. 여름은 건조하나 사실상의 건기(乾期)는 1개월 미만으로 농업용수 문제도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절실하지 않다. 아주 드물게 눈이 내리는 일도 있으나, 연중 온난하여 나폴리 일대에서는 오렌지·올리브·토마토 등 과실이 많이 산출된다. 또한 부근의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에서는 맥류·과일류의 집산 가공이 활발하다.

뭐니뭐니해도 나폴리의 중심산업은 관광이다. 산타 루치아 해안 주변의 풍광 좋은 자리에는 대부분 호텔들이 버티고 있는데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10층 미만의 호텔들이 아름다운 해안선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배치돼 있어 개발과정에 고심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3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목록 닫기

현관만 나서도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곳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