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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가다 ③

교회·스키· 하이테크놀로지의 천국

미국 솔트 레이크 시티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교회·스키· 하이테크놀로지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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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미국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 150년 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륙을 횡단한 말일성도에 의해, 버려진 초원에서 부유하고 아름다운 근대 계획도시로 거듭났다.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 예정지로 제2의 도약을 준비중인 이 도시의 역사, 저력, 산업과 사람들.
교회·스키· 하이테크놀로지의 천국
LA국제공항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무심코 내다본 창문 밖으로 눈 덮인 산맥의 장대한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초여름 햇살을 무색케 하는 설봉의 위엄. 더욱 눈길을 잡아끈 것은 산맥 안쪽 저지대에 자리한 한 도시의 놀랄 만큼 깔끔하고 조화로운 자태였다.

대도시 상공을 날아본 것이 처음은 아니련만 분명 이 도시는 특별했다. 크고 번화하고 질서정연하면서도, 소박하고 부드러우며 자연친화적인 모습. 눈 덮인 산맥의 원시성과 첨단 대도시의 정연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듯했다.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는 그렇게 처음부터 낯선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산맥은 로키산맥의 지류인 와사치산맥이었다. 그 기슭, 표고 1280m 높이에 자리잡은 솔트 레이크 시티는 미국의 대표적인 고원도시다. 도시에서 북쪽으로 16㎞ 떨어지 지역에 대염호(솔트 레이크)가 있어 솔트 레이크 시티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미국의 45번째 주인 유타주의 주도(州都)로 인구는 약 17만2000명. 외곽지역(카운티)까지 합쳐도 85만 명에 불과한 매우 낮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도시다.

1999년 솔트 레이크 시티는 미국 지역평가연감에 의해 북미(미국·캐나다) 354개 메트로폴리탄(대도시) 중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 생계비, 범죄율, 문화환경, 여가시설, 지역경제전망 등 9개 항목에 걸친 평가에서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은 것. 이전에도 솔트 레이크 시티는 대개 30위권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거둬왔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2002년 동계 올림픽 개최 예정지이기도 해 도시 환경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솔트 레이크 시티가 오늘날 ‘북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한 이면에는 이 도시만의 독특한 역사와 지역적 특색이 자리한다. 솔트 레이크 시티, 그리고 유타주의 개척사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대하소설이다. 그 중심에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이하 말일성도,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가 있다.

‘신의 계시’로 선택된 말일성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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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50여 년 전만 해도 북미대륙 중서부에 위치한 유타주는 ‘텅 빈 공간’이었다. 이렇다 할 지명도 없었고 소수의 인디언과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백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을 뿐이었다. 1847년 7월, 이 살풍경한 미답의 땅에 일단의 이주민이 들이닥쳤다. 여성 2명을 포함한 148명의 개척자들은 말일성도 회원이었다.

말일성도는 1830년 4월6일 뉴욕주 페이에드에서 조직된 기독교의 한 갈래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어느 쪽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이 초대교회에 부여한 ‘신권’을 이어받은 정통 교회임을 자임한다. 교조는 1805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요셉 스미스. 말일성도에 따르면, 14세 때 하나님과 상면한 요셉 스미스는 1823년 모로나이라는 부활한 천사의 인도에 따라 팔마이라 근처의 한 언덕에서 고대 미대륙 문명의 종교 역사가 새겨진 금판을 발견한다. 이것이 말일성도가 성경과 함께 경전으로 인정하는 몰몬경이다. 여기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부활한 후 고대 미대륙에서 베푼 성역의 기사(奇事)들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신흥교파인 말일성도는 다른 기독교도들의 격렬한 비난과 공격에 직면한다. 소동을 피해 교회 본부는 뉴욕에서 오하이오주로, 다시 미주리주에서 일리노이주로 이동한다. 1839년, 미시시피 강가에 나부공동체를 결성하지만 공격은 더욱 거세져 결국 요셉 스미스와 그 형 하이람이 살해되는 지경에 이른다. 요셉 스미스의 뒤를 이어 말일성도를 이끌게 된 건축가 출신 지도자 브리감 영은, 1846년 신도들을 이끌고 얼어붙은 미시시피 강을 건너 아이오와 준주로 이동한다. 여기서 다시 지금의 내브래스카 주 오마하 근처로 옮겨가 정착촌을 건설하지만 브리감 영의 진짜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다음해 이른 봄, 브리감 영은 첫 번째 개척자 대대를 이끌고 장장 2100㎞를 걸어 1847년 7월24일 록키산맥 서쪽 솔트 레이크 계곡에 다다른다. 솔트 레이크 시티, 그리고 유타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솔트 레이크 시티 다운타운 북쪽 언덕에는 유타주 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 웅장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중세 교회를 연상케 하는 넓은 홀이 나온다. 3층 높이는 족히 될 듯한 돔형 천장과 벽면에는 초기 이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위엄 있는 얼굴의 중년 남성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브리감 영.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발길을 멈추고 지팡이로 지정한 장소가 바로 지금의 솔트 레이크 시티다.

도시의 연원에서도 알 수 있듯 지금도 솔트 레이크 시티 주민의 60% 이상이 말일성도 회원이다. 이렇듯 뚜렷한 정체성은 도시 건설과 운영은 물론 이곳만의 독특한 ‘색깔’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말일성도 회원을 흔히 ‘일하는 꿀벌’이라 부른다. 그만큼 부지런하다는 뜻. 실제로 유타주 깃발에는 꿀벌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근면, 성실, 정직, 낙관주의, 혼전 순결, 정절, 검소, 봉사, 가족중심, 상호부조는 말일성도 회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계율이다.

1847년 이후 몇 년 간 솔트 레이크 시티로 이주한 1만7000여 명의 말일성도 회원은 먼저 관개농업을 시작했다. 나무 속을 파 만든 목재파이프를 이용, 산중의 물을 농지로 끌어들이는 혹독한 노동이었다. 사막성 기후 탓에 물이 귀하고 고지대라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초기 이주민들은 놀랄 만한 생명력과 근면성, 도전 의지로 오늘날 대도시의 기틀을 닦았다. 종교적 신념과 공동체 정신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음을 물론이다.

1949년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솔트 레이크 시티는 중간 기착지이자 물자공급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대단위 관개농업의 성공에 이어 구리·철·은·납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이용한 광산, 제련산업이 번성했다. 가로 120㎞, 세로 80㎞에 달하는 솔트호수는 염분 함량이 25%나 돼, 주변에 수많은 염전이 생겨났다. 1969년 대륙횡단철도가 개통하면서 도시는 명실공히 중서부 교역의 집산지로 떠오른다. 그리고 1896년, 솔트 레이크 시티를 시발로 말일성도가 개척한 척박한 땅 유타는 마침내 미국의 45번째 주가 되었다.

완벽한 교통, 깨끗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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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 레이크 시티에 도착한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 먼저 말일성도의 총본산인 대성전을 찾았다. 대성전이 있는 템플 스퀘어는 1853~1893년 세워진 주요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관광 명소이자 도시의 심장부다.

예배가 막 끝난 시간인지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성전 뜰에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는데 검정 투피스로 성장한 여선교사들이 자진해서 안내를 맡고 있었다. 선교사들의 태도는 대단히 겸손하고 상냥했다. 비만한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들뿐 아니라 솔트 레이크 시티 시민들은 타 도시민들에 비해 확실히 살이 덜 쪄 보였다. ‘정상 체중’인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미국에서 이는 분명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는 말일성도에 건강 율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 담배, 술, 홍차, 커피를 멀리하도록 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었다. 이는 곧 음식 섭취에 있어 절제를 중시하는 전통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만난 한국 출신의 김은미 선교사 또한 “말일성도 회원은 몸에 꼭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고 설명해 주었다.

템플 스퀘어를 벗어나 도심으로 접어들었다. 도로가 워낙 정연해 지도 한 장만 들고도 길 찾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솔트 레이크 시티는 정확하게 바둑판 모양으로 돼 있다. 거리 이름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400 이스트 스트리트, 300 사우스 스트리트 등으로 칭한다. 각 블록마다 남북으로는 A~O, 동서로는 1~17이라는 기호를 매겨놓아, 목적지의 ‘방위’만 알면 아무나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도시를 기획한 브리감 영이 건축가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처음부터 철저히 실용성에 바탕을 둔 설계로 불필요한 혼란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도로 폭도 매우 넓은데, 이 역시 “마차가 회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브리감 영의 지시 덕분이라고 한다.

솔트 레이크 시티는 교통의 요충지다. 대륙횡단철도는 물론, 미국 주요 간선도로인 70, 80, 84, 15번 도로가 모두 이 도시를 지난다. 항공편도 많아 서부에서 동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하는 여행객들의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이처럼 편리한 교통은 솔트 레이크 시티의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선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건물도 무척 가깝게 보인다. 공기가 맑기 때문이다. 세차는 열흘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일주일 내내 밖에 세워 두어도 그리 때가 타지 않는다. 수돗물은 와사치 산맥의 물을 정수해 쓰는데 역시 끓이지 않고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깨끗한 환경은 솔트 레이크 시티의 큰 자랑거리다.

고지대에 위치한데다 주변에 높은 산이 많고 인구밀도가 낮은 것이 주 원인이다. 길에서 휴지 한 장, 담배꽁초 하나 찾아보기 힘들만큼 철저한 시민의식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쓰레기 분리수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미국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 쓰레기수거차가 다녀간다. 규격화된 쓰레기통을 크레인으로 집어 속을 비우는 방식이다. 음식 쓰레기는 각 가정의 개수대에 설치된 분쇄기를 사용, 즉석에서 갈아 폐수처리장으로 흘려 보낸다. 일반 생활 쓰레기 중 분리수거를 하는 것은 깡통과 신문지 정도. 나머지는 쓰레기 수거차량에 실려 솔트 호수 인근에 있는 매립지로 간다. 개발은커녕 버려지다시피 한 땅도 적지 않아 매립지 활용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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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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