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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가다 ④

호주 시드니

절제의 미학이 가꿔낸 ‘아침의 도시’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호주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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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드니가 아름다운 것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 때문이다. 바다와 육지, 자연과 인공, 섬나라의 낭만과 대륙의 실용주의, 관광객의 흥청거림과 토박이의 여유, 마천루와 중세풍 건물들, 빌딩숲과 녹림이 어우러져 이 거대한 도시를 맛깔스런 삶터로 만들어낸다.
  • “무한천공에서 일출(日出)을 맞는 이들은 복되도다 그대들의 아침을 정결한 시드니 하버에서 맞으리니 3월의 신부(新婦)처럼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옷깃에 장미 한 송이 꽂아도 좋으리 시드니는 슬픈 질문을 하지 않는 도시 오늘 아침은, 몽땅 그대들의 것이다….”
  • -수잔 스탠포드의 ‘시드니’중에서
호주 시인 수잔 스탠포드는 이렇듯 물감같은 시어(詩語)들을 흩뿌려 시드니를 그려놓고 방문객을 설레게 한다. 미항(美港)으로 향하는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보다. 누군가는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도 “머리칼에 꽃 몇 송이 꽂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시드니는 더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챙 넓은 모자’에다 ‘장미’까지.

시드니의 한낮 햇살은 겨울에도 강렬하다. 챙 넓은 모자가 없으면 맑디 맑은 물빛 하늘과 도시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하늘빛 바다 어름을 찾아보려다 이내 부신 눈을 잔뜩 찌푸려야 한다.

시드니는 대담한 유혹자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표나지 않을 만큼 절묘하게 어우러져 밤낮없이 전방위로 여행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니 연인의 옷깃에 이슬 머금은 붉은 장미 한 송이라도 꽂혀있지 않다면 깜빡하는 사이에 연인조차 눈길에서 벗어날지 모른다.

“여긴 왜 이렇게 잘 생겼어?”

스탠포드의 시처럼 시드니는 아침의 도시다. 서울에서 저녁에 출발하는 시드니 직항편을 타고 밤을 꼬박 새워 남으로 남으로 날아가면 화장기 없이 풋풋한 시드니의 아침이 10시간의 비행기 여행에 지친 객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그래서 시드니 여행일정은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다. ‘무한천공의 일출’과 함께 창문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새벽노을이 비행기 안을 온통 와인빛으로 물들이며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시드니는 그런 아침부터 저녁까지 결코 슬픈 질문을 하지 않는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시드니를 처음 돌아보던 날, 동행한 제자에게 이렇게 털어놓더라고 한다.

“그래, 내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만한 도시는 없었어….”

고은 시인이 시드니를 찾았을 때는 보다 직설적이었다.

“씨펄, 억하심정이 생기누만. 여긴 왜 이렇게 잘 생겼어?”

시드니는 호주의 6개 주 가운데 하나인 뉴 사우스 웨일스주의 주도(州都). 인구는 400만명으로 호주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해마다 인구보다 많은 400만∼500만명의 방문객이 시드니를 찾는다. 그 대부분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들. 올림픽이 열렸던 지난해엔 방문객 수가 600만명을 넘었다. 방문객의 절반은 일본(31.5%)을 비롯한 아시아권 사람들이다. 나폴리, 리우 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도시답게 시드니가 매년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50억달러에 이른다. 호주의 대표적 수출품인 양모나 육류, 원유, 철광석 수출액보다 많은 액수다.

여행객들의 ‘시드니 사랑’은 열렬하다. 1999년 미국의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콩드 나스트 트래블러’ 독자들은 5년 연속으로 시드니를 ‘세계 최고의 도시(World’s Best City)’로 선정했고, ‘트래블 앤 레저’지(誌)는 4년째 시드니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여행지(World’s Best Value Destination)’로 꼽았다. 1998년에는 ‘콩드 나스트 트래블러’ 영국판 독자들도 시드니를 ‘최고의 해외 도시(Best Overseas City)’로 뽑았다. 같은 해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폴이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를 가장 방문하고 싶은가”를 물었더니 미국인들은 성과 연령에 상관없이 시드니를 첫손에 꼽았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최근 수년간 시드니를 찾은 방문객 가운데 재(再)방문객이 시드니를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보다 많았다는 것. 시드니를 다녀간 많은 여행객들이 시드니를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가슴에 품으며 살아간다는 얘기다.

조화와 공존의 도시

시드니가 이렇듯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호주의 10대 관광명소 중 7개가 시드니 시내에 몰려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리지 같은 볼거리들이 여행객을 압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도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힘의 원천은 언뜻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조화에 있는 듯하다.

시드니에는 바다와 육지, 자연의 선물과 인공의 흔적, 섬나라의 낭만 기질과 대륙적 실용주의, 관광객들의 흥청거림과 토박이들의 여유로움, 현대식 마천루와 빅토리아풍의 고색창연한 건물들, 즐비한 빌딩숲과 짙푸른 녹지, 갖가지 인종과 언어가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그런 균형과 절제의 미학이 이 거대한 도시를 아기자기하고 맛깔스런 삶의 공간으로 다듬어 내는 것이다.

시드니는 천혜의 자연미를 자랑한다. 남태평양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곳곳에 그림같은 만(灣)과 곶을 만들고 그 안으로는 깊은 강들이 흐른다. 굽이굽이 해안선을 따라가면 푸른 숲과 은빛 백사장, 투박하게 깎여나간 절벽들이 쉼없이 펼쳐진다. 이어 붙이면 200km가 넘는 해안에는 맨리 비치와 본다이 비치 등 37개의 비치가 흩어져 있는데, 대부분 중심가에서 대중교통편으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다.

또한 중심가 바로 앞까지 대형 유람선이 들어와 정박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깊어 도심에도 남빛 바다의 정취가 물씬하다. 앞가슴이 눈부시게 하얀 갈매기들이 해안은 물론, 시내 쇼핑가와 공원, 노천식당 테이블까지 날아든다.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요기라도 할라치면 갈매기들이 사람 발께까지 총총 다가와 “나 좀 떼주지, 혼자 그걸 다 먹게?” 하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계절은 바뀌지만 겨울에도 날씨가 온화해(겨울 평균기온이 12℃) 시드니의 숲은 아열대 식물의 푸르름이 사철 퇴색하지 않고, 새들의 지저귐도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나 시드니의 아름다움이 온전히 자연의 선물 덕분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자양분을 주고 받게끔 도시를 가꿔온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주민과 여행자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드넓은 녹지, 쾌적한 공기, 세심하게 보존된 전통유산, 문화적 개방성, 편리한 교통, 확고한 치안 등 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들은 대개 시민의 힘으로 일궈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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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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