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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고이즈미 현상

‘이상한 사람’에 열광하는 이상한 일본

  • 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 ksshim@donga.com

‘이상한 사람’에 열광하는 이상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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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없는 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8월10일 자민당 총재로 재선됐다. 4월처럼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꽃가마’를 태우러 온 사람들을 따라가 다시 총재가 됐다. 자민당 총재는 곧 총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의 임기는 10월1일부터 2년간이다.

선거용 총리에서 실세 총리로

자민당은 9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후임총재를 선출할 예정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원래 자진 사퇴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총리의 잔여임기만을 채우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당 집행부는 7월29일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갑자기 8월9일까지 총재선거에 나설 인사의 입후보를 받겠다고 밝혔다. 후보자가 없으면 이튿날인 10일 전당대회 대신 중·참(衆·參) 양원 소속 의원총회를 열어 고이즈미 총재를 재추대 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나리오는 누가 보더라도 고이즈미 총재를 재선출하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총재선거에 나서 한 표를 호소했던 고이즈미 총리를 이처럼 ‘거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모리 전총리가 그대로 총리직을 맡고 있었다면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렇게 믿거나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때문에 자민당에서는 공천을 받지 않고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거나 모리 총리와 사진을 찍지 않으려는 입후보 예정자가 나올 정도였다. 모리 총리의 인기가 지지율 9%까지 떨어지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모리 총리는 끝까지 자리에 연연했으나 결국은 타의반 자의반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를 차고앉은 것이 고이즈미 총리였다. 그가 총재선거에 나섰을 때만해도 총재는 당내 최대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가 유력했다.

고이즈미 후보는 후생상과 우정상은 지냈으나 대장상이나 외상 등 주요 포스트를 맡아본 적이 없다. 간사장(사무총장)이나 정조회장(정책위장) 등 당직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시모토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 변화를 갈망하는 자민당원들이 그에게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를 보고 투표했다”

‘고이즈미 돌풍’이 불면서 비관적이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참의원 선거용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뒀으므로 계속해서 총리를 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였다. 그래서 자민당 집행부는 총재선거를 앞당긴 것이다. 9월 총재선거에서 권토중래를 노리던 비주류파도 대세를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참의원 선거결과를 보면 그가 ‘자민당의 구세주’가 됐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자민당은 이 선거에서 교체대상 의석 121석 중 64석을 차지했다. 기존의석이 61석이었으므로 별로 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3년 전 같은 선거에서 자민당이 44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승리였다. 하시모토 당시 총리는 선거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더욱이 흥미 있는 것은 이번에 자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30% 이상이 자민당의 정책이나 후보개인의 능력보다는 고이즈미 개혁노선을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승리의 견인차였다. 대부분의 후보가 고이즈미 후보의 인기에 무임승차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야당은 한결같이 ‘고이즈미 돌풍’에 고전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고이즈미 총리 덕분에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것은 6월에 치러진 도쿄도(東京都)의회선거에서 이미 예견됐었다. 도의회선거에서 55명의 자민당 후보 중에서는 53명이, 26명의 공명당 후보는 전원이 당선되는 등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정권이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도의회선거에서 승리한 뒤 “자민당이 도심부에서 약하다는 설은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내각의 인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이 5월에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87.1%로 지금까지 최고였던 1993년 8월 호소카와(細川)내각의 71.9%를 크게 웃돌았다. 또 도쿄신문과 교토통신 조사에서도 각각 86.3%를 기록했다. 한 방송사 조사에서는 90%을 넘기도 했다.

요미우리 신문 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로 “정치이념이 명확하다”를 꼽은 응답자가 47%로 가장 많았다. 그리고 “지도력이 있다”(21%), “신뢰할 수 있다”(19%)의 순이었다. 고이즈미 정권이 ‘얼마 동안 계속됐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면 오래”가 47%, “2∼3년”이 37%로 장기집권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고이즈미 내각의 인기는 최근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역대 내각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이상열기’는 예상치 못한 현상을 몰고 왔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적 논객인 간 나오토(菅直人) 간사장이 5월 중의원 예산위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 광경은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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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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