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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3

천의 얼굴을 가진 ‘위인’ 무함마드

  • 정수일

천의 얼굴을 가진 ‘위인’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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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무함마드는 타고난 성실성으로 15세 연상의 돈 많은 과부와 결혼했다. 그리고 15년간 긴 명상을 통해 알라의 뜻을 전하는 성사(聖使)가 되었다. 이후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가 군사지휘관 외교관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내며 이슬람 세계를 통일했다. 보통사람으로서 신의 경지에 이른 한 종교 창시자의 일생을 들여다본다.
천의 얼굴을 가진 ‘위인’ 무함마드
10여 년 전 영국 작가 루시디의 소설 ‘악마의 시’가 세상을 뒤흔드는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걸작품’은 출시되자마자 50만 파운드란 전대미문의 거액으로 판권이 팔려나갔다. 이에 대해 이란의 호메이니는 궐석재판에서 루시디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거금을 걸어 루시디를 현상 수배했다. 호메이니가 루시디에게 사형을 언도한 이유는 루시디가 이슬람의 교조(敎祖)인 무함마드를 모독했기 때문이다.

루시디는 작품에서 마왕(魔王)의 뜻을 가진 스코틀랜드어 ‘마하운드’(mahound)라는 단어로 무함마드를 희화화(戱畵化)하였다. 그는 발음의 상사성으로 보아 이 말이 아랍어의 무함마드(mohammad)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은근히 무함마드를 주술사나 악마에 빗댔던 것이다. 무함마드를 교조로, 알라의 예언자로, 성사(聖使: Ras lu’l Ll h, 알라가 보낸 사람이라는 뜻)로 숭앙하는 13억 무슬림이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곡된 위인 무함마드

물론 무함마드에 대한 모독이나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400여 년 전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펴기 시작했을 때 무지한 사람들은 그를 ‘지랄병 환자’로 몰아붙였다. 그때의 매도가 대명천지인 지금도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우리의 권위 있는 세계백과대사전은 여러 가지 비사실적 기술과 더불어 무함마드를 “무력과 탄압으로 선교를 강요하여 수십 차례 전쟁까지 일으켰다”며 ‘폭군’으로 정평(定評)하고 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이러한 설(說)의 주 진원지인 유럽에서, 양식 있는 학자들은 무함마드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자성하고 사실적인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세기 초 미국의 캐틀(M. Cattel)은 ‘세계인명사전’을 펴내면서 세계적 위인 1000인을 고르고 다시 ‘베스트 10’을 추렸는데, 그 이름은 나폴레옹·셰익스피어·무함마드·볼테르·베이컨,·아리스토텔레스·괴테·시저·루터·플라톤이다. 그런가 하면 근대 ‘영웅론’의 대표적 주창자인 영국의 칼라일(Carlyle)은 역대 종교개혁자로 루소와 함께 무함마드를 지목하였다. 웬일인지 부처나 예수는 종교개혁자의 반열에서 빠뜨린 것이다. 우리는 무함마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인간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인간처럼 신기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의식과 변화무쌍한 감성으로 살아가는 ‘자연의 기형아(畸形兒)’다. 이러한 기형아 중 기형아가 위인인데 위인을 재량(裁量)하려니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존재양식으로 본 인간의 유형에는 순수 본연적인 생물로서 명을 이어가는 ‘생물학적 존재’와, 유기적인 사회관계에서 살아가는 ‘사회학적 존재’, 그리고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윤리·도덕적 존재’ 세 가지가 있다.

자기만을 위해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을 ‘단순인간’이라고 한다. 남을 위해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나 윤리·도덕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인간은 ‘사회적 인간’ 혹은 ‘역사적 인간’이라고 한다. 단순인간에게는 인간이란 개념이 ‘소문자’로 적혀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에게는 ‘대문자’로 새겨져 있어 뚜렷이 보일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남아 있다. ‘큰 그릇’이라 부르는 사회적 인간 중에 위인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위인은 어떠한 인물인가? 영웅론자들의 말을 빌리면 위인(영웅)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나타난 인물이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평범한 ‘사건적 인물’(eventual man)이 아니라,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건 창조적 인물’(event making man)이다. 위인에는 사상의 위인과 행동의 위인이 있다. 철학이나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자(賢者)나 성인(聖人)은 전자에 속하고, 명망 있는 정치가나 군사전략가는 후자를 일컫는다.

위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유형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사건 창조적’ 자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질은 어느날 갑자기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범상치 않은 인물로 태어나, 보통인간으로 살아가며 연마되고 온축(蘊蓄)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이러한 자질을 갖춘 위인은 역사의 격변기에 ‘시대의 피조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의 변혁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불멸의 업적을 남겨놓는다.

이러한 ‘위인론’이야말로 무함마드 같은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결론을 당겨 말하면, 무함마드는 시대의 피조물로 나타난 ‘사회적 인간’이고 ‘사건 창조적’인 위인이었다. 그는 사상과 행동을 겸행(兼行)함으로써 엄청난 역사 변혁을 주도한 희세의 영걸이다. 이러한 실상은 그의 인간상(人間像)과 성인상(聖人像), 그리고 위정자상(爲政者像)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무함마드의 출현은 시대적 요구

무함마드는 60여 평생의 3분의 2는 ‘사건적 인간’(보통인간)으로서 살았고, 3분의 1은 한 종교의 창시자(성인)이자 인간공동체의 위정자 그리고 ‘사건 창조적 인간’(위인)으로 살았다. 보통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그가 위인으로 비상하는 도약대가 되었다. 위인으로서 그의 행보에는 보통인간으로서 삶의 흔적이 역력히 찍혀있다.

무함마드도 ‘시대의 피조물’이므로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7세기 아라비아반도는 전통적인 씨족제도와 유목사회구조가 무너지고, 대신 부족연맹이 출현했다. 교역에 기초한 경제는 급속히 발달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그 사회에 충격을 주고, 낡은 종교관념과 각종 사회적 폐습이 상존하는 등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 절박하게 요구되었다. ‘사건 창조적’인 위인이 나타나 역사적인 과제를 앞장서 수행해 나가기를 요구했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해 갈등의 한복판인 메카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무함마드다.

무함마드의 생애는 일찍이 씌어진 전기와 이슬람 사적이 남아 있어 비교적 소상히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있다. 경전이나 복음서에서 자료를 뽑아 엮은 다른 성인들의 전기에 비하면 신빙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유년 시절과 청장년 시절에 관해서는 전하는 바가 많지 않다. 무함마드에 관한 최초의 전기는 서거 120년 후 이븐 이스하끄가 펴낸 ‘성사전(聖使傳)’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해오는 것은 원본이 아니고 9세기 초 이븐 히샴이 편찬한 교정본이다. 이 교정본이 여러 언어로 역출됨은 물론, 그에 근거해 몇 종의 무함마드 전기가 새로 꾸며지기도 했다.

무함마드는 메카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할거한 꾸라이쉬 부족의 하쉼가(家)에서 태어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유대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하녀 하갈 사이에 태어난 이스마일의 후손이다. 우리가 아랍민족과 유대민족 간, 이슬람교와 유대교 간에 역사적인 친연성(親緣性)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함마드의 출생 연월일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대체로 ‘코끼리의 해’인 570년 4월22일로 본다. ‘코끼리의 해’란 에티오피아군이 코끼리를 몰고 메카에 침입한 해다. 코끼리를 처음 본 메카인들은 너무 신기해서 이해를 ‘코끼리의 해’로 이름지었다. 바로 이해에 무함마드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무함마드의 증조부 하쉼은 시리아와의 대상무역을 하여 부를 축적하고 기반을 꾸려 명문 하쉼가의 조상이 되었다. 하쉼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할아버지인 뭇리브는 메카의 신전 카아바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는데, 특히 그는 메카에 있는 ‘잠잠’이란 성천(聖泉)을 복구한 선사(善士)로 이름을 남겨놓았다. 전설에 따르면 잠잠 샘물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닦달에 못 이겨 하녀 하갈과 아들 이스마일을 메카로 내쫓았을 때 자비로운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이 성천을 솟게 하여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성지순례자들은 순례의 필수코스로 신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성천에서 물을 꼭 떠 마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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