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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④

이슬람 경전 ‘꾸르안’

지하드(聖戰)에서 무역거래까지

  • 정수일 박사

이슬람 경전 ‘꾸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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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안’ 연구에서 가장 이견(異見)이 분분한 문제의 하나가 경문의 배열이다. 어떤 원칙에 준해 장절(章節) 순위와 그 내용이 배열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꾸르안’은 총 114장, 6000여 구절로 구성됐다. 매 장(쑤라)은 여러 개의 구절(아야)로 되어 있는데, 연구자에 따라 구절 획분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구절의 총수는 6200여 개에서 6600여 개에 이르기까지 주장이 다양하다. 교조 무함마드의 생전활동은 크게 메카시대(610~622)와 메디나시대(622~632)로 구별되며, 이 두 시대에 내려진 계시의 내용도 성격상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경문도 크게 메카편(86장)과 메디나편(28장)으로 나눈다. 그렇지만 경전 ‘꾸르안’의 장절은 시대별이나 계시 전달의 연대순에 따라 배열된 것도 아니고, 또 한 가지 내용으로 한 장을 꾸민 것도 아니며, 한 장 속에 메카편과 메디나편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꾸르안’의 장절이나 내용 배열은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문 배열의 원칙을 놓고 왈가왈부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그 배열이 알라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논할 소지가 없다는 이른바 ‘예정론’(豫定論)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에 의해 배열된 것이 아니라, 후세들이 경문을 정리하여 편집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배열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예정’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경문의 장단(長短)에 따른 ‘기계적’인 배열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은 실제와 괴리가 있다. 즉 7절로 된 1장이나 8장, 9장, 15장, 16장 등은 이러한 기술적인 ‘장단원칙’에 어긋난다.

이와 같이 ‘예정론’이나 ‘장단론’은 다같이 설득력이 없다. 이에 비해 시대적 요청이 반영되었다는 ‘상황론’에는 수긍이 간다. ‘꾸르안’이 정본으로 편집될 당시는 이슬람이 이미 아라비아반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지역에 비교적 순조롭게 착근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이슬람공동체 건설을 위한 정치사회적 변혁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당면한 정치사회적 과제가 종교적 과제보다 더 긴요하게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과 교리문제를 위주로 한 짤막짤막한 메카편보다 장수는 적지만 당면한 사회관계와 제도 및 율법을 기본으로 다룬 길고도 다방면적인 메디나편이 배열 순위에서 앞서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앞장의 분량이 많아지고 한 장 속에 두 편의 관련 내용을 뒤섞은 경우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결과 앞 10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메카편과 메디나편이 1대 6 비율로 후자가 단연 많다. 이것은 유대교의 경전 ‘구약성서’의 경문 배열에서 율법내용을 수위에 놓은 경우와 이치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 분량인 ‘꾸르안’의 내용은 대단히 풍부하고 취급한 문제도 광범위하다. 내용의 주종은 이슬람교의 기본교리다. 만물이 알라에 의해 창조되고 알라는 만유(萬有)의 주인이며, 따라서 인간은 알라에게 복종하고 귀의해야 한다는 알라의 유일성(唯一性)과 무함마드는 알라가 파견한 사람, 즉 성사(聖使)라는 이슬람의 근본교리와 이 교리에서 연유된 6가지 종교적 신앙과 5가지 종교적 의무, 이를테면 6신(信) 5주(柱)를 포함하고 있다.



그밖에 선행(善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적 윤리도덕도 다루고 있다. ‘꾸르안’은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들에 비해 알라의 유일성을 보다 강조하고 여러 가지 우상숭배를 강도 높게 배격한다. 흡사 ‘구약성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각종 종교적 계율도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내용은 일시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메카시대에서 메디나시대로 옮겨가면서 그때그때의 요구에 따라 점진적으로 내려진 계시들이다. 이러한 점진성은 교조 무함마드의 지위 변화에도 나타난다. 초기에는 ‘경고자’나 ‘희소식 전달자’쯤으로 불리다가 후기에는 ‘예언자’(선지자)나 ‘성사’로, 심지어 ‘마지막 예언자’로까지 그 지위가 격상한다.

‘꾸르안’의 내용은 각종 사회문제의 해결책이다. 이슬람공동체 건설에서 당면 과제는 정복전을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문제가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이른바 ‘성전’(聖戰, 지하드)을 알라에 대한 무슬림의 보은(報恩)으로 의무화하고 참전을 독려한다. 전리품과 전쟁포로의 처리, 참전 회피자에 대한 문책 등 전쟁과 관련된 일련의 대책들이 제시된다. 전쟁문제와 더불어 일련의 사회경제적 문제들도 널리 다루고 있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한 혼인문제와 유산의 계승, 고아의 부양, 빈자의 구제, 노예의 해방, 사회평등, 계약에 의한 공정한 무역거래, 개인재산의 침범 불허, 예배시의 장사 금지 등 실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시책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무함마드의 포교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논쟁거리들이 ‘꾸르안’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점이다. 사실 무함마드의 포교과정은 각양각색의 반이슬람적 종교집단과의 투쟁을 통해 그들을 단속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른바 ‘광음파’(光陰派)는 경전에 나오는 창세설이나 사후의 부활 및 최후심판설을 반대하면서 인간의 생사는 천운(天運)이 아니라 오로지 ‘광음’, 즉 세월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후에 부활한다면 “어서 우리의 조상들을 부활시켜달라”(44:25)고 도전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위선적(僞善的) 예언자’들은 자신만이 진정한 예언자라면서 무함마드는 한낱 ‘광인’이나 ‘마술사’에 불과한 ‘가짜 예언자’라고 비방 중상했다. 그밖에 유대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의 이슬람에 대한 공격 및 그들과의 논쟁, 그리고 각축 끝에 유대교도와의 제휴를 철회하고 그들을 메디나에서 축출한 사실 등도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슬람교는 그 출현에서부터 교리의 정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친연종교(親緣宗敎)인 유대교나 기독교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꾸르안’에 실린 전설이나 이야기의 4분의 1은 이 두 종교의 성경에 나오는 동류의 전설이나 이야기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24명에 관한 이야기가 그대로 이슬람경전에 전재되어 있다.

아담과 노아 관련 이야기는 각각 5회와 8회 반복되고, 모세 관련 이야기는 모두 450절의 경문 속에 담겨 있으며, 유일전통의 맥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이름은 무려 70여 회나 거명된다. 심지어 12장은 거의가 유대교에 관한 이야기여서 이슬람의 한 분파인 하와리즈파는 이 장은 계시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유대교나 기독교 관련 이야기들이 엉성하게 전재된 점으로 미루어 그 목적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빌어 이슬람의 전파에 교훈으로 활용하자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유대교나 기독교와의 관계에 관한 ‘꾸르안’의 기술은 종교사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꾸르안’을 구성하는 내용 중에는 맹세나 저주를 나타내는 표현들과 더불어 은유적인 내용이 있어서 그 함의(含意)를 놓고 연구자 간에 논의가 분분하다. 예컨대 95장의 첫 절은 “무화과와 올리브의 이름으로 맹세하나니”인데, 여기에서 ‘무화과와 올리브’는 알라로부터 축복 받은 주요한 양식이므로 그것을 두고 맹세하는 뜻이란 견해와 그 주요 생산지, 즉 무화과는 다마스쿠스, 올리브는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뜻이라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103장은 “아스르의 이름으로 맹세하나니”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의 ‘아스르’의 의미를 놓고 인간의 나이를 헤아리는 ‘세월’, ‘흘러가는 시대’, 낮 동안의 ‘마지막 시간’, ‘저녁기도 시간’, ‘무함마드의 시대’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꾸르안’ 전편에는 은유적인 표현도 상당히 많다. 흔히 인용하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다’는 말은 알라의 말을 거역하는 불신자(不信者)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비대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7:40). 알라에게 재물을 희사하는 것을 한 알의 ‘밀알’에 비유한 것은 한 알에서 일곱 개의 이삭이 패고, 한 이삭에 백개의 낱알이 달려 풍성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라는 희사하는 자에게 몇백배의 보상을 준다(2:261)는 뜻이다. 우상숭배자를 가장 허약한 ‘거미’에 비유(29:41)해 멸시한 것도 그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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