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인간적 정취와 예술적 향기 넘치는 귀족풍 도시

오스트리아 빈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입력2005-04-04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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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바로크, 고딕, 유겐트슈틸 양식의 웅장하고 화려한 17, 18세기 건축물과 유엔 기구 등의 초현대식 건물이 공존하고 왈츠와 재즈의 선율이 어우러지는 멀티 문화의 중심지다. 인간적인 정취와 문화의 향기에 마음껏 취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왈츠 선율과 그윽한 커피향이 떠오르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이곳 시민들이 즐기는 하루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주말인 지난 8월25일 밤 10시경, 빈 시청 정문 앞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에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랴’의 대단원이 웅장한 합창과 함께 막을 내리고 어둠에 묻혀 있던 고풍스런 시청건물이 은은한 조명으로 윤곽을 드러내자 5000여 관중은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젊은 연인들과 중년 부부들은 대형 스크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은 채 정겹게 귓속말을 나누거나 입을 맞추고 빈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시청 앞 공원 주위에 늘어서 있는 간이음식점에서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흥겹게 이야기를 나눈다. 늦은 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실외등 아래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일대 장관을 이룬다.

    빈 필름 페스티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공연과 클래식 연주회 실황을 녹화해 보여주는 이 행사는 빈 시청이 마련한 것으로 한여름인 7, 8월에 빈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베르디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일 트로바토레’, ‘맥베스’ ‘오델로’ 등 베르디의 오페라를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미카엘 호이플 시장이 말했듯이 빈 필름 페스티벌은 빈 시민뿐 아니라 빈을 방문한 오스트리아와 해외 각지의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빈의 여름밤’을 선사했다.

    빈 시청의 대외홍보담당자인 에바 가스너 씨는 “빈의 유명한 예술 공연은 봄과 가을에 있는데 그 빈 틈을 메우기 위해 마련한 필름 페스티벌에 대한 반응이 좋습니다. 시가 공간을 마련해 주니까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젊은이들은 이때 자신의 짝을 발견하기도 하지요”라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평화로운 도나우인젤

    빈의 주말 아침은 이 시를 가로지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가에서 볼 만하다. 이 도나우강 사이에는 42㎞의 긴 띠처럼 늘어져 있는 인공섬이 있는데 ‘도나우인젤’이라고 부른다. 아침 햇살이 푸른 강물과 잔디밭 위로 밝게 비치는 도나우인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들, 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가족들, 옷을 훌훌 벗고 일광욕을 즐기며 조간신문을 읽는 중년 남자, 가끔씩 사람들 주변으로 접근했다가 멀어지는 백조들이 어울려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연출하고 있다. 도나우인젤은 서울의 한강 둔치와 같은 구실을 하는 셈인데 이 섬 전체가 빈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빈 시민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 관광객들만 오가는 도심에도 점심시간이 되면 육중한 건물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빈의 명물인 커피하우스와 레스토랑의 야외 공간과 도심 곳곳에 있는 공원 주위에서는 점심식사를 즐기는 빈 시민들로 가득 차 보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즐겨 찾았다는 란트만하우스는 빈을 대표하는 커피하우스다. 빈 사람들은 여름에는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다. 땡볕에서도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을 한 웨이터들이 정중하게 서비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빈 시청의 여직원은 “여름에는 야외에서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지만 겨울에 실내에서 유리창 바깥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맛은 일품이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빈의 커피 문화는 유명하다. 커피하우스는 수백 년 동안 빈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애용돼왔다. 영국의 팝이 여론형성의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빈의 커피하우스는 그 이상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란트만하우스는 연극극장인 부르크테아터 옆에 있는데 이곳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이나 배우, 언론인, 그리고 정치가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한때 작가와 자유사상가들의 집결지였던 센트랄, 보헤미안 분위기의 하벨카, 모차르트가 연주하기도 했던 프라우엔후버가 유명하다.

    빈시민들은 커피하우스에 와서 ‘커피 한 잔만’이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커피 종류가 수십가지가 넘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커피를 아주 세세하게 주문한다. 우유를 첨가한 브라우너, 뜨거운 우유를 넣은 멜랑게, 특별히 진한 쿠르츠, 크림을 첨가한 오베르스, 진한 블랙커피인 모카, 소량의 우유 거품를 첨가한 카푸치노, 소량의 크림을 첨가한 콘줄 등 다양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비엔나커피’는 여기서 주문해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을 배려하는 도시

    현대식 고층 빌딩 숲에서 바쁘게 살던 사람이 17, 18세기의 고풍스런 건물이 조각품처럼 진열돼 있는 빈에 들어오면 약간은 느리고 우아하게 살던 ‘귀족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 빈 중심지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모습이 눈에 띈다. 빈의 명물인 피아커란 관광용 마차가 자전거 승용차 버스 전차 등과 같은 도로를 사용하고 있는데 주변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썩 잘 어울린다. 이 마차는 투박한 중산모를 쓰고 구레나룻 기른 마부가 끄는데 주행하는 거리는 도심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관광을 온 가족이나 커플이 주로 애용하는데 귀족시대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다만 마차를 끄는 말 냄새까지 낭만스럽게 여길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속도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휴식을 위해 한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으로는 빈이 적합하겠지만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무척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을까. 그러나 영국의 컨설팅업체인 머서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도시 환경 조사에 따르면 빈은 ‘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 베스트 10 중에 늘 3, 4위에 오른다. 빈이 ‘보기 좋은 도시’일 뿐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빈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한국 교민들은 첫째 이유로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스트리아인들이야 자기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면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고국을 떠나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그 도시가 자신을 냉대하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법이다. 빈 한인회 부회장 김종민(金鍾珉·42) 아시아하우스 대표의 말이다.

    “처음에 이민왔을 때 아무 연고도 없는데 담보도 없이 2000만원을 오스트리아은행에서 대출해줬어요. 앞으로 동구에 투자하고 싶다는 말만 듣고 신용대출을 해줬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놀랐지요. 한번은 하수구에 가게열쇠가 떨어졌는데 한국으로 말하면 구청직원이 와서 긴 막대기에 자석을 달아 꺼내줬어요. 빈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재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정양순씨도 빈에 사는 매력의 1순위로 ‘인간적인 도시’라고 꼽았다. 정씨는 간호사로 빈에 와서 빈 출신의 오스트리아 남자과 결혼했다.

    “그 동안 외국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이나 갈등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배려를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급히 한국에 가야 하는데 여권을 보니 바로 다음날이 만기일이에요. 그래서 급하게 여권과에 전화를 해서 절박한 사정을 말했더니 마감시간이 끝났는데도 오라고 해요. 그래서 갔더니 ‘처리를 해놓을 테니 내일 아침 8시 전에 와서 재발급한 여권을 찾아가라’고 하잖아요. 참으로 감동받았어요.”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빈의 인간적인 포용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동구 붕괴시의 상황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위기에 처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발칸 3국의 피난민들이 빈의 문을 두드렸을 때 안식처를 제공해줬다는 것. 빈은 면적 415㎢에 160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데 이중 30만명이 이민자라고 한다.

    “빈은 오래 전부터 인구의 변화가 별로 없었어요. 1980년대 후반 동구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와 한때 인구가 증가했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런던이나 파리로 빠져 나가면서 감소했지요.”

    빈 시청 도시계획 담당자 미트링거(45) 씨의 말이다.

    빈을 살기 좋은 도시로 꼽는 둘째 이유는 ‘문화의 향기가 나는 도시’라는 것이다. 이 점은 내외국인 할 것이 없이 거론하는 말이다. 빈은 역사가 오랜 고도인 만큼 문화의 퇴적층은 두텁고 다양하다. 빈은 원래 켈트족의 주거지였는데 로마제국의 통치 시기에는 요새로 바뀌었고 10세기 독일의 바벤베르크 왕조가 빈을 차지한 뒤에는 교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들어선 뒤 한때 투르크 제국의 침략을 받기는 했지만 이들이 물러간 17세기 이후 빈은 대제국의 문화 중심지로 크게 부흥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몰락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현재에도 옛 영화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빈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빈에는 오래된 건물이 많다. 건물 외벽에 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내부 구조물을 개조하는 작업은 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전문가인 에리히 노이게바우어(51)씨는 한마디로 “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빈은 삶의 질이 높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라고 말했다.

    “하룻밤에 들을 만한 연주회가 열 곳에서 열리고 볼 만한 연극 열 편이 공연되고 신나게 춤출 수 있는 댄스장 열 곳이 늘 열려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 때부터 빈은 유럽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명성 있는 예술가들은 모두 빈으로 모여들었고 유럽의 다양한 문화가 빈으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예술과 문화에 관한 한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현대적인 대중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겠죠. 그러나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빈 오페라극장에는 서서 들을 각오만 하면 50실링만 내면 들어갈 수 있어요. 세계적인 공연도 이 돈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아래층에는 5000실링이라는 비싼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지만….”

    1실링을 80원으로 환산하면 단돈 4000원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실황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입석표는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구하기 힘들다. 입장권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입석표는 동이 나기 때문이다.

    빈에서는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린다. 5, 6월에 페스트보헨이라는 공연예술 축제가 열리는데 세계 각국의 고전오페라, 연극, 발레, 연주회 등을 즐길 수 있다. 1993년부터 에이즈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열리는 무도회인 ‘라이프 볼(life-ball)’도 봄철에 열리는데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행사의 개막식 때는 티리 머글러, 장 폴 고티에, 파코 라반, 비비엔 웨스트우드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패션쇼가 열리고 행사중에는 기괴한 복장을 한 사람과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등장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여름철에는 대극장들이 공식적으로 문을 닫는다. 그러나 빈 필름 페스티벌 외에도 옛 명화를 야외의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팝 필름 페스티벌, 전세계 재즈 애호가들의 축제인 빈 재즈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에는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기념해서 지미 스캇, 조지 벤손 등 유명한 재즈 연주가들이 참석했다.

    가을에는 오페라하우스 같은 유명한 극장들이 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문을 열면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연주회가 열린다. 9월부터는 빈 소년 합창단이 매주 일요일마다 공연을 한다. 10월 중하순경에는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비엔날레 영화제가 열린다. 모던댄스페스티벌도 볼 만하다. 겨울철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빈 필하모니 등의 각종 연주회가 펼쳐진다.

    빈에서는 이런 큰 행사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지난 8월24일 저녁 빈 중심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에서 가까운 자그마한 교회에서는 빈대 출신인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와 트럼펫 연주자가 바흐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했다.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40대 이상의 중년이었지만 20대도 섞여 있었다.

    오락적인 연주회도 열린다. 17, 18세기 귀족풍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한 판촉사원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주회 표를 파는 것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마다 발견할 수 있다. 곳에 따라서는 저녁식사를 즐기고 우아하게 왈츠를 출 수 있는 곳도 있다.

    슈테판 대성당 주변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사’들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붙잡는다. 도보 관광에 지친 관광객이나 이곳에서 약속한 빈 시민들은 도로 곳곳에 있는 벤치와 야외 식당 의자에 앉거나 주변에 서서 이들이 연주를 즐긴다.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치고 몇 푼의 ‘성금’을 연주자들에게 기부한다. 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면 흥미롭다. 약간 서툴긴 해도 자신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앰프에서 나오는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등을 연주하는 사람, 아예 앰프에서 나오는 연주에 맞춰 흉내만 내는 사람이 있는데 마지막 유형의 연주 모습이 가장 그럴듯하다. 상당한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빈의 매력은 도시 중심부 전체가 ‘예술작품’이라는 데 있다. 앞에서 말한 도나우인젤 한가운데 서서 좌우를 둘러보면 흥미로운 풍경를 발견할 수 있다. 왼쪽을 둘러보면 강 건너로 유엔 기구 건물 등 현대적인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고층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고풍스런 건물의 돔만 눈에 띈다.

    이 지역이 바로 빈의 중심부다. 이 지역 안에 있는 궁전, 교회, 관청, 주택 등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 고딕 양식, 유겐트슈틸 양식 등 17, 18세기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 전체가 거대한 역사박물관인 셈이다. 빈 시청은 이런 전통적인 모습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건축 규제를 가하고 있다. 빈시의 중심에서부터 일정한 동심원을 그리며 건축물의 고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빈 시청 관계자의 말이다.

    “만약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면 시민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납니다. 한쪽에서는 빈시의 옛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축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의 발전을 위해서 건축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대로 유지하자는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빈 시민들이 옛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뮤지움스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이곳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의 가운데 광장을 지나 내려가면 마주치는데 예전에 왕실 사람들이 승마를 즐기고 마부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주위의 웅장한 건축물에 비하면 외양은 보잘것없지만 이제는 빈 문화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되고 있다. 지난 5월에 1차 오프닝 행사를 끝내고 9월 중순에 2차 오프닝 행사를 열기 위해 옛 건물을 보수하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짓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는 미술 작품 전시공간, 어린이 문화센터, 작가의 창작실, 레스토랑, 매점 등이 들어서 있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뮤지움스콰르티어 관계자는 “예전에는 이 건물이 학생들의 놀이터로 방치되었으나 이제는 빈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종합적인 문화 복합센터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에 시작돼 2002년 여름에 완성되는 이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연방정부가 16억실링을 내놓고 빈 시청이 4억실링을 투자했다.

    이외에도 빈시는 예술가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해 매년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빈시의 문화행사 지원 담당자인 실비아(31) 씨는 “우리는 매년 15만~20만달러를 지원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문화행사를 하겠다고 하면 심의위원회에서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지원한다”고 말했다.

    빈이 살기 좋은 셋째 이유로는 ‘편하고 안전한 도시’라는 점을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살기에 편하다는 것은 우선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시간이 충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빈 시민들은 ‘그린(green) 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인공섬인 도나우인젤을 비롯해서 빈시 북서쪽에 있는 그린 벨트 지대인 빈발트(빈숲), 그리고 빈시 동남쪽에 있는 국립공원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외에도 빈 곳곳에는 공원과 정원이 널려 있다.

    원활한 교통, 깨끗한 수돗물, 맑은 공기, 안전한 치안 상태, 저렴한 교육비 등도 빈의 매력을 더하게 한다. 지하철, 전차, 버스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30분 이내에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아 생수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산악지대의 호수에서 깨끗한 물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정에 전달되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있다. 호텔 화장실에서 직접 수돗물을 마셔본 결과 석회 냄새나 화학약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빈의 공기가 맑은 것은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이나 차량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 비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는 바람과 대기를 맑게 하는 빈 주변에 펼쳐진 숲 덕분이다.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녀도 와이셔츠 깃은 그다지 더러워지지 않았다. 빈은 밤늦게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시내 거리를 돌아다녀도 불안하지 않다. 경찰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빈에는 빈 대학교를 비롯한 종합대학교와 단과대학들이 있다.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부담했다. 그러나 대학생들에 대한 혜택이 많아 학생 신분을 계속 유지하며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올해부터 한 학기당 5000~1만 실링을 받는 곳이 있다고 한다.

    초중등교육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있는데 사립학교 교육비는 우리나라 사립 초등학교 수준과 맞먹지만 공립학교는 모든 것이 무료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 김종민씨의 부인 정형미씨의 말이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담임교사가 학부모를 초청하기에 갔더니 깜짝 놀랐어요. 부모가 모두 참석했어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학부모들이 각자 50실링(4000원)씩 모아 선생님께 선물을 해요. 부담도 되지 않고 좋았어요.”

    유럽대륙 한가운데 있는 빈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시민들이 지중해가 있는 그리스 해안 도시로 가서 피서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나우강에서 수영이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겨울철에는 전국민이 스키와 스케이트를 즐기는데 계절과 무관하게 축구와 승마도 즐긴다. 빈의 많은 댄스학교들이 카니발 기간 동안 무도회를 개최한다. 그러면 남녀 노소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참석하는데 오페라무도회가 가장 큰 행사다. 댄스학교에서는 왈츠 등의 고전 댄스뿐 아니라 다양한 현대 댄스도 배울 수 있다.

    빈은 우아한 품위를 유지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중년들이나 가족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준다. 청소년 중심의 대중문화 외에는 향유할 것이 없는 한국에 비해 빈은 40대 이상의 중년들이 옛 낭만과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시 전체가 항상 준비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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