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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사마 빈 라덴! 감춰진 진실

11월 세계 동시출간 CNN기자의 역저 ‘Holy War’(聖戰) 긴급입수 발췌

  • 이윤섭 < 전문번역가 >

인간 오사마 빈 라덴! 감춰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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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사나이’ 오사마 빈 라덴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신동아’는 오는 11월, 세계 동시 출간될 CNN 기자 피터 베르겐의 평전 ‘Holy War(聖戰)’의 영문 원고를 입수했다. 명상출판사가 출간 준비중인 이 책에는 이제껏 공개되지 않은 빈 라덴의 사생활과 사상적 궤적이 비교적 소상히 기록돼 있다. 이 책과 최근 출간된 미의회 대테러리즘 특별팀장 요제프 보단스키의 저서 ‘오사마 빈 라덴’(명상출판사)의 주요 내용을 함께 소개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조상은 대대로 예멘의 하드라마우트(Hadramaut)에서 살았다. 하드라마우트는 산악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땅으로, 일년 내내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곳이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하드라마우트 주민들은 주로 무역과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주해 거부를 이룬 사람도 적지 않다. 빈 라덴 가문은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부호임에도 생활이 검소하고 정직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다.

짐꾼에서 거부가 된 아버지

오사마 빈 라덴의 부친 무하마드 빈 라덴은 1930년경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제다 항구의 짐꾼으로 일하다 1931년 건설회사를 차렸는데 많은 하청을 따 단시일 내에 큰 성공을 거뒀다. 1950년대, 무하마드 빈 라덴은 왕궁 건설 프로젝트를 땄고 뛰어난 건축실력으로 사우디 국왕 알 사우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사우디 왕족 중 특히 알 사우드의 동생인 파이잘과 친했다. 1964년 알 사우드와 파이잘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져 알 사우드 국왕은 물러나고 파이잘이 국왕이 됐다. 이 과정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부친은 상당한 역할을 했고 그 공으로 공공사업부 장관이 됐다.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엄격했던 부모의 이혼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3월1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태어났다. 오사마는 아랍어로 ‘젊은 사자’란 뜻이다. 무하마드 빈 라덴은 여러 명의 아내로부터 50명의 자녀를 보았는데 오사마 빈 라덴은 17번째 아들이다. 무하마드 빈 라덴은 종종 자식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혼동을 일으켰다. 시리아 사람인 오사마의 모친은 딸도 여럿 낳았으나 아들은 오사마가 유일했다.

오사마의 모친은 나중에 무하마드 빈 라덴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그러나 아들과의 연락은 계속돼, 1990년대 초반 오사마가 수단에 머무를 때도 아들을 찾았으며, 2001년 초 손자인 오사마의 아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결혼식을 치를 때도 참석했다.

빈 라덴 가문 사람들은 대체로 신앙심이 깊다. 또한 이슬람 3대 성지인 예루살렘, 메카, 메디나의 이슬람 사원 재건축을 맡아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무하마드 빈 라덴은 자식들을 엄격히 훈육했다. 오사마 역시 어린 시절부터 종교 교육을 받았다.

오사마가 10세이던 1967년, 그의 부친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유산은 주식 형태로 자손들에게 분배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보다 열살 많은 장남인 살림 빈 라덴이 가문의 사업을 꾸려갔다.

살림은 어린 시절 영국에서 교육 받았고, 영국 귀족가문 출신인 캐롤라인 카레이(Caroline Carey)와 결혼했다. 사업관계로 미국 텍사스를 자주 방문했던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Orlando)에도 저택을 갖고 있었다. 살림은 기타를 잘 쳤으며 자가용 비행기를 스스로 몰고 다니기 좋아하는 파일럿이었다. 그는 가문의 기업을 국제적 재벌로 키웠다. 빈 라덴 가문은 건설뿐 아니라 발전소 건설, 석유 탐사, 광업, 통신업에도 진출했다. 살림은 1998년 미국 텍사스에서 소형 비행기를 몰다 추락 사고로 죽었다. 수년 후 캐롤라인 카레이는 아랍의 관습대로 살림의 동생인 할리드와 결혼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청소년기에 방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과장된 것이다. 1975년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레바논은 중동의 ‘파리(Paris)’로 불렸다. 중동 지역의 부유층은 레바논으로 자주 휴가를 갔다. 엄격한 금욕 생활을 강요받던 아랍인들이 이곳의 나이트클럽, 카지노, 술집 등 향락업소를 자주 출입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도 레바논을 여행할 때 몇 번 향락업소에 출입했으나 호기심 차원 이상의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1971년 여름, 14세의 빈 라덴은 두 형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어 연수를 받았다. 이때 가깝게 지냈던 한 스페인 여성은 빈 라덴에 대해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은 소년이었다”고 말한다. 이 여성은 빈 라덴이 록 음악이나 패션에는 관심이 없었고 런던 풍경을 싫어했다고 전했다.

17세가 되던 해에 빈 라덴은 시리아인 어머니의 인척인 아가씨와 결혼한다(빈 라덴은 이후 3명의 처를 더 얻었다). 그리고 곧 제다에 있는 명문 킹 압둘 아지즈 대학에 입학해 1981년 경제학 및 행정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빈 라덴은 대학에 다닐 때 이슬람주의자 조직의 하나인 무슬림형제단을 알게 되고 뛰어난 이슬람 학자들인 압둘라 아잠, 무하마드 쿠트브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 두 사람이 빈 라덴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압둘라 아잠은 이후, 참된 의미의 국제 지하드 네트워크를 최초로 조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저명한 이슬람주의 학자인 무하마드 쿠트브는 사이드 쿠트브의 형제다. 사이드 쿠트브는 지하드 운동 핵심 교재인 ‘사인포스트(Signpost)’의 저자. 1966년 사이드가 이집트에서 처형되자 무하마드 쿠트브가 죽은 형제의 일을 떠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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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섭 < 전문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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