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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치 주름잡는 환상의 투톱 블레어와 브라운

  • 정재영 < 프리랜서·영국 워윅대 철학박사과정수료 >

영국정치 주름잡는 환상의 투톱 블레어와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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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 시절 40대 초반의 두 젊은 정치인이 노동당 개혁을 외치며 새 바람을 몰고 왔을 때, 영국 정가에서는 그들을 개혁의 쌍두마차라고 불렀다. 정치적 센스와 추진력이 뛰어난 토니 블레어(TB)와 신중하고 논리적인 고든 브라운(GB). 다우닝가 10번지와 11번지로 흔히 불리는 영국 총리와 재무상으로 역할을 분담, 영국사 초유의 ‘이원 정치’를 펼치고 있는 TB와 GB의 우정과 경쟁을 지켜보면, 우리나라 YS와 DJ가 떠오른다.
다우닝가 200년사(史) 최고의 명콤비, 영국을 움직이는 두 명의 제왕.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18년 집권 보수당의 대처리즘이란 물줄기를 ‘제3의 길’로 돌려놓은 두 사람은, 1997년 5월 노동당 집권 이후 인기와 영향력 면에서 1, 2위 자리를 다투는 경쟁자이면서도 서로를 정치 입문 후 최고의 친구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노동당 내부에서는 그들을 TB(토니 블레어)와 GB(고든 브라운)로 약칭한다. 영국 언론에서는 노동당 각료들을 블레어 그룹(Blarite 또는 the Blairs)과 브라운 그룹(Brownite 또는 the Browns)으로 분류한다. 영국 노동당 역사 이래 처음으로 연속 2기 집권에 성공한 이후, 정치적 무게가 더욱 커진 두 사람에게 영국 정치가 휘둘리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TB와 GB에게 보내는 영국인들의 신뢰는 여전히 두터운 편이다. 창간 이후 줄곧 보수당을 지지해왔던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001년 6월 총선에서 노동당 지지로 선회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한때 그들을 한데 묶어 브라운-블레어 그룹으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 영국의 주요 언론사가 몰려있는 플리트가(街)에서는 브라운-블레어 그룹을 노동당 개혁파(reformists)와 동의어로 사용했다. 두 사람을 지칭할 때,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항상 브라운이었다. 적어도 1994년 5월까지는 그랬다. 지난 1994년 존 스미스 영국 노동당 당수가 심장마비로 급사했을 때, 브라운은 노동당 그림자 내각의 재무상, 블레어는 그림자 내각의 내무상이었다. 영국정치에서 당 서열은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사당 어느 자리에 앉느냐로 정해진다. 브라운은 주요 각료가 앉는 프런트 벤치의 1번, 블레어는 그 다음 순위였다. 플리트가에서는 지금도 존 스미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없었다면, 노동당 당권은 자연스럽게 고든 브라운에게로 이양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1994년 5월의 마지막 날. 블레어와 브라운은 런던 북부에 있는 이슬링턴의 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담판을 했다. 영국 언론은 이를 음식점 이름을 따 ‘그리니타 회동’이라 부른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영국 정가의 참새들이 온갖 입방아를 찧는 소재 중 하나다. 플리트가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언론에 언뜻언뜻 밀약 내용을 암시하는 내용이 실리기도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블레어가 당권을 맡되, 노동당이 2기 집권에 성공하면 브라운에게 총리 자리를 넘긴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 내용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두 사람은 “밀약은 없었다”고 딱 잘라 부인해왔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블레어의 총리직 이양 약속을 ‘공개된 비밀’로 간주한다. 특히 브라운 그룹은 이를 기정 사실로 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두 사람이 정계에서 물러나 회고록을 써낼 때쯤에야 밝혀지겠지만, 그리니타 회동 다음날 브라운은 당권 경쟁을 포기하고 블레어 지지를 천명했다. 브라운의 양보는 보수당 내부의 권력투쟁에 식상해 있던 영국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두 사람의 인기가 같이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블레어는 자신의 정치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었고, 브라운은 당권 대신 인품이 높은 정치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유력한 두 젊은 개혁파 후보의 연합으로 1994년 6월 노동당 당수 경선대회는 토니 블레어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블레어 57%, 존 프레스코트(현 영국 부총리) 24%, 마거릿 베케트는 19%. 당시 토니 블레어의 나이는 41세(브라운은 43세). 노동당 역사상 최연소 당수의 등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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