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해외인물

영국정치 주름잡는 환상의 투톱 블레어와 브라운

  • 정재영 < 프리랜서·영국 워윅대 철학박사과정수료 >

영국정치 주름잡는 환상의 투톱 블레어와 브라운

4/9
두 사람의 개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BBC 라디오 방송 ‘투데이(영국의 여론주도층은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이야기되는 영향력 큰 아침 시사뉴스)’를 진행하는 제임스 노허티가 들려준 이야기다. 노허티는 ‘스코츠맨’ ‘가디언’ 등에서 정치담당 기자로 잔뼈가 굵은 언론인으로 블레어와 브라운을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다.

1983년 6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흔히 웨스트민스터로 불리는 영국 하원에 처음 진출했을 때 일이다. 두 사람은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의원회관의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한 셈이다. 물론 그곳에는 보좌관도, 비서관도, 여비서도 없다. 창문도 없는 비좁은 공간에 브라운은 자료 파일을 수북하게 쌓아놓았다. 얼핏 보아서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브라운은 하루종일 일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에 비해 블레어의 책상은 항상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책상 옆에 세련된 고급 서류가방 하나를 단정히 놓고 깔끔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블레어는 언제든 손님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 변호사처럼 보였다.

블레어의 정치 학습은 대부분 브라운이 제공한 것이었다. 블레어는 브라운이 끙끙거리며 만들어놓은 각종 보고서를 자신의 언어로 간결하게 소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블레어는 사람 만나기를 즐겼다. “각종 중요한 모임에 블레어가 빠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블레어는 항상 인상적인 스피치를 했다. 반면 브라운은 노동당의 각종 위원회에 이름이 빠지는 법이 없는 일꾼이었다. 그리고 브라운은 항상 인상적인 보고서를 남겼다.” 노허티의 말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두 사람의 특징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블레어가 각론에 약하다거나 브라운의 말솜씨가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블레어의 국정 파악 능력은 대처 전수상에 못지않다고 알려져 있다. 주무장관보다 오히려 사안의 핵심은 물론, 수치까지도 더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각료들을 쩔쩔매게 하는 블레어다. 브라운이 입을 열면 주위가 조용해진다. 그의 말에는 힘과 권위가 묻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음으로 해서 시너지효과가 더 커진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토니 블레어는 1953년 5월6일 스코틀랜드 주도(州都) 에든버러에서 변호사 레오 블레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토니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블레어 가족은 잉글랜드 북동부에 있는 뉴캐슬로 이사했다. 하지만 레오는 두 아들을 에든버러에 있는 명문 기숙학교 페테스 칼리지에 집어넣었다. 페테스는 엄격한 규율과 기숙생활이 특징인 영국의 전통적인 퍼블릭스쿨.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튼칼리지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퍼블릭스쿨이라면, 페테스칼리지는 스코틀랜드에서 첫손 꼽히는 퍼블릭스쿨이다.



계급사회적 성격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영국에서 퍼블릭스쿨 출신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가끔 공립학교로도 잘못 번역되는 퍼블릭스쿨은 사실은 1년 학비(등록금과 기숙사 비용 포함)만 2만파운드(약 3700만원)에 가까운 사립학교다. 웬만한 재력이 아니면 자녀를 퍼블릭 스쿨에 보내기 힘들다. 사회적 신분 상승을 기대하고 무리해서 보내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물론 레오가 아들들을 페테스에 보낸 것은 신분 상승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법정 전문 변호사 배리스터(영국에서는 변호사를 법정 변호를 하는 배리스터와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터로 나눈다)인 레오 블레어는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갖춘 영국의 중산층이었다. 그는 한때 에든버러대에서 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토니 블레어는 13~18세 시절을 에든버러 북부에 자리한 도시 속의 성, 페테스학교에서 보냈다(1966~1971). 토니 블레어는 1955년 노동당 당권을 잡은 휴 가이츠겔 이후 두번째로 퍼블릭스쿨을 졸업한 노동당 지도자로 꼽힌다.

그 무렵, 고든 브라운은 페테스학교에서 남쪽으로 3㎞ 떨어진 에든버러대에 다니고 있었다. 브라운이 에든버러대에 들어간 것은 1967년. 유럽과 미국 대학에 거친 폭풍처럼 밀어닥친 68학생운동 1년 전이었다.

4/9
정재영 < 프리랜서·영국 워윅대 철학박사과정수료 >
목록 닫기

영국정치 주름잡는 환상의 투톱 블레어와 브라운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