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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살기 좋은 도시’를 가다 12 · 끝

햇살이 춤추는 땅, 예술가들의 천국

미국 샌타페이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햇살이 춤추는 땅, 예술가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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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시적 자유와 해방의 공간’으로 불리는 샌타페이는 뉴욕, LA와 더불어 미국의 3대 문화도시 중 하나다. 인구 7만명의 소도시에 갤러리만 250여개. 인디언·스패니쉬·앵글로색슨의 문화가 교묘히 결합해 독특하고 이국적인 향취를 풍긴다. 정신이 풍요로운 도시, 샌타페이의 역사와 매력.
햇살이 춤추는 땅, 예술가들의 천국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건축물인 구 스페인 총독관저. 건물 측면 화랑에서는 인디언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수공예 장식구들을 팔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건축물인 구 스페인 총독관저. 건물 측면 화랑에서는 인디언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수공예 장식구들을 팔고 있다. 현대 도시, 특히 미국 대도시의 아름다움은 종종 ‘야경(夜景)’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오색 조명으로 장식한 다리, 질주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다이아몬드 왕관을 쓴 듯 오만하게 반짝이는 고층빌딩의 네온사인과 현란한 스카이라인. 기술과 전기(電氣)와 경찰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대도시에서 사람살이의 감동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샌타페이(Santa Fe)는 분명 특별한 곳이다. 춤추는 햇살, 깊고 푸른 밤, 낮은 집과 구부러진 골목, 정교한 수공예품이 넘치는 구멍가게와 촘촘히 숨어 있는 갤러리들. 미국 최고도(最古都)이자 ‘원시적 자유와 해방의 공간’으로 불리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예술가, 식지 않은 히피 정신의 본향. 거기 세계 최대 경제대국다운 물질적 풍요까지 더해져 방문객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샌타페이는 미국 최남단 주(州)인 뉴멕시코의 주도(州都)다. 해발 2135m, 로키산맥 남쪽 끝자락을 밟고 서있다. 고도가 높아서일까, 코발트색 아크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저녁노을은 또 어떤가. 멀리 누운 로키산맥 위로 고요히, 그러나 숨막히도록 선명하게 타오르는 핏빛 노을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선홍색으로 할딱이게 만든다. 샌타페이의 상징이자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이런 말을 했다. “명료함, 그것이 내가 샌타페이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 곳에서 나는 내 자신이 된다.”

예술가만 샌타페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택시기사 패트릭 고메즈(30) 씨는 4대째 샌타페이에 살고 있다. “샌타페이는 빛의 질이 다르다. 아침 점심 저녁의 햇살이 다 아름답다. 지금 다섯 살, 두 살인 내 아이들도 이곳에서 나처럼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에게 샌타페이는 자손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축복의 땅’이다.

뉴멕시코주는 북미에서도 가장 오래된 인디언 거주지역 중 하나다. 인디언이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기원전 1만500년 경의 일이라고 한다. 1598년, 뉴멕시코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다. 1821년, 멕시코 독립과 함께 그곳의 일부가 되었다가 다시 1848년, 멕시코 대 미국 전쟁의 결과 미국 영토로 편입된다. 1870년대, 철도가 깔리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졌고 1912년 1월6일, 마침내 미연방의 47번째 주(州)가 됐다. 뉴멕시코란 주명(州名)은 한 멕시코 탐험가가 ‘새로운 멕시코’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햇살이 춤추는 땅(Land Of Enchantment Sunshine State)’이라 불렀다.



400년 역사 지닌 미국의 고도


햇살이 춤추는 땅, 예술가들의 천국

샌타페이의 대표적 골프장인 '마르티 산체스 링크'

샌타페이의 대표적 골프장인 ‘마르티 산체스 링크‘ 뉴멕시코에는 3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인구 40여 만명의 앨버커키, 6만8000명인 샌타페이, 5만여 명인 로스웰. 서울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가장 큰 도시인 앨버커키를 제치고, 우리나라로 치면 경남 거창군 수준의 상주인구를 가진 샌타페이가 주도(州都)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정체성 뚜렷한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푸에블로족의 땅이었던 샌타페이에 처음 서구식 주거지가 들어선 것은 1609년이었다. 소와 양과 말을 들여온 스페인 정복자들은 샌타페이를 탐험과 전도(傳道)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스페인인과 인디언간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610년에는 총독 관저(현 뉴멕시코박물관)를 건설했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미국 최고(最古)의 공공건축물이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지만 덕분에 샌타페이는 미국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색채를 띠게 됐다. 이는 웅혼하고 야성적인 자연 환경과 어우러져 샌타페이에 이국적이며 자유로운 향취를 더했다. 회반죽을 발라 모서리 없이 둥글둥글하게 마무리한 어도비(adobe) 건축양식은 대표적인 ‘샌타페이 스타일’이다.

샌타페이 문화의 지층을 이루는 것은 수천년을 이어온 인디언 문화다. 그 위에 스페인 문화와 멕시코 문화, 다시 앵글로색슨의 문화가 덧칠해졌다. 샌타페이가 세계적 문화 도시로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1900년대 초·중반 동부지역 예술가들의 집단 이주다. 격식과 제도, 도시적 감성에 길들여져 있던 백인들은 샌타페이의 원시적이고 이국적인 풍광에서 큰 충격과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이들은 허름한 폐광촌, 낡은 어도비 가옥에 둥지를 틀고 전혀 새로운 감수성의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렬한 햇살, 거친 바위산, 황량한 사막과 낯선 생활양식. 이들에게 인디언이나 멕시코 문화는 멸시가 아닌 탐구와 찬탄의 대상이었다. 1950년대 말부터는 히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샌타페이가 갖고 있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는 이렇게 여러 인종의 문화에 시인·화가·소설가·몽상가·히피·광인, 심지어는 진 해크먼·로버트 레드퍼드 같은 유명 배우들의 아우라까지가 합쳐져 창출된 오랜 융합의 결과물이다.

샌타페이는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다. 주민은 히스패닉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백인, 인디언 순이다. 인디언들은 대부분 카운티 밖 집단 거주지에 산다. 흑인·동양인은 거의 없다. 한국교민은 20가구 정도. 카운티 외곽 주택가나 인근 도시인 로스앨러모스에 거주한다. 이들 대부분은, 복잡계 연구의 메카로 유명한 샌타페이연구소와 인공지능·게놈 연구의 총본산인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이다.

히스패닉은 17세기부터 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해왔다. 인구가 많은 만큼 영향력도 커, 지명은 물론 일상 용어에도 스페인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히스패닉끼리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샌타페이의 ‘주류’는 앵글로색슨이 아니라 히스패닉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가톨릭 신자가 유난히 많은 것도 히스패닉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1900년대부터는 백인들의 진출이 늘었다. 외지에서 이주한 백인들은 히스패닉 소유의 땅과 집을 비싼 값에 구입하는 방식으로 이 도시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속도는 느린 편이다. 시 당국의 통제로 인해 새 건물 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 당국은 이 도시만의 개성과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에 있어 매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샌타페이시청 직원인 로라 설리번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2층 이상의 건물은 지을 수 없으며 어도비 양식을 응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문 크기며 모양, 외벽 색깔, 현관 디자인과 천장 높이까지 고려한다. 기존 건물을 개조할 때도 일정한 원칙에 따라야 한다. 샌타페이의 명성과 풍요로움은 그 문화적 가치에서 파생되는 만큼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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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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