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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눈치 보는 대한민국이 불쌍하다”

추방 위기 중국 반체제인사 쉬보의 3년 체한기

  • 글: 곽대중 자유기고가 bitdori21@kebi.com

“중국 눈치 보는 대한민국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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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눈치 보는 대한민국이 불쌍하다”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쉬보

1월15일 여행단은 88올림픽이 열렸던 잠실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사람들이 각자 사진을 찍는 자유시간을 이용해 운동장 밖으로 나왔다. 미국대사관을 찾아가야겠는데 한국말을 한마디도 모르니 택시를 탄다 해도 갈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행인을 붙잡고 중국말을 아느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았는지 화교(華僑)를 만날 수 있었고, 그가 택시운전사에게 말해주어 미국대사관까지 갈 수 있었다. 이제 바라던 바의 90%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가 절망의 시작이었다.

“미국대사관에 가서도 한참 만에야 통역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과장급 정도로 보이는 사람에게 ‘나는 중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체포될 위험에 처해 도망쳐 나온 사람’이라 소개하며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망명은 대사관에서 하는 게 아니라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로 가라고 했습니다. 좀 허탈했지만 ‘그것이 절차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서울시 중구 정동의 UNHCR 한국사무소를 찾았다. 다짜고짜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담당직원은 “UNHCR은 세계 난민을 보호·지원하는 기구이긴 하지만 특정 국가로 망명을 보내줄 수는 없다”며 “한국정부에 먼저 망명신청을 하라”고 했다. 여기저기 떠넘겨지는 기분이었지만 담당직원이 한국정부에 망명신청하는 절차를 자세히 가르쳐 줘 며칠 후 서류를 준비해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갔다.

거부된 난민인정신청

출입국관리소 담당직원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먼저 한국에 어떻게 왔는지부터 물어봤다. 여행단에 끼어서 왔다고 하니 살짝 웃으며 중국에선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자동차부품판매상을 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혹시 생계가 어려웠느냐, 불법취업을 하면 실정법에 어긋난다는 등 엉뚱한 말을 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민주화운동이냐고 무시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일단 서류는 접수하겠지만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한번도 난민을 인정해본 적이 없다”며 담당직원은 돌아섰다. ‘지금까지 한번도’란 말에 앞이 캄캄해졌다. 혹시 농담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민주화운동을 했고 망명 경험이 있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난민을 인정한 적이 없다니….

한국정부의 난민인정 절차는 길고도 지루했다. 1999년 2월8일자로 제출된 난민인정신청서가 ‘난민인정협의회’를 거쳐 통지가 오기까지 딱 2년이 걸렸다. 2001년 2월17일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에게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야 됐구나’하는 부푼 기대에 열어본 서류봉투. 그러나 담겨있는 서류 상단엔 허가(acceptable)란 단어 대신 거절(refusal)이란 단어가 보였다. ‘난민인정불허통지서(Refusal notice on the recognition of refugee status)’였다.

‘귀하의 난민인정신청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사유로 난민인정을 하지 아니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유-신청인이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원고(原稿)가 발송되었는지, 서문립(쉬원리)이 그것을 수령했는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원고가 정부에 의해 실제로 몰수되었는지를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청인이 박해받을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신청인의 난민인정신청 사유는 난민협약 제1조에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없음.’

이에 대한 쉬보의 반론은 이렇다. 먼저 법무부가 의심하는 것은 책으로 출판하려 한 ‘홍색 파쇼’의 원고가 정말로 쉬원리에게 전달됐는지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쉬보는 “쉬원리 선생은 감옥에 있으니 확인해줄 수 없어도 쉬원리 선생의 부인은 내가 책을 전달할 때 옆에 있었으니 증언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난민인정 담당직원에게 쉬원리 선생의 집 전화번호도 가르쳐줬다. 한번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홍색 파쇼’가 쉬원리에게 전달됐다 하더라도 그것이 쉬원리 집에 대한 압수수색과정에 몰수됐는지 증명할 방도가 없다는 부분. 쉬보는 “1999년 1월27일 우리 집이 압수수색을 당한 걸 보면 ‘홍색 파쇼’가 중국당국의 손에 들어간 건 확실하지 않으냐”고 말한다.

법무부는 일개 자동차부품판매상이 무슨 민주화운동을 했겠느냐고 하지만, “그렇다면 일개 자동차부품판매상의 집을 무엇 때문에 수색했겠느냐”고 쉬보는 반문한다. 그는 “중국의 우리 집에 전화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한국정부의 관리들은 책상에 앉아 서류만 살펴볼 뿐 전혀 조사나 확인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제시한 난민인정 불허사유의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 돌아간다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것. 이 부분에서 쉬보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럼 본국으로 돌아가 공안당국에 끌려가야만 한국정부는 그때서야 ‘탄압받는구나’라고 확인하고 다시 데려와 난민인정을 해줄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1998년 끌려갔던 중국 민주화운동가들이 체제전복을 모의했다는 심증만으로 11∼13년에 이르는 중형을 받았는데, 자신처럼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책이라는 물증으로 남겨 놓은 경우는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쉬보는 “15년형은 족히 받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실제로 현재 중국엔 3000여명의 정치범이 감옥이나 노동개조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구속 이유는 대개 “공산당을 반대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쉬보는 한국에 온 이후 ‘라디오 프리 아시아(Radio Free Asia)’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등을 통해 ‘홍색 파쇼’의 주요내용을 소개했다. 이 방송들은 중국에서도 청취된다. 영국 BBC에도 쉬보의 사연이 소개됐다. 중국 땅을 밟는 순간 쉬보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리란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법무부의 난민인정 불허통지에 대해 쉬보는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자 7개월 후 또 하나의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통지서의 제목은 ‘Disapproval(불승인)’으로 시작됐다. 이의신청을 기각한다는 것. 기각 사유는 7개월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런 추가조사나 검토도 하지 않다 때맞춰 통지서만 보내준 것이다. 쉬보는 낙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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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대중 자유기고가 bitdori21@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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