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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겸의 낯선 땅, 낯선 사람

‘수백 개의 문이 있는 도시’ 룩소르

영원불멸의 꿈이 아이러니로 남은 땅

‘수백 개의 문이 있는 도시’ 룩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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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개의 문이 있는 도시’ 룩소르

도심지만 벗어나면 어디서나 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강을 건너 서안에 이르러 멤논의 거상, 람세스 3세 신전, 라메세움 등의 유적을 거쳐 핫쳅수트 신전으로 향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뒤로하고 서 있는 거대한 3층 테라스식 신전에는 여왕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 소말리아와의 교역장면 등을 담은 벽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핫쳅수트 신전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파라오들의 무덤인 ‘왕가의 계곡’이 나온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들 정도로 메마른 계곡과 황량한 바위산. 도굴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런 험지를 안식처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파라오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바람대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덤 속에 가득한 화려한 벽화는 절대권력의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무덤의 주인은 그 자리에 없다. 그들은 이제 카이로의 박물관에서 몇 푼짜리 구경거리가 되어 가난한 후손들의 관광수입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역사의 아이러니다.

무덤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파라오의 가난한 후손들은 몇 푼의 돈만 쥐어주면 그림설명까지 해주며 촬영을 묵인했다. 그들에게는 죽은 파라오의 무덤을 지키는 것보다 당장의 생계가 훨씬 더 급한 문제일 것이다.

빛 바랜 ‘문명의 발상지’

시내로 돌아와 접한 거리에서는 현실의 이집트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에게서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무게였다. 룩소르 시내에 꽂혀 있는 ‘문명의 발상지’라는 푯말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현실 속의 룩소르였다. 도시에는 찬란한 과거의 영광과 현실의 고단함이 시간을 뛰어넘어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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