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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계획도시를 가다 ①|호주 캔버라

지역통합에 성공한 행정수도의 모범

  • 글: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지역통합에 성공한 행정수도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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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하나에서 열까지 치밀한 계획 하에 만들어진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다. 깨끗하다. 환경친화적이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하다.
  •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도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다.
지역통합에 성공한  행정수도의 모범

캔버라 전경. 가까이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기준으로 방사형 도로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 관청과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천도(遷都)는 중요한 정치 사회적 사건이다.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창건하고 국가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울 때 천도를 강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상한 각오로 행정수도 이전을 약속했다. 정부는 5월부터 새 행정수도 부지를 물색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할 계획이다. ‘신동아’는 다른 나라의 행정수도와 계획도시들을 찾아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고, 반면교사로 삼을 시행착오는 무엇인지를 집중 점검해본다. (편집자)

밤이 오면 캔버라는 더 적막하다. 밤 8시, 서울이라면 퇴근길 시민과 밤 약속 나서는 사람들로 북적일 시간이지만 캔버라의 도심에선 인적을 찾아볼 수 없다. 노천 카페에서 반주를 겸해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간혹 보일 뿐, 도심은 한적하기만 하다. 인적이 드무니 밤길도 어둡다.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사는 도시인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캔버라는 어엿한 호주의 수도다. 호주의 행정수도로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90년이나 됐다.

행정수도 캔버라의 탄생과정은 어쩌면 새 행정수도를 만들려는 우리 현실과 비슷하다. 호주는 7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시드니가 주도(州都)인 뉴사우스웨일스주와 멜버른이 주도인 빅토리아주를 중심으로 확장돼 오늘날 7개의 주로 성장했다.

7개의 주로 연방국가를 구성하면서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그 과정에서 뉴사우스웨일스와 빅토리아 등 세력이 강한 지역 주변의 주, 즉 태즈메이니아와 호주 서부의 주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 강대 주 가운데 한 곳에 수도가 들어설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당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군소 주의 문제제기로 논란 끝에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닌 제 3의 장소에 수도를 정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7개 주의 주도가 모두 해안에 위치한 까닭에 새롭게 건설할 연방수도는 내륙에 정하기로 하고 좋은 조건을 갖춘 땅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발견한 땅이 캔버라였다.

지역통합의 상징 캔버라

즉 캔버라는 지역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어부지리로 호주의 수도가 되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의 배경에도 지역 통합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의 신수도 건설 경험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캔버라의 등장은 호주 전체로도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호주 사람들은 “캔버라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호주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캔버라가 있음으로써 이질적 대륙국가인 호주가 통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행정수도의 등장이 기존 도시를 위축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캔버라 건설과정의 특징이다. 시드니는 지금도 명실상부한 호주의 상업적 수도다. 멜버른도 큰 도시이고 특히 교육기관이 잘 발달해 있다.

캔버라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로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중립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인구 350만의 시드니와 320만의 멜버른 등 주변의 거대도시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생력을 갖춘 새로운 도시로 성장했다.

캔버라는 철저히 계획된 도시다. 1908년 수도로 선정돼 전세계 도시공학자들을 대상으로 도시계획 공모를 거친 결과 미국인 벌리 그리핀의 작품이 새 도시의 모델로 선정됐다.

수도로 정해지기 전 캔버라는 건조한 초원지대로 모래먼지만 날리던 황량한 곳이었다. 겨울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고 여름에는 고온 건조해 사람이 살기에는 그다지 유리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 인공호수를 만들고 꾸준히 나무를 심으면서 도시의 기온 자체가 바뀌어갔다. 지금은 연평균 기온이 13℃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쾌적한 곳이 되었다. 동서로 흐르는 몰롱글로강을 이용해 만든 인공호수(벌리그리핀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모양의 광장과 환상(環狀)·방사선·바둑판 모양의 도로가 질서정연하게 배열돼 있다.

벌리그리핀 호수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연방정부 의사당과 각 관청이 있고, 북쪽에는 교육기관과 시청사 지구 및 그 배후에 상업지구가 발달해 있다. 캔버라의 중심지는 반경 5km 이내에 집중돼 있는데, 큰 건물들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주택가가 발달해 있다. 모든 건물은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통제된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에 듬성듬성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도 이런 계획과 통제 때문이다.

도심의 주택가 외에도 캔버라 외곽에는 주거형 위성도시들이 발달해 있는데 이들 위성도시는 철저히 주택과 주거를 뒷받침하는 상업지구로만 구성돼 있다. ‘캔버런(캔버라 사람)’들이 나름의 문화와 여흥을 즐기는 곳도 바로 이 주택지구다. 저녁시간 도심은 텅 비지만 캔버런들은 이곳 간이 상점에서 술도 마시고 파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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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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