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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는 왜 실패했나

막오른 ‘힘의 정치’, 무너진 주권평등 원리

  • 번역·정리: 이남희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irun@donga.com

유엔 안보리는 왜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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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전쟁의 패자는 둘이다. 하나는 지금도 생사가 불분명한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며, 또 하나는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다. 전쟁의 합법성 여부를 심판해온 세계유일 기구인 유엔 안보리는 지금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는 세계 질서의 일대 재편을 예고하는 일이다.
  • 유엔 안보리의 변화는 북핵 문제로 들끓고 있는 한반도에도 심대한 파장을 미치는 사안이다. 미국 터프스대학 마이클 J 글레논 교수(국제정치학)가 미 외교협의회에서 발간되는 격월간지 ‘Foreign Affairs’ 5·6월호에 기고한 유엔 안보리 관련 논문의 주요 내용을 긴급 발췌해 싣는다.
  • 글레논 교수의 논문은 유엔 안보리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의 유엔 안보리 상황과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평이다(편집자).
유엔 안보리는 왜 실패했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장 크리스티안 수상은 “야전 텐트가 완전히 쓰러졌다”고 말하며 국제연맹의 설립을 선언했다. ‘인류의 위대한 수레’가 다시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국제법 체계를 향한 큰 흐름이 진행되는 듯 보였다. 1945년 국제연맹은 더욱 강한 ‘국제연합(유엔)’ 체제로 대체됐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유엔을 “인류의 고귀한 열망을 충족시켜 줄 열쇠”라며 환호했다. 세계는 다시 한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초 인류의 수레는 제동이 걸리며 멈춰서고 말았다.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결렬되고, 유엔은 더 이상 자신의 법률로 무력 사용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수년동안 이 수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력 사용에 관한 규정은 유엔헌장에 명시돼 있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이 버텨내기엔 힘의 논리가 너무 강했다. 2003년까지 무력 사용에 관여한 국가들은 ‘무력사용이 적법한 것이냐’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신 ‘무력사용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인가’에 주된 관심을 두었다.

국제 안보시스템의 종말은 일찌감치 찾아왔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2002년 9월12일 유엔 총회에서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바그다드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엔이 동조하지 않을 경우 혼자서라도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주 후인 10월25일,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것임을 천명했다. 부시는 다시 한번 “유엔 안보리가 전쟁 참여를 거절해도 미국은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안보리가 사담 후세인을 무장해제시킬 의지가 없다면, 또 후세인이 스스로 무장해제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직접 나서 후세인을 무장 해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격렬한 논쟁 끝에 안보리는 ‘결의안 144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부시의 주장에 대응했다. 이 결의안은 이전 결의안들을 위반한 이라크를 위한 것이었다. 안보리는 새로운 공식 감찰체제를 수립하고 이라크가 무장해제하지 않을 경우 초래될 ‘심각한 결과’에 대해 한 번 더 경고했지만 이 결의안은 무력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 행정부는 안보리로 돌아올 것임을 약속했다.

결의안 1441호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개인적 승리였다. 그는 미 정부가 거대 정치자금을 유엔에 투입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국제적인 후원을 얻으려 힘겹게 외교적인 싸움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감찰시스템의 효과와 이라크의 협조 정도에 대한 의심은 커졌다. 2003년 1월21일 파월은 스스로 “사찰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2월5일 유엔으로 돌아가 이라크가 여전히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에대해 프랑스와 독일은 더 많은 압력을 가하며 대응했다. 동맹들 사이의 긴장은 고조됐고, 18개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증서에 서명하면서 분열은 심화됐다.

2003년 2월, 유엔의 분열 시작

2월14일 사찰단은 11주간 이라크를 살펴본 후 안전보장이사회로 돌아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열흘 후인 2월24일 미국, 영국, 스페인은 유엔헌장 7장(평화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 부분)에 근거해 안보리의 결정을 공포했다. 이라크가 결의안 1441호를 지킬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는 이라크에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악관은 크게 당황했다. 2월28일 아리 플레셔 공보장관은 “미국의 목적은 단순히 이라크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 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집중적 로비를 벌였다. 3월5일 프랑스와 러시아는 후세인에 대항하는 무력 사용을 용인하는 일련의 결정을 막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다음 날 중국도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은 타협을 권고했으나,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서로 일치할 수 없었다. 국제 평화와 안정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서 안보리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라크 문제 해결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유엔은 비효율적 논쟁공동체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안보리의 존재는 오랜 기간 숨겨져 왔다. 문제는 ‘제2의 걸프전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유엔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형상으로 세계의 역학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단순히 이라크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단일 체제가 부상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무력사용에 있어 문화적인 충돌과 국가간 상이한 태도는 안보리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안보리는 평화로운 시대엔 불완전하나마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압박이 존재하는 현재 안보리는 무능한 기구로 판명됐다. 그 원인은 어떤 한 국가에 있는 게 아니다. 유엔의 실패는 거대하고 냉혹한 진보의 결말이자 국제 시스템의 진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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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정리: 이남희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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