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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가난 퇴치에 서방선진국 적극 나서야

아프리카정치학회장 룩 신준 교수와의 대화

  • 글: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에이즈·가난 퇴치에 서방선진국 적극 나서야

에이즈·가난 퇴치에 서방선진국 적극 나서야

룩 신준 교수와 자리를 함께 한 김학준 사장(오른쪽)

필자는 지난 6월29일부터 7월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정치학회(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 IPSA) 제19차 세계대회에서 아프리카정치학회 회장 룩 신준(Luc Sindjoun) 교수를 만났다. 그는 1964년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태어나 카메룬의 식민본국이었던 프랑스로 유학해 1992년 파리제1대학교에서 국제정치경제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그 대학에서 교수로 발탁되어 아프리카의 정치와 국제관계를 강의하다가 1999년에 귀국해 야운데제2대학교 교수가 되어 오늘날까지 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그 사이 ‘아프리카의 정치적 동학(動學)’ ‘아프리카 국제관계의 사회학’ 등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아프리카를 침략한 백인들이 총칼로써 흑인 원주민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착취하고 살육했던가를 상기시켰다. 그는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지배가 비록 형태는 달라졌지만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인들 그리고 그들의 부유한 서방선진국들은 참회와 속죄의 의미에서도 아프리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프리카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그는 에이즈의 예방과 치료를 꼽았다. 에이즈가 만연해 평균수명이 줄어들고 있으며, 에이즈 감염을 피하기 위해 10세 이하의 소녀들이나 심지어 한두 살바기 영아들을 성폭행하는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큰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그는 무엇보다 수준 높은 에이즈 전문병원을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들에 세우는 일이 긴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침 오는 7월29일에 더반의 내이털대학교(University of Natal) 넬슨 만델라 의대(Nelson Mandela Medical School)에 국제적 수준의 에이즈 전문연구소가 문을 연다. 이 병원은 미국의 자선사업가 도리스 듀크(Doris Duke)의 기부금으로 세워지는데, 신준 회장은 이 연구소의 개소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자선사업가들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 병원, 학교, 복지시설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집권세력의 탐욕과 권력욕

아프리카가 직면한 그 다음의 과제로 그는 가난과 굶주림의 퇴치를 꼽았다. 특정한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서방세계의 부유한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오늘날 아프리카가 직면한 문제들의 원인과 해법을 밖에서만 찾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의 집권자들과 집권세력들이 보여준 탐욕과 권력욕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 그들이 국부를 독점하거나 과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세와 결탁해 해외로 빼돌린 탓에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 또 그들이 장기집권을 위해 강압통치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면서, 그 나라들에서 민주화가 빠르고 폭넓게 진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준 교수는 자신의 정신적 지표는 간디라고 말했다. 알다시피 간디는 영국에서 변호사가 된 뒤 인도사람이 많이 살던 더반에서 민권운동을 시작했다. 백인정권의 흑백분리 차별정책에 맞서 싸워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흑인이 주인인 나라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한 만델라도 간디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노력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는 간디와 만델라의 정신이 아프리카를 민주주의와 평화의 대륙으로 만들게 되리라는 희망을 표시했다.

필자는 그와 헤어진 뒤 더반의 여러 곳들을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너무도 가난한 생활상에 가슴이 아팠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허드렛일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백인지역에 테러를 하거나 절도와 강도, 심지어 마약밀매 등의 범죄에 휩쓸리고 있었다. 가난이 범죄로 연결되는 사례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더반을 떠나면서 이 나라가 보다 더 풍요하면서도 보다 더 고르게 사는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도했다.

신동아 2003년 8월 호

글: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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