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美, 대북 군사전략 바꿨다

작전계획, 전면전 대비에서 내부 붕괴유도로 무게중심 이동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입력2003-08-21 18: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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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프전과 이라크전 통해 더욱 정교해진 作計 5027
    • 유사시 北進 主攻은 한국군 7군단과 미 3군단
    • 해병대로 2전선, 강습부대로 3전선, 특전사로 4전선 형성
    • 일본을 후방기지로 활용키로 한 작계 5027-96
    • 5027-98부터는 김정일 정권 붕괴가 목표
    • 북핵 시설 초정밀 공습하기 위한 OPLAN 5026
    • 작전계획보다 더 중요한 ‘개념계획’ 5028의 비밀
    • 김정일 정권 붕괴 이후 대비한 작전계획 5029
    • 최신 작전계획 5030은 북한 흔들기가 목적
    美, 대북 군사전략 바꿨다
    지난 7월21일자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미국 태평양사령부(PACOM)가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전쟁 전(前)단계 상황에 적용되는 작전계획 5030을 만들었으나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5030의 핵심은 태평양사령관이 통수권자(대통령)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북한의 제한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북한 군부의 동요를 유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저강도 작전”을 구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사시 한국 방어를 책임진 최고 사령부는 한미연합사(CFC)다. 한미연합사가 한반도의 전면전에 대비해 작전계획 5027을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런데 왜 한미연합사와 별개 부대인 미국의 태평양사령부는 5030이라는 작전계획을 만드는 것일까.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보도 내용을 전한 국내 언론은 미군은 5030과 5027 외에도 5026과 5028, 5029 등 도합 다섯 개의 계획을 준비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섯 개의 계획은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작전계획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의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작전계획의 세부 내용은 1급 군사 기밀이라 기꺼이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2차 북핵위기의 파고가 높아지는 지금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예측는 데 있어 작전계획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작전계획을 이해하면 한반도 안보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이해는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보다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이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설사 지하 핵실험까지 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다음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 준다.

    작전계획은 매우 비밀스러운 것 같지만 상당부분이 globalsecurity.org나 fas.org 혹은 defenselink.mil 등의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의 자료는 전문용어와 약자가 난무하는 영문인 데다 너무 방대해 어렵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작전계획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로 한다.



    한국군은 한반도와 그 주변을 작전구역으로 하지만, 미군은 전세계를 책임구역으로 하는 유일한 ‘세계군’이다. 미군은 세계를 다섯 개로 나눠 육해공군과 해병대 등 모든 작전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사령부를 두었다. 태평양(아시아·태평양)·북부(북미)·남부(남미)·중부(중동)·유럽(유럽·아프리카)사령부가 바로 그것. 그리고 특수목적에 투입하기 위해 전략(戰略)·합동전력(合同戰力)·특수작전·수송의 네 개 사령부도 창설했다. 이 9대 사령부는 육해공군과 해병대 등 모든 종류의 군대를 작전통제하므로 ‘통합군사령부’라고 한다.

    미군은 필요에 따라 통합군사령부를 재편하기도 한다. 9·11테러 다음해인 2002년 10월1일, 미국은 우주사령부를 전략사령부에 통합시키고 대신 북미 지역 방어를 담당할 북부사령부(NORTHCOM)를 창설했다. 미국이 외계인과 싸운 것을 소재로 한 영화에는 종종 ‘노라드(NORAD)’로 약칭되는 ‘북미방공사령부’가 나오는데, 노라드를 거느린 통합군사령부가 바로 북부사령부이다.

    9대 통합군사령부는 유사시를 대비해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육군의 전력(戰力)사령부도 작전계획을 작성한다. 전력사령부(FOSCOM)는 유사시 전세계로 육군 부대를 투사하는데 이렇게 투사된 육군 부대는 미국과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작전을 치러야하므로 통합군이 아닌 단일군(육군) 사령부임에도 작전계획을 작성한다. 이렇게 최상급 부대가 작전계획을 작성하면 예하 부대는 그에 의거해 자기 부대의 작전계획을 만든다.



    계획을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다. 통합군사령부는 다른 사령부의 작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제한된 자원과 병력을 동원해 이길 수 있는 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따라서 한 사령부에서 만든 계획은 다른 사령부에서 작성한 계획과 대비해 현실성이 있는지 검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계획을 잘 분류해놓는 것이 중요한데, 미군은 에서처럼 각 사령부 별로 분류번호를 할당해놓았다.

    한반도에 적용되는 작전계획은 모두 5로 시작하므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작전계획은 태평양사령부에서 작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작전계획인 5027은 태평양사령부가 아닌 한미연합사에서 만든다. 한미연합사와 태평양사는 어떤 관계이기에 5027을 한미연합사에서 만드는 것인가. 해답은 주한미군의 변천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미 8군은 한국 육군의 1·2·3군과 같은 육군의 작전사령부이다. 미 8군은 1950년 6·25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왔는데 곧 모든 미군을 대표하는 주한미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 그리고 한국군까지도 작전통제하는 ‘최고 사령부’가 되었다. 한·미 양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 등 모든 작전 부대를 통제하는 일종의 통합군사령부가 된 것이다.

    1974년 탄생한 작전계획 5027

    그러나 전체 미군 차원에서 보면 8군은 태평양사령부 예하에 있는 육군의 작전부대일 뿐이다. 1974년 이러한 지위를 갖고 있는 8군은 태평양사령부의 명령을 받아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5027이었다. 작전계획은 영어로 Operation Plan이라 ‘OPLAN’으로 약칭된다. 이 작전계획은 1974년에 만들어졌기에 ‘작전계획 5027-74’, 혹은 ‘OPLAN 5027-74’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유엔에서는 한국에 있는 유엔사 해체 문제가 심도 있게 거론되었다. 그러자 불안을 느낀 한국은 미국과 논의해 1978년 11월7일 한국군과 미국군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최고 사령부(통합군사령부)로 한미연합사를 만들었다. 그후 8군은 ‘최고 사령부’ 기능을 연합사에 넘겨주고 육군 사령부로 되돌아갔다. 이때 8군이 만든 작전계획은 그대로 연합사에 넘겨졌기에 5027은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이 되었다.

    작전계획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보여주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은 ‘둘도 없는’ 혈맹이지만 작전계획은 각자가 작성한다. 그러나 한국군과 미군은 한미연합사라고 하는 ‘단일 사령부’를 만들었으니 함께 작전계획을 만들고 함께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한미연합사는 변화된 실정에 맞춰 작전계획을 개정하게 되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작전계획 5027-94이다. 이후 연합사는 미국의 관례에 따라 2년마다 작전계획을 개정했는데 한국군 장교들은 그때마다 참여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전면전은 국가 총동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 모든 분야를 점검하고 기획하는 방대한 사업이 된다. 이러한 일을 하려면 먼저 기획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군에서는 신설된 기획관리참모부가 ‘전통의 서열 1위’인 인사참모부를 누르고 최선임 부서가 되었다. 전투발전단이라는 부서도 생겨났다.

    작전계획 5027은 미군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할까. 종종 언론은 ‘미국은 한반도와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양쪽 전쟁에서 모두 이길 수 있는 전력을 보유키로 했다’며 ‘이를 “윈-윈 전략”이라고 한다’라고 보도한다.

    유사시 정해놓은 목표에 따라 전쟁을 치르는 구역을 ‘전구(戰區, Theater)’라고 하는데, 미군은 한반도와 중동을 가장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요 전구(Main Theater)’로 지정해놓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전면전이 주요전구전쟁(MTW: Main Theater War)인데, 한반도의 전면전은 ‘동쪽의 주요전구전쟁(MTW-east)’, 중동의 전면전은 ‘서쪽의 주요전구전쟁(MTW-west)’으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MTW-east(동쪽의 주요전구전쟁)에 대비해 만들어둔 것이 바로 작전계획 5027인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전계획 5027은 중동 전쟁 덕분에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미군의 통합군 사령부는 중부사(CENTCOM)인데 중부사가 수립한 작전계획은 1002와 1003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탄생한 것이 OPLAN 1002인데 그 탄생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팔레비왕이 이끌던 1970년대의 이란은 미국으로부터 F-15 전투기를 공급받을 정도로 유력한 친미국가였다. 그런데 1979년 팔레비왕이 실각해 망명하고, 엄격한 회교율법을 따른 ‘강경파’ 호메이니가 새 지도자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반미국가로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 소련이 전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로써 소련이 중동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유사시 중동으로 파견할 ‘신속배치 합동부대’를 창설했다. 이 부대가 발전해 1983년 1월1일 중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에 부대를 설치할 곳이 없었기에 플로리다주 탐파의 맥딜 공군기지 안에 중부군사령부를 두었다. 따라서 중부사가 중동에서 작전하려면 중부사를 포함한 모든 전투부대가 중동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한편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 호메이니의 이란과 길고 긴 전쟁에 들어갔다. 이로써 중동의 불안이 계속되자 미군은 유사시 중부사를 비롯한 전투부대를 어떻게 중동에 ‘수송’할 것인가란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다. 1987년 미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하나의 통합군사령부인 수송사령부(TRANSCOM)를 창설했다.

    이 시기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이 이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반미국가이긴 하지만 ‘석유부국’인 이란이 아프간처럼 소련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이에 미군은 중부사에게 ‘미국에 있는 병력을 이동시켜 이란을 방어할 것’에 대한 작전계획을 수립케 했는데 그것이 바로 OPLAN 1002-88이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이듬해 호메이니가 사망했다.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공산국가가 연쇄적으로 붕괴하고 1990년에는 소련마저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로써 중부사는 이란 방어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았으나 이라크가 일으킨 새로운 위기로 인해 긴장하게 되었다.

    1989년부터 후세인의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때문에 중부사는 이란을 향했던 ‘안테나’를 이라크로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이라크의 위협이 위험한 정도라고 판단해 1990년 봄 쿠웨이트 방어를 주내용으로 하는 OPLAN 1002-90 제1판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흡한 것이 많아 그해 6월 제2판을 내놓았는데, 두 달 후인 8월2일 이라크가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 등장시킨 걸프전

    이로써 OPLAN 1002-90은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므로, 중부사는 또다시 수정에 들어가 그해 10월 1002-90의 제3판을 내놓았다. 제3판에서 주목할 것은 미국에 있는 각종 부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는 계획인 ‘시차별 부대 전개 제원(TPFDD: 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이었다. 이것이 만들어짐에 따라 그해 겨울 미군은 본토에 있는 부대를 큰 혼란 없이 사우디 아라비아 등 인접국으로 옮길 수 있었다.

    부대 이동이 끝나자 미국은 1991년 1월17일부터 대대적으로 이라크군을 공격해 2월28일 이라크군을 쿠웨이트 밖으로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걸프전). 중부사는 걸프전의 목표를 쿠웨이트로 진격한 이라크군을 패퇴시키는 것으로 한정하였으므로 이라크 국경 안으로 쫓겨 간 이라크군을 끝까지 추격하지는 않았다.

    당시 미군은 패전국 이라크에서 동유럽에서와 같은 봉기가 일어나 후세인 정권이 몰락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끄떡없이 권좌를 지켰고 오히려 독재를 강화했다. 그제서야 중부사는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1992년 8월 이라크 영공 내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이라크군 전투기가 있으면 미군기를 띄워 이라크군 시설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했다.

    그로 인해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선상의 위기가 계속되자 중부사는 아라비아반도 방어작전으로 규정된 OPLAN 1002를 2년마다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해 나갔다. 이러한 개정을 통해 시차별 부대전개제원은 보다 정교해져, 신속억제방안(FDO: Flexible Deterrence Option)과 전투력증강(FMP: Force Module Package) 등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신속억제방안(FDO)은 전쟁 위기가 높아지는 초기에 취하는 것으로 적국에 경제봉쇄나 외교적 압력을 넣고 감시와 정찰용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방안으로는 모두 150개 항목이 마련되었는데, 위기가 높지 않은 초기에 취하는 선택이라 ‘소프트’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도 적국이 위협을 증가시키면 항모 전투단을 비롯해 ‘초전(初戰)’에 필요한 소정의 전투부대와 지원부대를 파병하는 전투력증강(FMP) 조치를 취한다. 그 후에도 적국이 공격 징후를 강화하면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TPFDD)에 따라 미리 예정해둔 증원군(모든 전투부대와 지원부대)을 파병하는 ‘하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현재와 과거를 불문하고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선(機先) 제압’이다. 기선을 제압하면 병사들은 사기가 올라 이후 작전이 원활해진다.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까지 실시했는데도 적국이 위협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공격 준비를 계속하면 미국은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최후통첩을 발하는데, 예정된 시간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적국이 전쟁을 도모한 것으로 판단하고 기선제압을 위한 선제공격에 돌입한다.

    이런 식으로 OPLAN 1002는 수정을 거듭했는데, 이러한 개선은 동쪽의 중요전구전쟁에 대비한 OPLAN 5027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OPLAN 5027-00으로 불리는 2000년판에서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이 완성되었다. 이때 미군은 한반도와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도 ‘두 전쟁 모두를 이긴다’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양쪽으로 출동할 부대를 명확히 갈라놓았다.

    미 육군은 네 개 군단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핵심은 3기갑군단과 18공정군단이다. 3기갑군단과 18공정군단은 단일군(육군) 사령부임에도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육군 전력사령부(FORSCOM)의 핵심 부대이다.

    동쪽의 주요전구(한반도)가 위태로워지면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TFPDD)에 따라 미국 육군의 대표적인 중(重)사단인 4사단과 1기병사단을 대동한 3기갑군단이 한반도로 이동한다.

    한국에는 맹호·결전 등 한국 육군의 기계화사단과 주한 미 2사단으로 구성된 강력한 기계화군단(7군단)이 있다. 따라서 한미연합사는 한미연합의 7군단과 미국에서 온 3기갑군단이라는 두 개의 창을 ‘쥐게’ 되는데, 이 군단은 적 보병사단 열 개 이상이 막아선 방어선을 거뜬히 돌파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차별 부대전개 제원이 펼쳐지면 미 공군에서는 51전투비행단을 선두로 여덟 개 이상의 전투비행단과 네 개의 폭격비행단이 한국에 온다. 이들은 한국 공군의 00개 전투비행단, 주한미 7공군 예하 2개 전투비행단과 연합해 1500대 이상의 공군기를 보유한 강력한 ‘연합공군이 된다(1500대 이상의 공군기를 보유한 연합공군은 미 공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군이 된다).

    한국 오는 증원군은 69만명

    미 해군은 한 척의 항모(키티호크)를 보유한 미 7함대에 추가로 다섯 개의 항모를 파견한다. 이로써 여섯 개 함모전단을 갖게 된 7함대는 3개 함대를 지휘하는 한국 해군작전사령부와 ‘연합해군’을 편성한다. 미 해병대는 3해병대사단을 주축으로 한 제3해병원정군을 보내 1해병대사단을 주축으로 한 한국 해병대와 ‘연합해병대사령부’를 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한국과 한반도 주변 수역에 들어와 한미연합군을 구성하게될 미군의 총병력은 지금의 한국군 총병력과 맞먹는 69만여 명이다.

    중동과 한반도 두 군데로 모두 출동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것은 네 개 폭격비행단뿐이다. 네 개 폭격비행단을 제외하고는 중동과 한반도로 중복 출동하는 부대가 없기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와 중동에서 동시에 전면전이 일어나도 이길 수 있다’(윈-윈 전략)고 주장하는 것이다.

    1991년의 걸프전에서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미국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아라비아반도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는 OPLAN 1002와 별도로 유사시 후세인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하는 ‘공격 계획’인 OPLAN 1003을 작성했다. 중부사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나 사우디를 공격하면 1002 계획으로 이라크군의 공격을 멈춰 세우고, 이어 1003 계획에 따라 이라크로 진격해 후세인을 제거한다는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난 3월20일 발발한 이라크전은 OPLAN 1003을 현실에 전개한 사례이다. 이 전쟁에서 눈여겨볼 것은 주공(主攻)과 조공(助攻) 관계이다. 중부사는 3사단에 바그다드까지 600km 이상을 진격하는 주공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제1해병대사단과 영국군부대 등을 동원해 다른 도시를 공격했다.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나눠 공격함으로써 중부사는 이라크군의 방어력을 분산시키고 단숨에 바그다드를 점령할 수 있었다.

    걸프전의 교훈에 따라 한미연합사는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때는 김정일 정권의 제거를 목표로 한다’는 개념의 새로운 작전계획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5027-98이었다. OPLAN 5027-98이 전개된다면 그 상황은 지난 3월의 이라크전과 유사할 것이다. 즉 한미연합 7군단과 미 3기갑군단을 경쟁적으로 북진시켜 그중 우세한 세력을 제1 주공으로 삼을 것이다. 동시에 한미연합해병대를 동해나 서해 중 어느 한 곳으로 상륙시켜 제2전선을 구축한다. 그리고 한국 육군의 항작사로 하여금 한 개 사단 정도를 헬기에 실어 전선 100여km 후방에 떨어뜨려(强襲작전) 제3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한미연합사의 특전부대는 보다 깊은 지역에 낙하해 제4전선을 구축할 것이다.

    이렇게 동시다발로 평양을 압박해 들어감으로써 개전 한두 달 만에 평양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정일 잔당을 추격하는 평정(平定)작전을 펼치는 것이 5027-98의 목표이다.

    일본을 후방기지로 확정한 5027-96

    중부사는 1002라는 방어계획을 만들고 이어 1003이라는 공격계획을 만들었다. 그러나 연합사는 5027-98 안에 방어와 공격 개념을 모두 집어넣었다. 그에 앞서 연합사는 작전계획 5027-96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두드러진 특징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은 일본의 기지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1993년 북한이 1차 북핵위기를 일으키고 노동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해 일본에 위협을 줌으로 인해 추가되었다.

    제네바합의로 1차 북핵위기가 가라앉은 후 미국과 일본은 미일 방위가이드라인 수정에 들어갔는데, 북한의 핵위협을 절감한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일본의 기지를 사용한다는 데 동의해 작계 5027-96에는 일본의 기지 사용이 추가되었다. 이후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 문제에 공동 대처하는 한미일 3각 공조로 나가게 되었다.

    잠시 정리해보면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은 남침한 북한군을 휴전선 이북으로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1974년 탄생했다. 그리고 1994년 ‘한국군은 계속해서 전력 증강을 해왔으므로 전면 남침하는 북한군을 휴전선 남쪽 20∼30km(일면 페바 지역)에서 저지할 것으로 본다. 한국군이 한 달여 동안 이 방어선을 유지해주면 그 사이 미군은 증원군을 보낸다. 그리고 한미연합해병대가 북한에 상륙함과 동시에 한미연합육군이 반격을 개시해 북한군을 휴전선 너머로 후퇴시키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대한다’는 내용의 5027-94가 만들어졌다.

    5027-96에서는 일본의 기지 제공 역할이 추가되었다. 북한의 생화학 무기 사용 가능성이 심각히 제기된 다음에 나온 것이 5027-98이다. 북한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면 휴전선 남쪽 20∼30km에서 방어선을 치고 있는 한국군이 위태로워지므로 연합군은 방어만 하지 않고 바로 반격에 들어가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문제작’ 5027-98이 탄생했다.

    5027-00에서는 시차별 부대전개제원(TPFDD)이 채택되었다. 9·11테러 다음에 개정작업에 들어간 5027-02에서는 테러지원 세력인 김정일 정권에 대해 선제공격하자는 방안이 제기됐으나 논란 끝에 채택되지 않았다.

    작전계획보다 더 중요한 개념계획

    전쟁은 꼭 전면전 형태로만 터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서는 휴전선 너머로 병력을 투사하는 전면전보다는 포격전이나 항공전의 형태로 긴장을 일으키는 상황이 더 자주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식의 전쟁은 너무 다양해서 시나리오를 짜낼 방도가 없다. 따라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한다’는 얼개만 세우고 나머지는 전략과 전술에 의거해 군사지식과 기지(機智)·상식 등으로 임기응변하여야 한다.

    이렇게 얼개만 세워놓은 계획을 ‘개념계획’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Concept Plan이라 CONPLAN으로 약칭한다. 한반도에 적용되는 다섯 개의 계획 중 5028이 바로 개념계획이다.

    전면전이 아닌 상태에서의 분쟁을 ‘우발(偶發)적 사건’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개념계획은 우발상황에 대비한 우발계획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우발계획은 영어로 Contingency Plan이라 똑같이 CONPLAN으로 약칭된다.

    1994년 12월1일 한국군은 미국군이 갖고 있던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다. 이로써 한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평시에는 한국군 합참의 작전통제를 받고 전시에는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의 도발을 평시 상황으로 볼 것인가 전시 상황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1996년 9월의 강릉 잠수함 사건과 1999년과 2002년 북방한계선상의 남북해군 교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군 합참이 담당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연합사를 지원하는 태평양사는 자기네 차원에서 우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1996년 이후 CONPLAN 5028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념계획은 전면전계획보다 훨씬 더 사용빈도가 높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의 비밀이 요구되고 있다.

    초정밀 공습 위한 작계 5026

    북핵 위기가 높아질 때마다 북한 핵시설을 수술하듯이 도려내는 ‘초정밀 공습(Surgical Strike)’이 거론되곤 한다. 초정밀 공습은 1981년 이스라엘 공군이 이라크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건설하고 있는 오시락 원전 공사현장을 공습해 초토화한 후 새로운 작전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제1차 북핵 위기가 높아가던 1993년 6월 미국은 영변을 비롯한 북한의 핵시설이 있는 곳을 초정밀 공습하는 계획을 작성하였다(이 계획에 따라 1994년 6월 북핵 시설 공습을 검토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송문홍 기자가 ‘신동아’ 1998년 11월호에 쓴 기사 참조).

    이 계획이 바로 또 하나의 작전계획인 5026인데, 미국은 태평양사로 하여금 이 작전계획을 작성케 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 공습에 강하게 반대한 데다 때마침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카터 전 대통령이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김일성의 말을 전해옴으로써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카터 방북 후 미국과 북한은 갈루치와 강석주를 대표로 한 회담을 열어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태평양사는 5026을 발전시켜오고 있다. 작전계획 5026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F-117 전폭기와 B-2 폭격기 대대가 사전에 한국으로 배치돼 있어야 한다. 아울러 주한미 2사단의 전력을 강화하고 키티호크함 한 척으로 편제된 7함대에 컨스털레이션함·니미츠함·칼 빈슨함(투입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등을 보내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면 태평양사는 D데이와 H아워를 정해 OPLAN 5026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올해 2월28일 미국이 태평양사가 관할하는 괌의 앤더슨 기지에 12대의 B-52H 폭격기와 12대의 B-1B 폭격기를 배치했다는 점이다. 오산에 있는 7공군도 태평양사 소속인데, 5월30일 미국은 24대의 F-15E 전폭기와 800명의 공군 요원을 오산 기지에 배치했다. 5월14일에는 군산기지에 F-117 스텔스 전폭기 여섯 대를 추가 배치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태평양사가 작전계획 5026의 전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스텔스 기능을 갖춘 대형 폭격기 B-2는 괌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B-2 스탤스 폭격기가 한반도로 작전 비행이 가능한 괌으로 이동해 온다면 이는 북한 핵시설을 도려내는 작전계획 5026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작전계획 5026이 전개되면 북한은 전면전으로 응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연합사가 작전계획 5027로 대응하면 한반도는 제2의 6·25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은 공군기의 공습과 함께 한반도 수역으로 이동해온 다수의 순양함·구축함·호위함에서 수천 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해 북한군 사령부와 장거리미사일 기지, 비행장 등을 초토화함으로써, 북한의 전면전 능력을 초전에 괴멸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미군은 파괴된 북핵시설에서 나온 핵물질의 누출 문제에 대한 대책을 검토할 정도로 이 계획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게리럭 사령관 때 만든 5029

    한편 연합사는 게리 럭 사령관 시절인 1999년 북한 정권 붕괴시를 대비해 작전계획 5029를 만들었다. 이 계획은 북한에서 소요나 내란이 일어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고 그에 따라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작전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초정밀 공습을 목표로 한 5026과 연계될 수도 있다. 즉 초정밀 공습 이후 북한에서 분란이 일어나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면 그때는 5029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최초 작성 시기를 기준으로 나열해 보면, 전면전에 대비한 5027이 가장 먼저(1974년)수립되었고, 이어 초정밀 공습을 위한 작전계획 5026(1993년)→우발계획 5028(1996년)→북방정권 붕괴 후를 대비한 5029(1999년)의 순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낮은 상황에 대비한 계획이 작성됐다는 점이다.

    전면전에 대비한 계획을 계속 발전시키는 한편으로 저강도 위기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3년의 식량난 이후 북한군의 전쟁 지속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다. 둘째로는 북한군에 대한 한미연합군의 조기경보 능력과 감시·정찰 능력의 현저한 개선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조기경보 능력 등이 개선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면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여기서 전쟁에 관한 잘못된 상식 하나를 수정해 보기로 한다. 언뜻 보기에 전쟁은 매우 큰 분노에 차서 마구 덤비는 ‘비이성적인 행동’의 연속인 것 같다. 하지만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를 다투는 너무도 중요한 싸움이라, 지도자는 ‘살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 후세인처럼 군인들에게는 “용감하게 싸우라”고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경호는 최고로 강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쟁은 죽기 위해 치르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치러지는 속성을 띠므로 상당한 ‘합리성’을 갖는다.

    미국이 최후통첩을 발했을 때 후세인이 죽기를 각오하고 선제공격을 못한 것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따라서 전략가들은 “최근 북한이 2차 북핵위기를 조성하며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말뿐이다. 1차 북핵위기 때는 미국과 양자회담을 여는 데 성공했으나 지금 한미연합군은 그러한 위협을 공갈로 판단할 수 있기에 결국 북한은 다자회담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입으로는 협박을 거듭하지만 행동으로 보면 밀리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라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서두에서 언급한 작전계획 5030을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 공군이 유류가 부족해 전투기를 거의 띄우지 않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EP-3 같은 해군 정찰기나 RC-135 따위의 공군 정찰기를 영공 가까이 접근시키면 북한은 전투기를 띄워 이를 쫓아내거나 감시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북한은 소중한 ‘기름’을 소모한다.

    지난 7월31일 미국 육군은 새로이 창설한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 신속배치여단 또는 스트라이커 여단 전투단) 한 개 소대를 한국에 보내 지형 숙지 훈련을 벌였다. 6월 초에는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있는 미 제3해병대 원정군 예하의 한 개 해병대 대대를 초고속 수송선(HSV)에 태워 한국에 전개시켰다. 이렇게 미군이 예고 없이 부대를 전개하면 북한군에는 ‘비상’이 걸려 각 부대는 담당 작전지역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전투식량과 연료를 소모한다.

    작전계획 5030은 이렇게 북한을 ‘집적거려’ 북한이 보유한 얼마 안 되는 자원을 소진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군 같으면 이러한 자원 소모는 ‘눈꼽’도 안 되는 것이지만 북한군에게는 ‘피를 쏟는’ 출혈이다. 미군의 집적거림을 묵과하면 미군은 북한 전역을 세밀히 정찰해 갈 것이므로 방관할 수도 없다. 미군이 5030으로 살짝살짝 약을 올리고 북한이 여기에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면 북한 군부는 마침내 불만을 품고 봉기할 수도 있다.

    미군이 전면전에 대비한 5027을 감추고 북한 내분을 유도하는 5030을 내건 것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김정일 정권 교체(regime change)작업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이 작전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외견상’ 일전불사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기경보 능력이 뛰어난 한국군과 미군이 신속억제방안(FDO)이나 전투력증강(FMP), 시차별 부대전개제원(TPFDD)을 택하지 않는다면 이는 북한의 허풍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미연합군이 저강도 분쟁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사태가 한국과 미국에 유리하다는 증거다. 작전계획을 이해하면 한반도 문제가 훨씬 더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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