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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평화체제,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실패했다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의 심층 분석

  • 번역·정리: 이남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irun@donga.com

파괴된 평화체제,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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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평화체제,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실패했다

1994년 6월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 주석궁에서 김일성 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CNN촬영)

이와 함께 제네바합의는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여기서 잠시 그 원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2조. 양측은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정상화를 추구한다.

1) 합의 후 3개월 내 양측은 통신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무역 및 투자제한을 완화시켜 나간다.

2) 양측은 전문가급 협의를 통해 영사 및 여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

3) 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지면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시킨다.



3조. 양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1)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해 공식보장한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측은 상대방이 합의조건을 이행하는지 각 단계마다 검증하기로 합의했다. 이 조약은 2003년 혹은 그 이후까지 유효한 것이었다. 경수로 기본시설이 완공되면, 북한은 보관중이던 흑연로를 해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에 폐기장소를 공개하게 돼 있었다.

경수로 건설과 관련해 미국은 거의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았다. 의회의 반대를 이유로 미국은 50억달러의 건설비용 중 3000만달러만을 부담했고, 나머지는 한국과 일본의 몫으로 돌아갔다. 반면 미국이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하는 직간접 비용은 연간 170억~420억달러 규모. 이것만 살펴봐도 제네바합의의 긍정적인 측면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북한의 위협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외교조치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극적인 대북화해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제네바합의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8년, 매우 중요했던 한 해

1998년 2월 오랫동안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사에서 “북한에 적극적인 화해와 협력 정책을 펼칠 것”이라며 햇볕정책에 대한 구상을 밝힌 그는 평양이 미국, 일본과도 우호관계를 맺도록 유도하겠노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행보는 대북 화해정책을 꺼린 전임 대통령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그는 곧 북한에 대량의 식량을 지원했고 남북 기업간 사업 교류의 장벽도 제거했다. 1998년 방미 중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을 미국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추구해온 독일식 ‘흡수통일’ 방안을 거부하고, 대신 점진적인 연방제 통일 방안을 지향했다. 이 시기 남북의 두 정부는 연방제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해가기에 이른다.

이렇듯 김대통령의 실험이 진행된 1999년까지의 1년 동안, 평양은 변화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을 바라보는 북한의 태도 또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이 남한으로부터 손을 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국제 역학관계(특히 중국과 일본)를 조율하는 중재기능을 위해서라면, 미국이 한반도에 남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무렵 미 공화당은 또 다른 포인트에 주목하게 된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National Missile Defense)’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어줄 이른바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그것이었다. 1998년 8월말, 흥분한 언론들은 일제히 “북한이 일본 상공에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이 미사일이 온 일본을 초토화하기라도 한 듯 엄청난 공황상태가 도쿄를 덮쳤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이 1993년 5월부터 1998년 8월까지 미사일을 발사한 일이 없다는 사실은 간단히 잊혀졌다.

‘김정일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도널드 럼스펠드를 자극했다. 럼스펠드는 곧 미사일 방어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이끌게 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은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작은 핵탄두를 생산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핵탄두 대신 화학·생물학 물질을 싣는다 해도 미국 영토에 닿을 만한 속력이나 사정거리가 나오지 않았고, 미사일이 대기에 진입할 때 발생하는 열을 막을 기술도 없었다. 미사일 발사지역은 직원들을 위한 막사 하나 없는 척박한 공간이었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이 무렵 북한은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고 판단하고 인내심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1998년 북한 외무성 장관은 해리슨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군 장성들과 원자력계 지도자들은 핵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신네들 (미국)이 신의를 보여주지 않으면, 결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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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정리: 이남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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