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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12)|쿠르드족

독립국 열망 불태워온 생화학무기 희생자

  • 글: 홍순남 한국외대 교수·중동 정치학 hongsn@hufs.ac.kr

독립국 열망 불태워온 생화학무기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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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 한번도 독립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는 쿠르드족. 터키, 이란, 이라크 등 5개국에 흩어져 살면서 온갖 핍박을 받아온 이들의 독립, 저항운동사는 처절하기만 하다. 이라크전쟁 후 이라크 과도통치위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저항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독립국 열망 불태워온 생화학무기 희생자
쿠르드족은 이란계 백인혈통을 지닌 산악인들이다.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에 나타난 흔적에 따르면 쿠르드족은 기원전 2000년경의 쿠르다(Kurda)족이나 기원전 1000년경의 쿠르티에(Kurtie)족의 후손으로 보인다. 목축과 유목생활을 해온 이들은 현재까지 독립국가를 이뤄본 적이 없다. 쿠르드족은 크고 작은 형태의 독립적인 부족들이 지역마다 흩어져 봉건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통일된 정치체제에서 생활한 것은 이슬람권 아랍왕조인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직접통치 시대뿐이다.

쿠르드족은 산악민족답게 성격이 거칠고 자존심이 강하여 타민족의 통치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폐쇄적인 산악환경으로 인해 봉건주의적인 명령계통, 즉 지주나 부족장의 명령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편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쿠르드족은 좁은 의미에서의 자치를 누리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강대국에 완전히 복속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쿠르드족의 영토는 쿠르디스탄(Kurdistan)으로 알려진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 지중해, 흑해, 카스피해, 페르시아만의 중앙에 위치한 자그로스 산맥지대가 쿠르드족의 영토다. 쿠르디스탄 지역은 32만㎢로 프랑스 또는 미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를 합친 정도의 크기다. 동쪽으로는 이란, 서쪽으로는 터키, 남쪽으로는 이라크와 접하고 있다. 과거에 쿠르드족은 북쪽으로는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인, 북동쪽으로는 아제르인, 남동쪽으로는 루르인,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멘인들과 맞대고 있었다.

터키에서 쿠르드족의 땅은 수도인 앙카라 남쪽인 아나톨리아 반도 중부지역에 위치한 산악지대이며 마르딘 등 8개주가 이 지역에 속한다. 그 외 우르파 등 7개 주에도 쿠르드인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터키 내 쿠르드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했던 땅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간의 갈등 원인이 되고 있다.

쿠르드족의 언어, 문화, 역사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만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언어 하나만 봐도 쿠르디스탄 지역의 북부는 쿠르만지(Kurmanji)어를 사용하며 남부지역은 소라니(Sorani)어를 사용한다. 북서부는 자자(Zaza) 언어권이다. 남부 몇몇 지역은 구라니(Gurani)어를 사용한다.

쿠르드족은 다시 150개 이상의 작은 부족으로 나뉘며, 그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방언을 가지고 있다. 지역마다 각기 문화도 다르다. 그러니 쿠르드족의 정체성을 찾기란 힘든 일이다. 쿠르드인 자신조차도 혼란스러운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5개국 접경이 된 쿠르드 지역

그러나 종교적으로 보면 쿠르드족의 99% 이상은 수니 무슬림이다. 극히 일부인 3만여 명이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 10만명 이상의 아시리아 기독교인, 4만∼5만명의 예지드파(쿠르드 전통 종교)가 있을 뿐이다.

아랍인과 같이 쿠르드인들도 전통적인 쿠란학교와 모스크에서 아랍어와 종교교육을 받는다. 쿠르드 종교지도자인 물라는 종교교육을 통해 쿠르드인들에게 전통문화교육을 시키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이들 물라로 하여금 쿠르드족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터키에서 시작한 쿠르드 땅은 이라크와 이란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인 모술과 키르쿠크 등은 쿠르드족의 땅이다. 이란 북서부에 걸쳐 있는 쿠르디스탄과 마하바드도 쿠르드 땅이다.

쿠르드족은 터키에 43%, 이란에 31%, 이라크에 18%, 시리아에 6%, 구소련에 2%가 거주하고 있다. 1990년 통계를 기준으로 2000년의 쿠르드족 분포를 추산한다면 터키 국민의 24%인 1500만명, 이란 국민의 12.4%인 800만명, 이라크 국민의 23.5%인 600만명, 시리아 국민의 9.2%인 150만명, 구소련의 0.34%인 50만명 정도다. 이처럼 쿠르드 지역은 5개국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에게 있어 국경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그저 거주 국가에서 반정부 저항운동을 하다 도망갈 때 정부군이 추격할 수 없는 경계선이라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이로 인해 종종 국가간 주권침해라는 정치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터키는 1991년 걸프전 이후쿠르드 반군을 소탕하기 위하여 이라크 영내에 깊숙이 들어가서 군사작전을 했다. 당시 후세인 정권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조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항의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한편으로 후세인 정권도 미국의 지원 하에 쿠르드족이 봉기를 일으키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터키가 자국 영토에 들어와 쿠르드족 소탕작전을 벌여도 묵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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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순남 한국외대 교수·중동 정치학 hongs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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