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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의 종횡무진 中國탐험 ①

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중국의 江南을 봐야 대륙의 얼굴이 보인다

  • 대담: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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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는 이번호부터 황의봉 전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과 국내 최고 중국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현장경험과 연구성과 등을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거대 중국’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김준엽(金俊燁) 사회과학원 이사장에게는 독립운동가 역사학자 교육자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일제 때인 1944년 1월 일본 게이오대학 재학중 학병에 끌려갔다가 중국의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일군을 탈출, 천신만고 끝에 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에 투신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김 이사장은 광복 후 이범석 장군 등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임정 요인과 애국지사들의 귀국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홀로 중국에 남아 난징(南京)대학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뒤 지금껏 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또 교육자로서 김준엽은 고려대 교수와 총장, 아주대 재단이사장 등 근 반세기를 후진양성에 매진해왔다. 이밖에도 김 이사장은 이범석 초대총리와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정권으로부터 장관 국무총리 등을 거듭 제의받았으나 이를 모두 뿌리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준엽 이사장과 중국의 인연을 짧은 지면에서 다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중국대륙에서의 파란만장한 독립운동과 학업과정은 생략하더라도 고려대에서의 중국근대사 강의 33년, 중국학회의 발기인 부회장 회장 역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시절의 공산권(주로 중공) 연구 및 학술활동 등 한국의 초창기 중국관련 연구의 산파역을 도맡아 왔다.

김 이사장의 중국전문가로서의 면모는 그가 고려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오히려 더욱 돋보이는 느낌이다. 한중간 교류가 재개되면서 1988년 무려 39년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이래 그의 중국방문은 지금까지 48회에 달하고 있다. 한 해 평균 세 차례 이상 중국나들이를 하고 있는 셈. 1920년 생이니까 새해 들어 84세가 되는데, 도대체 김 이사장은 무슨 일로 노구를 이끌고 중국을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는 것일까.

항저우 임정청사도 곧 복원

-지난 11월 하순에도 중국을 다녀오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번엔 무슨 일로 다녀오신 것입니까.

“상하이(上海)에 있던 우리 임시정부는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뒤인 1932년 5월에 항저우(杭州)로 옮겨가 1935년 11월까지 그곳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전장(鎭江)으로 옮겼습니다. 항저우를 방문한 것은 바로 그때의 임정청사 복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지요.”

-항저우 임정청사 자리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그리고 언제쯤이면 또 하나의 임정청사가 복원될 수 있을까요.

“그 동안 임정청사 자리에서 살고 있던 주민을 시에서 내보냈어요. 중국도 이제는 사유재산 보호문제가 간단치 않아서 보상금을 다 주어야만 집을 비우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규모는 상하이 임정청사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데, 진열실을 만들어야 하므로 옆집도 비우게 해야 할 겁니다. 항저우시측은 일단 2004년 6월까지 복원사업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고 하니까 멀지 않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를 고심해야 했다. 김 이사장과 중국의 접촉면이 워낙 넓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요즘 김 이사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내 한국 역사유적지 발굴 및 복원사업 그리고 여기에 얽힌 한중교류사의 뒷이야기들과 한중간 학술교류사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과거 독립운동 시절의 활약상은 흥미진진하기는 하나 이미 김 이사장의 저서 ‘長征’ 시리즈와 그의 학병동지인 고 장준하(張俊河) 선생의 ‘돌베개’를 통해 자세히 소개됐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왕래가 재개되자마자 착수하신 일 가운데 하나가 유구한 한중관계의 상징물들을 찾아 복원하고 기념비를 세우는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짧은 기간이나마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만큼 상하이와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 청사의 복원을 첫 사업으로 정했습니다. 1988년 말에 상하이에서 임정청사를 찾았는데, 임정이 시내 여러 곳을 전전했기 때문에 모두 복원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1926년에서 1932년까지 가장 오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봉창(李奉昌)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지휘했던 마당로(馬當路) 306농(弄) 4호의 건물이라도 먼저 복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복구공사에 앞서 이런 유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중국당국에 인식시켜 문화재로 지정받는 일이 시급했어요. 그래야만 도시계획 등으로 철거되는 일이 없고 앞으로 복구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전조치라고 보고 중국당국자를 설득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89년에는 충칭의 치싱강(七星崗) 롄화츠(蓮花池)에 있는 임정청사도 방문하여 충칭시 당국에 똑같은 설득작업을 폈습니다. 그후 우리 정부나 광복회 그리고 큰 기업가들이 노력을 기울여 상하이와 충칭의 임정청사가 복원돼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상하이 충칭과 더불어 우리 임시정부가 활약한 3대 기지의 하나가 항저우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04년 중에는 한국독립기념관이 준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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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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