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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당 예비선거 돌풍의 주역 존 케리 연구

몽상가인가 현실주의자인가, 집념 강한 ‘두 얼굴의 사나이’

  • 글: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美 민주당 예비선거 돌풍의 주역 존 케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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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주변 사람들은 그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경쟁에는 반사적으로 뛰어든다. 어떤 물을 만나든 누구보다 앞서 먼저 발을 담근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빨리 가기를 좋아한다. 케리 집안의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케리의 눈을 가린 채 길 찾는 법을 가르쳤다. 결국 어린 케리는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 나오는 방법을 배웠다. 케리가 애완용으로 기르는 잉꼬를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내인지 알 수 있다. 그의 애완용 앵무새는 3개 국어를 한다. ‘헬로우’ 한마디이긴 하지만 어쨌든 케리의 앵무새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케리는 외교관으로 베를린에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유럽에서 살았다. 그는 스위스의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다. 열한 살 때였다. 스위스에서 집이 있던 베를린까지 가려면 11세 소년 케리는 혼자 먼 여행을 해야 했다. 취리히에서 기차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서 동베를린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군용 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열한 살짜리 아이가 혼자 그런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감과 자존심이 키워진다.” 케리의 말이다.

열두 살 때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를 거쳐 노르웨이까지 간 다음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셔우드 숲 속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학교를 다니다 미국 뉴햄프셔로 돌아와 세인트 폴 기숙학교 8학년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8년 사이에 초등학교를 일곱 번이나 옮겨다닌 후였다.

그는 모험가다. ‘꿈을 쫓아다니는 사내’라는 소리도 듣는다. 쉬지 않고 움직이고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케리는 이런 평에 대해 “내가 하는 일은 내 능력 안에서 완벽하게 컨트롤된다”고 말한다.



“자극만 쫓아다니지는 않는다. 명상 그 이상의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곧 쉬는 것이고, 내가 내 자신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즐겁게, 즐겁게, 또 즐겁게.”

억만장자 부인과 재혼

그는 늘 도전한다. 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성취욕과 실현욕이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받기 위한 예비선거전을 준비하면서도 그는 스페인 고전 기타 음악을 배우기 위해 짬짬이, 그러나 집착하다시피 기타에 매달렸다.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케리의 부인 테레사(Teresa Heinz Kerry)는 그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1995년에 결혼했다. 둘 다 재혼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한동안 미 정가에 큰 화제였다. 재력 있는 여성 활동가와 상원의원의 만남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에너지가 넘치고 야망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둘의 결혼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케리는 스물일곱 살 때 줄리아 손과 첫 결혼을 했다. 12년 결혼 생활 끝에 둘은 헤어졌다. 케리가 39세 때였다. 첫 부인은 정치가 그를 집어삼켰다고 했다. 케리가 지금의 부인인 테레사를 만난 것은 1990년이다. 당시 테레사의 남편이던 존 하인즈 상원의원이 테레사를 케리에게 소개시켰다. 테레사와 케리 둘 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테레사는 미 정가에서 케리 못지않게 유명세를 타는 여걸이다.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명예 박사학위만 해도 10개나 된다. 일찌감치 억만장자 소리를 들어왔거니와 자선사업가이며 여성운동가이고 환경운동가다.

그녀는 모잠비크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와 스위스에서 공부한 후 유엔에서 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1966년 존 하인즈 상원의원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1991년 결혼 25주년 기념식을 치른 뒤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상원의원 남편과 사별한 2년 후 그녀는 케리와 데이트를 시작했고 2년 후인 1995년 5월 케리의 두 딸과 자신의 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자기 도전과 성취욕이 넘치는 케리지만 정작 정치인으로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명료한 맛이 없다고도 한다. 구시대 진보주의자 소리도 듣지만 신세대 민주당원 소리도 듣는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로 반전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사람이 부시의 이라크전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는 부시 대통령이 외교에서 실패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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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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