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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의 중국 진짜부자 이야기(상)

중국 상인의 꽃 저장상인, 꽃 중의 꽃 닝보상인

귀신 지갑도 여는 말솜씨로 중국 경제 삼키다

  • 글: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법학 khb@khu.ac.kr

중국 상인의 꽃 저장상인, 꽃 중의 꽃 닝보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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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가 발표한 2003년 중국 최고의 갑부는 딩레이(丁磊ㆍ1972년생, 포털사이트 ‘왕이(網易)’의 설립자로 개인 재산 약 1조3000억원)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상인 서열 1위인 저장성, 그중에서도 닝보(寧波) 출신이다. 중국 100대 부자 중 저장성 출신이 18명으로 광둥성을 제치고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저장성 중에서도 닝보 출신은 딩레이를 비롯, 6명이나 된다. 고려시대 때 닝보항은 벽란도와 자웅을 겨루던 세계적인 항구였으며 닝보상인은 옛날 우리나라 개성상인과 비견되는 중국 최고의 상인이다. 중국의 27개 성과 자치구 중 저장성은 인구와 면적, 평야와 산악의 비율, 섬의 수 등 여러 면에서 한국과 가장 비슷하고 중국 투자적지로 날이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으나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상인의 꽃 저장상인과 꽃 중의 꽃이라 불리는 닝보상인, ‘중국의 유대인’ 윈저우상인을 2회에 걸쳐 집중 소개한다(편집자).]

중국 상인의 꽃 저장상인, 꽃 중의 꽃 닝보상인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라 할 만큼 수려한 항저우의 명승지 서호(西湖).

청나라 건륭황제가 저장(浙江)지방을 순유하고 있었다. 황제는 높은 곳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수백 척의 범선이 돛을 달고 남북으로 왕래하고 있었다. 황제가 저장의 순무(巡撫)에게 물었다.“저 수백 척의 범선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고?”순무가 대답했다.“제 눈에는 한 척만 보입니다.”“어째서 그런가?”“폐하, 실재는 한 척뿐입니다. ‘이익’이라는 이름의 배 한 척입니다.”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중국의 성은 산둥성. 하지만 가장 닮은 성은 저장성이다. 약 10만㎢의 면적과 4500만 인구, 산악과 평야의 7대3 구성, 바다에 2000여개의 섬이 있는 것이 그렇다. 저장성은 장쑤성 광둥성과 더불어 중국에서 제일 잘사는 성이기도 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뭐니뭐니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상인 서열 1위인 저장상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창조와 해방, 개혁과 개방, 실사구시 등의 상업정신을 가진 저장상인들은 두뇌가 명석하고 행동이 민첩하며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도 겸비한 사람들로, 그야말로 경영에 능수능란하다. 눈썰미가 좋아 돈 될 만한 장삿거리를 잘 찾아내고, 일단 기회를 잡으면 기막힌 상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중국 전역에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저장상인의 고급 인맥, 높은 저축률과 풍부한 자금동원력은 저장성 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용감한 자는 바다로 간다. 무역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지혜는 용기와 결합해야 빛이 난다. 바다는 순박한 농부에겐 말할 것도 없고 노련한 어부에게도 변화무쌍하고 간교하며 이상야릇하다. 바다에서 상인은 술수와 눈치와 재치를 배운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살다보면 자신의 역량도 무한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다는 상인에게 열린 ‘물의 땅’이며 포위당해 닫힌 육지를 초탈하려는 용기를 촉발케도 한다. 비옥한 논밭과 평원은 인간을 토지에 속박시키지만 드넓고 변화무쌍한 바다는 인류로 하여금 이윤을 추구하게 하고 상업에 종사하게 선동한다. 바다는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낳아 기르듯 상업을 낳아 기르는 것 같다. 바다는 유동한다. 그 유동의 씨앗을 바다에 주입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상업의 발전이다.

저장사람 치고 거지 없다

범려와 서시의 후예인 저장성 사람들은 일찍부터 독특한 학술문화를 만들어왔다. 황종희나 루쉰 등 매우 창조적인 학자와 사상가도 이곳 출신이다. 저장성은 또한 인구유동과 각종 문화의 교류로 발전을 이룩해왔다. 지역문화 중원문화 서방문화가 이곳에 혼거하며 병존해왔다. 오늘날의 활달한 저장문화는 이러한 요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저장사람은 결코 수구적이지 않다. 오히려 항상 넓은 가슴과 근면한 창조로 현실을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저장사람은 이론적으로 실리와 실효를 추구할 뿐 아니라 행동으로라도 결코 헛된 설교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과 거래를 할 예정이라면 무엇보다 그들의 이러한 상업인문 전통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저장성은 예부터 “쌀밥에 생선국 먹는 곳(魚米之鄕)”이라 불렸을 만큼 살기 좋은 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저장은 중국의 다른 성에 비해 토지는 좁고 인구는 많은 편이다. 주요산업은 농업이며, 자연자원은 부족한 편인데다가 공업기초가 부실했다.

개혁개방 이전인 1978년만 해도 저장성의 1인당 평균주민소득은 410위안으로 전국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2년에는 27개 성(자치구 포함) 중 전국 1위에 올랐다. 무엇이 이처럼 저장성을 급성장시킨 것일까. 광둥이나 푸젠처럼 경제특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중앙의 개혁개방정책에 의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토록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한 장의 백지 위에는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말은 아마 개혁개방 초기 저장경제의 발전을 나타내는 말로 아주 적합할 것 같다. 그동안 여러 가지 원인으로 저장의 대형 국영기업의 비중은 크지 않았으며 계획경제의 통제력도 약한 편이었다.

바로 이 점이 저장사람들로 하여금 경직된 고정관념으로부터 쉽게 벗어나도록 했다. 계획경제체제하의 ‘기다리고 기대고 요구하기’만 하는 의뢰심을 벗어던지고 시장경제 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확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고 싶었던 저장상인은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불어오자 시장의 큰 바다로 뛰어들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선봉대가 됐다.

그들은 자금도 없고, 시장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빈곤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고생이나 더럽고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원의 허난 상인들과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과 식구를 먹여 살린다. 예부터 천시되어오던 시계수리공, 구두닦이, 두부장수, 열쇠장사, 봉제공, 솜을 타는 직종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한다. 그래서 저장사람 치고 거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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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법학 khb@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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