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강효백의 중국 진짜부자 이야기(하)

장사의 至尊 닝보방,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손님을 부모처럼 모시는 상술 낯 두꺼운 배짱이 최대 무기

  • 글: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법학 khb@khu.ac.kr

장사의 至尊 닝보방,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1/6
  • 중국 저장성 동부에 있는 닝보(寧波)는 ‘장사의 신(神)’들이 사는 고장이다. 그들은 항저우상인과 정반대로 고향에 죽치고 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그래서 드넓은 외지로 나가 창업을 하고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벌어들인다. 저장성 남부에는 상업 게릴라 원저우(溫州)상인들이 버티고 있다. 감귤처럼 새콤달콤한 화술을 구사하는 그들은 감정보다 계산을 앞세우는 협상술로 중국 상권을 장악했다.
장사의 至尊 닝보방,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노키아, 모토로라를 제치고 중국 최대 휴대전화 생산업체로 떠오른 닝보버드의 공장.

지난호에 이어 닝보방이 어떻게 중국상인의 꽃 중의 꽃이 됐는지 9가지 특징과 장점을 꼽아보려 한다. 이는 단순히 닝보방의 상술에 감탄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국시장을 공략할 때 반드시 알아둬야 할 지침으로 삼고자 함이다.

첫째, 닝보상인은 돈 벌 기회를 잘 잡는다. 그들은 경영방침을 조정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조정 시기를 기막히게 포착한다. 바로 이 장점 하나만 가지고도 닝보상인은 치열한 상업전쟁에서 능히 승리를 거두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낡을 틀에 매달리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과감하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경영책략과 프로젝트를 조절한다. 닝보상인의 융통성과 변화에 능한 천성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일례로 해방 전 닝보 출신의 거상 위챠칭(虞洽卿)은 상하이의 번화가가 북쪽으로 뻗어나갈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는 당시 황량한 갯벌이었던 바오산루(寶山路)와 하이닝루(海寧路)의 광대한 벌판을 사들였다. 같이 간 부동산 전문업자들조차 속으로는 위챠칭을 비웃었을 정도였다. 누구도 그곳이 개발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상하이 정부는 그 외딴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일대의 지가는 급속히 치솟았고 위챠칭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쓸어 담았다.

닝보상인은 눈으로 육방(六方)을 보고 귀로 팔방(八方)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시기와 형세를 정확히 판단하는 재주로 그들은 중국상인의 사철 푸르른 적송(赤松)으로 우뚝 섰다. 그들은 오늘날 유대상인을 비롯한 세계적인 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닝보상인과 거래할 때에는 먼저 그들의 속성을 살펴보고 그들 못지않게 민첩하고 교묘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한 닝보시장을 파악해야 한다. 시장은 상인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곳이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정국의 변동, 자연재해, 국제정치정세, 거시경제 상황 등 객관적인 환경의 변화와 동종업자간 경쟁, 라이벌의 경영수단 변화, 소비자 수요의 변화 등 직·간접적으로 사업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잘 읽어야만 한다. 적시에 변화로써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변하면 나도 변하고, 남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변함으로써 그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닝보시장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며 그에 맞게 경영책략을 조정하되 때로는 선수를 쳐서 상대방을 제압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중국 상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다.

신용과 성실, 외향적 성격

둘째, 닝보상인은 고객관리의 명수다. 손님이 누구더냐? 그들에게 “손님은 왕이 아니다. 손님은 옷과 먹을 것을 주는 부모(衣食父母)”이다. 오직 손님만이 나의 상술과 돈 버는 ‘오페라’에 감동하여 물건과 서비스를 사간다. 손님에게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나의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으니 손님은 나를 길러주는 부모나 매한가지다. 친부모는 나를 낳고 길러주셨지만 내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아름답고 착한 아내를 맞게 하고 가업을 일으켜주신 분은 손님이다. 이처럼 친부모 못지않게 고마운 손님을 받들고 공경함은 상인이기 이전에 인간이 지녀야 할 근본 도리가 아니겠는가!

1949년 중화민국 성립 이후 중앙정부가 내건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나 서구에서 흔히 하는 ‘손님을 왕처럼 모시자’는 말은 사실 중국의 전통문화와는 맞지 않는다. 하물며 손님을 부모처럼 모셔온 닝보상인들에게는 허무맹랑한 구호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중국의 여타 지방에서는 목청만 높이고 실행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닝보상인들은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 터였다.

셋째, 닝보상인은 신용을 철저히 지키고 성실하다. 신용과 성실은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동서양 문화를 골고루 받아들이고 저축해온 닝보상인들은 상업거래에서 신용과 성실의 원칙을 잘 지킴으로써 고객의 호감을 사고 칭송을 받아왔다. 닝보 출신으로 ‘철물점 대왕(五金大王)’으로 일컬어지는 예청중(葉澄衷)이 성공한 것도 신용 때문이었다.

예청중은 상하이 황푸강에서 나룻배를 저으면서 받은 뱃삯과 손님에게 군것질과 잡화를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년 뱃사공이었다. 어느 날 한 영국상인이 그의 나룻배를 타고 황푸강 동편, 즉 푸둥으로 건너갔는데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그만 돈가방을 배에 놓고 내렸다. 예청중은 배 안에서 가방을 발견하고는 방금 내린 손님에게 돌려주려 했으나 손님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예청중이 가방을 열어보니 수천 달러와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와 어음 등 그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거액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가방 소유자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예청중은 그날 장사를 포기하고 나루터에서 코 크고 눈 푸른 서양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1/6
글: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법학 khb@khu.ac.kr
목록 닫기

장사의 至尊 닝보방,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