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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탄탄한 교육투자, 부패 없는 정부가 세계 1위 국가 경쟁력 견인

  • 글: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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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는 공직사회의 투명성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다.
  • 반하넨 총리는 그 원인을 “행정과 정책결정과정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제도에 바탕을 둔 안정된 민주주의, 독립적이고 효율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법부와 독립적인 언론, 공직자들의 부패 방지에 관한 국제적 협약들의 준수”로 꼽았다.
‘모범 선진국’ 핀란드의 성공학

핀란드는 의회정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인권 존중 등의 서구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해왔다.
사진은 수도 헬싱키 전경.

필자는 지난 2월5일부터 13일까지 설 연휴를 이용해 핀란드 정부의 초청으로 핀란드를 방문했다. 핀란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반도의 역사와 닮은 데가 있다.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았듯 핀란드 역시 스웨덴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 또는 간섭을 받았다는 점, 특히 한반도의 북부가 소련의 지배를 받았듯 핀란드 역시 소련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다는 점, 한반도가 분단국가가 됐듯 핀란드는 국토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함으로써 사실상 ‘분단국가’가 됐다는 점 등이 그 보기들이다.

핀란드는 이처럼 여러 차례 역사적 시련을 겪었지만,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많은 나라가 선망하는 선진적 민주복지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필자는 ‘무엇이 핀란드를 이렇게 모범적인 나라로 발전시켰는가’라는 물음을 놓고 마티 타넬리 반하넨(Matti Taneli Vanhanen) 핀란드 국무총리를 비롯해, 주로 이 나라의 입법부, 행정부, 언론계, 학계의 지도자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 내용들 가운데 몇몇 부분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선 핀란드의 현황을 살펴보자. 핀란드는 면적이 약 33만8000㎢로, 한반도의 약 1.5배에 해당한다. 면적의 약 75%가 삼림이어서 제재업과 제지업이 발달했다. 전국에 약 19만개의 호수들이 산재해 ‘호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면적으로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나라지만 인구는 약 520만명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수도는 헬싱키.

핀란드는 1155년부터 스웨덴의 일부가 됐으나 스웨덴은 1809년에 핀란드를 제정 러시아에 넘겼다. 하지만 제정 러시아는 직접 통치하는 대신 ‘자치적 대공국’의 지위를 부여했다. 1917년 제정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됐다. 핀란드는 이 기회를 활용해 그 해 12월6일에 독립을 선언했으며, 1919년에 헌법을 채택하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공화국으로 새출발했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고 핀란드는 거국적으로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1940년에 패전했다. 전쟁은 1941년에 다시 일어나 1944년까지 계속됐다. 이 전쟁에서도 핀란드는 끈질기게 항전해 소련군의 핀란드 점령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독립과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부지방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하고 ‘친소적’ 노선을 걷는다는 조건으로 종전을 성사시켰다.

동서냉전 시대에 ‘친소적’ 노선을 걸으면서도, 핀란드는 신중하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외교를 전개해 서방세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하여 1952년에 헬싱키에 제15회 하계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고, 1955년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으며, 1956년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협의체인 ‘노르딕 카운슬(Nordic Council)’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외교적 성취는 1975년 여름에 돋보이게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30주년에 즈음해 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유럽안전협력회의(CSCE)를 헬싱키에서 개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때 채택된 ‘헬싱키 선언’은 뒷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을 붕괴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헬싱키 과정(過程)’이란 말은 국제정치학의 교과서에 고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으며, 핀란드는 더 이상 ‘친소적’ 국가가 아니라 서방 민주주의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볼 때 핀란드가 1995년에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핀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소련의 계승국인 러시아연방과 국경을 접한 지정학적 입장을 고려할 때, 군사적 비동맹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협력 관계는 유지하고 있고, 국제연합이 파견하는 평화유지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

핀란드는 대외적으로 친서방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 의회정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인권 존중 등을 뼈대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의 원칙들에 충실해왔다. 우선 거의 완벽한 수준의 의회민주주의를 운영해왔다. 다당제와 단원제를 중심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를 운영하면서도 6년 임기의, 그리고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을 직선함으로써 안정된 행정부를 보장하고 있다. 정치학자들이 핀란드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도, 대통령제도 아닌 이원집정부제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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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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