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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유엔 안보리 가던 날

대북봉쇄 나선 日 해상보안청 선박의 긴급호출 “시키시마호 피격! 반복한다, 시키시마호 피격!”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북핵, 유엔 안보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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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2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한의 핵 개발 관련 증거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증거를 미국이 직접 나서서 유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다른 국가들의 시선을 의식해 IAEA를 경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비공개적으로 IAEA 사무국에 관련 증거를 넘겨 이를 분석하게 하고, IAEA 사무총장이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면, 이사회는 새로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안보리 상정을 의결하는 방식이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미국의 ‘결심’이다. 분명한 것은 이 결심은 백악관에서 결정할 만한 비중을 가진 사안이라는 점이다. 백악관이 최종적으로 6자회담을 포기하고 북핵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기(위해 IAEA를 경유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전에 한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에 알려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장면 2] 어둠 속의 브리핑

철컥철컥. 회의장의 두터운 목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불이 꺼지고 거대한 스크린에 영사기에서 나온 빛이 투사됐다. 손에 잡힐 듯 세밀한 위성사진. 도대체 몇 장이나 있는 것일까.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촬영한 위성사진은 하루 단위로 찍은 것도 있었다. 트럭 바퀴자국까지 선명했다.

이어지는 화면은 알 수 없는 글자들로 이뤄진 문서들이었다. 브리핑을 담당한 IAEA 사무국 분석요원은 북한이 파키스탄의 A. Q. 칸 박사를 통해 리비아에 6불화우라늄을 수출했음을 입증하는 계좌 추적 문서라고 설명했다. 담담하게 설명하는 분석요원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자꾸 밀어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 증거물을 어디서, 어떻게 입수했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회의실 안에 있는 이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대가 아니지.’ 백 박사는 라이팅 펜을 집어들었다. 이번 비공개 이사회에는 나라별로 두 사람만 참석할 수 있도록 인원을 제한돼 있었다. 백 박사는 핵공학과 관련된 기술조언을 해달라는 강동혁 대사의 요청을 받고 나란히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회의에 참석하기 전 강 대사가 본국에서 받은 지시는 간결했다.

‘명시적으로 찬반 의사를 표명하지는 말 것. 되도록 많은 정보를 끌어내고 브리핑 정보 가운데 모순이 있으면 파고들 것.’

강 대사는 백 박사에게 기술적으로 이상한 점이 있거나 추가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브리핑을 받는 동안 질문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터였다.

브리핑이 후반부로 접어들자 강 대사는 문득 당혹감을 느꼈다. 앞에서 제기된 증거들은 영변에서 보관 중이던 폐연료봉 8000개, 다시 말해 이미 IAEA에서 다뤄진 바 있는 플루토늄 관련 사항이었다. 북한이 2003년 초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봉인을 뜯은 것만으로도 안보리 회부가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브리핑은 우라늄 농축 시도에 관한 사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북한 ‘남천강 무역회사’가 원심분리기용으로 추정되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도입하려 시도한 사실, 칸 박사의 네트워크를 경유한 원심분리기 샘플 도입…. 대부분 윤곽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증거물을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IAEA는 우라늄까지 포괄해 의제로 다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십중팔구 증거를 건네준 미국의 뜻이었다. 이는 미국이 이 사안을 ‘매우 강력한 수준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강 대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북핵문제가 우선 IAEA를 경유할 경우 첫 외교무대는 유엔안보리가 있는 뉴욕이 아니라 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이 된다. 특정 사안의 안보리 회부를 결정하려면 IAEA는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 정기이사회는 매년 9월 열리는 총회 직후와 분기마다 한 차례씩 총 다섯 차례 개최되지만, 사안에 따라 언제든 특별이사회를 열 수 있다.

IAEA 사무국이 미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바탕으로 새로 이사회에 안건을 올리면, 1차적으로 사무국 전문요원들이 정보를 분석해 평가 없이 사실관계만을 종합한 보고서를 사무총장 명의로 이사회에 제출해야 한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당시 IAEA 이사회는 한 이사국에 두 명으로 참가인원을 제한한 채 철저히 비공개로 열렸다.

이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기는가 하는 점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미국이 수집한 북한 핵개발 관련 자료들이 최초로 공식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IAEA가 2003년 이미 지적한 북한의 NPT 탈퇴와 안전조치협정 위반 외에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추가 증거가 사무국 보고서에 포함될 경우, 이는 미국이 안보리에서 매우 강력한 수준의 대북 대응조치를 채택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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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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