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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⑤

사쓰마 도자기의 핏줄 심수관家 (하)

“한세상 어느 때나 꼭 같은 그날, 고수레 고수레 자나깨나 잊지 않으리…”

  • 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사쓰마 도자기의 핏줄 심수관家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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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에서 가져간 흙과 유약으로 구워 ‘오로지 불만’ 일본 불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자기 ‘히바카리’.
  • 400년이 흐른 뒤 선친의 유언을 따라 14대 심수관은 선조들의 고향 남원에서 불을 채화해 ‘오로지 불만’ 조선의 불로 도자기를 굽는다. 아들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에게 이어지는 조선 출신 도공들의 끝없는 예술혼, 그 두 번째 이야기.
사쓰마 도자기의 핏줄 심수관家 (하)

400년 전 선조들이 조선으로부터 끌려와 처음 닿았던 사쓰마의 시마비라 해안에 서서 한국쪽을 바라보고 있는 14대 심수관.

심수관(沈壽官) 14대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의 쓰린 추억을 잊지 못한다.

나에시로가와(苗代川)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60리나 떨어진 가고시마 제2중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다. 이 시골 중학교는 억센 아이들의 주먹자랑 때문에 학교폭력이 말도 못했다. 전국시대 시마즈(島津)번의 강병책(强兵策)이 남긴 영향인지, 아이들의 첫 학기는 싸움으로 시작해 학기가 끝날 무렵 강약 서열이 정해지고 나서야 잠잠해지곤 했다.

심수관의 학급에 몇 녀석이 들어와 말했다.

“이 반에 조선놈이 있지? 손 들어봐!”

신입생 명부에서 석 자짜리 조선 이름을 보고 온 것이었다. 열 명쯤 되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옥상으로 끌려갔다. 그러곤 실신할 때까지 얻어맞았다. 깨어났을 때는 혼자였다.

학교를 나와서 기차를 타고 구시키노를 지나 히가시이치키(東市來)역에서 내렸다. 2km 떨어진 집으로 터덜거리며 걸어가는데, 동구 밖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었다. 두 분은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첫 날, 꼭 같은 이지메를 당했던 것이다.

소년은 우물가에서 얼굴을 씻었다. 눈물을 감추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아버지가 수건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래, 그럴 테지” 하고 달랬다.

소년은 학교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 않냐고. 그러자 아버지는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그런 소리 말아라. 그런 근성은 개에게나 주어라. 네 핏줄에는 조선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아버지의 훈계는 계속됐다. 선조 대대로 내려온 자긍심 이야기였다.

전라도 남원성에서 납치되어온 후 계속된 피눈물나는 고생,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해 번주로부터 가고시마에 나와 살라는 명령을 받고도 ‘민족반역자 주가전(朱可全)과 이웃해서 살 수 없다’며 거절한 용기, 죽음도 각오한 그 기백이 너의 핏줄에 흐르고 있지 않으냐!

“일등을 해라. 공부도 일등, 싸움도 일등. 그러면 상대도 달라진다. 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버지는 수재였다. 가고시마 일대에서 알아주는 명문인 제7고(일본 전체의 7대 명문고 가운데 하나)를 거쳐 교토대 법학부를 나왔다. 비록 도공으로 가업을 잇는 아버지지만, 소년은 아버지의 두뇌와 실력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 ‘문무겸전(文武兼全)’이다. 싸움도 잘하는 거다. 소년은 결심했다.

그날 이후 소년은 싸움꾼이 되어, 좀 세다는 놈들을 찾아다니며 도전했다. 가고시마의 아이들은 마주 서서 오른쪽 어깨를 한번 치켜올리는 것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일단 도전을 받으면 결투를 치러야 한다. 그런 일상적인 폭력에 빠져들면서 소년은 늘 조선 핏줄과 일본 핏줄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뼈가 부서지더라도 항복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웠다 한다.

아버지의 유언

작가 시바 료타로에 대한 심수관씨의 추억은 각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심수관 도자기, 나에시로가와의 도공 신화(!)를 소설로 써서 널리 알린 ‘연출가’가 바로 시바이기 때문이다. 시바는 이후로도 심씨에게 아이디어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67년 2월12일 시바가 처음 와서 이것저것 묻고 돌아갔는데, 3월 중순께 부인과 함께 다시 왔어요. 보충 취재를 위해서였지요.”

시바의 취재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고 한다. 수첩 대신 스케치북처럼 큰 지도를 들고 다니며, 그 여백에 지렁이 달려가듯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조금씩 보충해 메모해 나가는 식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신기해보일 법도 하다.

다시 두어 달 지난 5월 하순에 시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심수관씨, 다 썼습니다.”

“뭘 쓰셨다는 겁니까?”

“당신과 나에시로가와 얘기 말입니다.”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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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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