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호주 조기유학 百態

도박, 매춘… 벼랑에 선 ‘나홀로 유학族’, ‘24시간 매니저’로 뛰는 ‘기러기 엄마’들

  • 글: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입력2005-06-27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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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홀로 유학→적응 실패→흡연, 음주, 도박, 섹스
    • 동양인 유학생 ‘왕따’ 만드는 유명 사립학교
    • “2중 언어 사용자가 영어 배우는 데 더 유리”
    • NSW주 교육청 각종 서비스 적극 활용할 만
    • 성공 유학 위해선 학생보다 부모가 더 노력해야
    • 교육은 호주 최고 수출산업…대학생 5명 중 1명은 유학생
    호주 조기유학 百態
    6월초순의 시드니는 손이 시릴 만큼 추웠다. 6년간의 긴 호주 유학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남수연(가명·22)양의 심정도 날씨만큼이나 서늘했다.

    수연이의 지난 6년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현실도피와 끝없는 탈선’이다. 굳이 유학이랄 것도 없는 길고 긴 방황의 연속이었고, 종국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실패한 유학’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이 저승에 가면 가장 심하게 추궁받는 것이 ‘시간을 낭비한 죄’라고 하는데, 수연이는 꽃다운 시절 한때를 구겨진 휴짓조각처럼 낭비했다.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를 저지른 셈이다. 또한 그 또래의 나이에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서 했다.

    유학생에서 불법체류자로

    필자는 수연이를 처음 만난 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풍문으로만 듣던 유학생의 탈선현장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간혹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어온 터여서 충격은 더욱 컸다.



    그날 밤, 필자는 서울에서 온 시인들과 어울려서 시드니의 선술집(pub)을 순례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자, 한 시인이 한국 술집으로 가자고 했다. “포도주와 맥주는 도대체 싱거워서 못 마시겠다”는 푸념과 함께.
    시드니 시내에서 한국 술집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술집에선 그날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소주 한 병만 마시고 가겠다”고 사정하며 앉는 순간, 구석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가 수연이다.

    언짢았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동안, 술집 주인은 수연이를 집에 보내려고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술에 취해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수연이의 머리 위엔 별들이 총총했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의 도산으로 수연이는 유학생에서 불법체류자로 신분이 바뀌고 말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워낙 몸에 밴 낭비벽 때문에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학생비자가 취소되기에 이른 것.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수연이가 몸을 팔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부모는 나를 시드니에 버렸다”

    아무리 정신을 다잡아도 한번 흥미를 잃고 보니 공부는 질색이었다. 사업 때문에 바쁘신 아빠는 얼굴조차 뵙기 힘들었고, 무남독녀인 나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컸던 엄마는 끊임없이 닦달하셨다. 학업성적은 바닥을 기는 데다 가끔씩 사고까지 치는 나 때문에 집안은 편할 날이 없었다.

    문제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엄마 친구들의 자녀가 대부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라 자식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엄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하셨다. 나중엔 그 스트레스 때문에 친구들 만나는 것조차 꺼리셨다.

    그 무렵 강남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조기유학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조기유학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한 줄기 햇살이었다. 하여, 나의 조기유학은 아무런 고민 없이 한순간에 결정됐다.

    엄마는 공부 못하는 딸 때문에 받는 낭패감을 떨쳐낼 수 있는 그럴 듯한 출구를 찾은 셈이고, 무엇보다 나는 공부라는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 망설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하셨다. 친구 여러 분을 집으로 초대해 하나뿐인 딸이 호주로 유학을 간다며 술을 드셨지만, 내가 호주로 떠나오던 날 김포공항에서 아빠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나의 호주 유학은 한마디로 한국이라는 경쟁사회에서의 도피였다. 주변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창피한 애물단지를 유학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바다 건너 시드니로 내동댕이쳐버린 유기(遺棄)였다.

    영어가 힘든 건 서울에서나 시드니에서나 다를 바 없었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를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한다는 건, 내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부모님뿐이었다.

    거기에다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는 시드니의 무한정한 자유는 나를 빠른 속도로 병들게 했다. 서울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술과 담배가 내 친구가 되었다.

    단지 학생비자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던 영어학교(Language School)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건전한 교제를 나누기엔 시드니는 너무 자유분방한 도시였다. 모든 게 엉망이었고 자율적인 통제가 불가능했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게 후회막급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임신이다.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부모님 모르게 서울을 다녀올 때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더는 내려설 데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나는 딱 한 번 심기일전을 결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서울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아빠의 회사가 도산했다는 것이다.

    귀국하라는 엄마의 권유를 뿌리치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나는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돈을 버는 일에는 눈곱만한 재주도 없었다. 결국 학비를 내지 못해서 학생비자가 취소됐다. 막상 불법체류자가 되고 나니 유학생 시절에 누리던 자유가 한순간에 정지됐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웠다.

    마사지 팔러에서 성매매를 시작한 건 집세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성매매를 하던 친구가 교회에 나가라고 권유했다. 울면서 참회의 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아침, 귀국을 결심했다.

    수연이는 다니던 교회의 A목사를 통해 필자에게 귀국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공항 주차장에서 만난 수연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담배만 연신 피워대는 수연이를 보면서 ‘잘못된 유학’의 끝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가요. 그나마 무참히 깨지면서 익힌 영어가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며 수연이는 공항출구를 빠져나갔다. 수연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그의 유학을 실패로 몰고 갔는지 생각해봤다.

    유학 성공의 열쇠 쥔 가디언

    1999년 15세(중2)의 나이에 혼자 호주로 유학을 떠나온 수연이는 조기유학 1세대 그룹에 속한다. 호주에서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18세 미만의 학생을 ‘조기유학생’으로 규정한다. 이 말은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대부분이 조기유학생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조기유학생은 가디언을 둬야 한다는 법적 의무조항이 있다.

    수연이의 유학 실패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가디언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유학을 주선한 유학원의 소개로 가디언을 정했지만, 호주 당국이 가디언 조건을 강화하기 전까지는 가디언의 전화번호만 겨우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를 부모의 통제권 밖으로 내몰았으니 한마디로 수연이는 ‘준비 안 된 유학’을 경험한 것이다.

    필자와 함께 수연이를 배웅한 A목사는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때운 다음, 학생 두 명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입국장 앞에 서 있었다. 수연이가 떠난 날 도착하는 조기유학생 조인성(가명·14)·인숙(가명·11) 남매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을 통해서 남매를 알게 됐다는 A목사는 잘 알고 지내는 호주인의 집으로 그들을 데려다줬다. 전직 교사 출신이라는 린 보스(51)는 여러 차례 한국유학생을 돌본 사람답게 처음 만나는 조군 남매를 편안하게 맞아줬다.

    인성·인숙 남매는 영어를 제법 잘했다. 호주 원어민 영어교사에게 2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는 남매는 “6개월 후에 시드니로 올 예정인 엄마와 합류할 때까지 린과 함께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두 아이가 짐을 푸는 동안 A목사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기유학을 온 학생들은 통상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지만, 조군 남매처럼 웬만큼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들은 바로 학교에 들어간다. 다만 학교에서 운영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클래스에 들어가 학과수업을 영어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익힐 때까지 특별 지도를 받는다.

    린은 남매의 가디언이 될 예정이다. 가디언은 유학생의 부모를 대신해 학생들을 돌보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물론 유학생 보호자로서의 결정권도 위임받는다.

    어떤 가디언을 만나냐에 따라 유학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가디언이 적극적으로 유학생의 학업성적을 체크하고 방과 후 생활을 지도해주지 않으면 나이 어린 학생들은 십중팔구 무절제한 생활에 빠지기 때문이다.”

    호주 조기유학 百態

    NSW 교육청에서 커뮤니티 공보관을 맡고 있는 한국 동포 안기화씨.

    NSW 교육청의 무료 통역서비스

    조기유학생의 실태와 성공적인 지도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교육청에서 커뮤니티 공보관을 맡고 있는 한인 동포 안기화(52)씨를 만났다. 그를 기다리면서 ‘유학생들의 메카’로 통하는 스트라스필드 광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시드니 서부와 북부로 나가는 관문인 스트라스필드는 시내와 가깝고 시드니 전역과 연결되는 전철이 다녀 한국 유학생이 많이 거주한다.

    그곳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품점, 식당, 미용실, 서점, PC방은 물론이고 만화방과 노래방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호주 사정에 어두운 유학생들이 단계적인 적응을 위해서 한번쯤 거쳐가는 곳이 됐다.

    젊은이가 많이 모이면 소란스러운 일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한국 유학생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오죽하면 전에 없던 파출소가 다 생겼을까. 광장 바로 옆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에게 요즘의 사정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스트라스필드는 한국 상황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이 흥청거리고, 해외유학의 질서가 잡히기 전까지는 이곳에도 질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경제사정이 나쁘다 보니 마구잡이식 유학은 거의 사라졌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이 호주로 건너온다. 그 때문인지 유학생 관련 사건, 사고도 현격하게 줄었다.”

    호주 조기유학 百態

    NSW주 교육청 홈페이지는 무료 통역 서비스를 갖춰 학부모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광장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선 플라타너스 나무에 호주 앵무새의 일종인 로리킷 수백 마리가 날아들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인터뷰 녹음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인근 커피숍으로 들어가서 안기화 공보관의 얘기를 들었다.

    “나는 NSW주 교육청 공무원이라 공립학교에 관한 것만 얘기할 수 있다. 사실 호주의 공립학교에 ‘성공유학의 열쇠’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유학생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다만 한국인 부모들이 이를 잘 모르고 이용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구체적인 예가 한국어 통역 서비스다. 학부모가 원하면 무료 통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전화통역 서비스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NSW주 교육청 홈페이지(www.det.nsw. edu.au)에는 호주의 교육제도가 한국어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왼쪽 하단에서 반짝거리는 태극기 문양을 클릭하면 초등학교 입학에서 대학교 졸업까지 전 과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영어와 한국어 설명으로 나온다. 또한 (02)131-450으로 전화를 걸면 무료전화통역서비스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연락을 취하고 싶다면 61-2-131-450번으로 걸어서 ‘코리언’이라고만 하면 한국인 통역이 바로 연결된다.

    통역을 통해서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나 지도교사에게 자녀의 성적, 생활태도, 진로상담 등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다. 전화통역 서비스는 학교뿐 아니라 모든 관공서와 경찰서, 병원 등이 다 포함된다.

    나는 이민자나 유학생 학부모에게 호주의 교육정책을 알리고, 학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뿐만 아니라 처음 호주에 도착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건강정보, 주택정보 등의 생활정보를 알려주는 임무를 맡고 있다. 특히 호주의 교육 시스템과 학업 평가방법, 교사들의 수업방식도 설명해줌으로써 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건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오랜 기간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성공적인 자녀교육을 위해선 부모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잘못된 교육정보에 노출돼 한국식으로 자녀를 지도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안 공보관은 “인터넷에 넘치는 왜곡된 유학정보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유익한 유학정보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왜곡 사례들을 꼽으면서 “반드시 시정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1.비싼 유명 사립학교를 공략하라

    한국인 특유의 최고 지향이 오히려 자녀를 고립시킬 수 있다. 호주 일류 사립학교의 현실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전통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특수계층의 호사를 배타적으로 누린다.

    학교는 하나의 독립된 작은 사회다. 특히 호주의 일부 계층은 몇 대씩 이어가면서 같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학생의 교우관계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친분관계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곳에 난데없이 동양인 유학생이 입학하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생일파티 초대에 빠뜨리는가 하면 스포츠클럽 가입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워낙 유학생의 숫자가 적어 유학생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2.한국 학생이 없는 지방학교로 가라

    호주로 오는 유학생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이런 얘기가 없었다. 그런데 2005년 4월 현재 1만5353명이나 되는 한국 유학생이 호주로 몰려오다 보니 어떤 학교엔 한국 유학생이 수십명이나 있다.

    호주 조기유학 百態

    최근 호주의 대학으로 세계의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일부 학부모는 한국인이 살지 않는 지방도시로 자녀를 보내기도 한다. 이 경우 유명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몇 명 안 되는 유학생을 위해서 유학생 지원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다. 더군다나 호주처럼 아동 성추행이 문제가 되는 나라에서, 의사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고립무원 상태의 지방학교에 자녀를 보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언어교육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2중 언어 사용자(bilingual)가 영어를 배우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유학생이 연령대에 맞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영어를 배우게 해야 한다.

    3. 가디언은 아무나 해도 된다

    언젠가 한국인 목사 한 분이 무려 유학생 45명의 가디언을 맡아 문제가 됐다. 지금은 가디언 제도가 강화되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사실 가디언을 제대로 하려면 한 명도 맡기 힘들다.

    우선 가디언은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 또한 학교 적응 실태를 수시로 파악해서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탈선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영어실력과 학교적응은 불가분의 함수관계에 있다.

    ‘기러기 엄마’가 골프를 친다니…

    4. 가디언이 부모를 대신할 수 있다

    나는 부모 한쪽이 동행하지 않는 조기유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이다. 아주 가까운 친척은 예외가 되겠지만, 대체로 유학기간에 사춘기를 겪는 유학생들은 부모조차 다루기 힘들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 부모들이 ‘나홀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걸 보면 선뜻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자녀를 학교에 보내놓고 골프나 즐기는 ‘기러기 엄마’들도 이해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조기유학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학생보다 부모가 더 잘해야 한다. 교육전문가에게 정확한 정보를 부지런히 얻어서 자녀들에게 숙지시키고 교사와 면담하는 것은 필수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영어가 안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호주처럼 무료 통역 서비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는 없다. 준비된 시스템을 자꾸 활용해야 당국에서도 계속 발전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라.

    시드니 서북부 지역 마스필드는 시드니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역이다. 그곳의 아담한 가옥 하나를 통째로 세내 ‘조기유학 2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가정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다.

    제주도 출신으로 친구 사이인 두 엄마를 편의상 A가정, B가정으로 나누어서 호칭하기로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에 들어갔다. 다음은 두 엄마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가족 소개를 부탁한다.

    (A가정) : “제주도 출신으로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와 2학년짜리 아들이 있다. 남편은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B가정) : “역시 제주도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둘이 있다. 남편은 제주도에서 작은 사업을 한다. 남편들은 선후배 관계다.”

    -어떤 동기로 조기유학을 결심하게 됐나.

    (A가정) : “아이들을 크게 키우고 싶다는 남편의 뜻에 따랐다. 우리 부부가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인 셈이다. 사실 호주도 거대한 섬이니까 작은 섬에서 큰 섬으로 2년 동안 옮겨온 것이다.”

    (B가정) : “지금이 적기다 싶어서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사실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친구 따라 강남(호주) 왔다.”

    -조기유학 정보는 어떻게 얻었나.

    (A가정) : “우선 인터넷 정보부터 섭렵했다. 유학원 선정이 성공의 90%를 차지한다는 생각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유학 예정지인 시드니에 본사나 지사가 있는지를 우선 체크했다.”

    (B가정) : “A가정과 거의 비슷하다. 합동작전을 펼친 것인데, 그래서 힘이 덜 들었다.”

    -사전답사를 했나. 아니면 누구에게 현지사정을 물어봤나.

    (A, B가정) : “답사하지 않았다. 역시 제주도 출신의 친구가 시드니에 살아서 그의 도움으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1년은 짧고 2년이 적당해요”

    -살림살이는 어떻게 장만했으며 셋집은 누가 얻었나.

    (A, B가정) : “셋집을 구하는 것과 공항 픽업, 학교수속 등은 전부 유학원에서 대행했다. 정착비 명목으로 180만원을 지불했는데 두 집이 나누어 부담했다. 침대나 식탁 같은 살림살이는 조기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정에서 쓰던 것을 인수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만족하나.

    (A, B가정) : “아주 만족스럽다. 우선 학교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천주교 학교인데 아담하다. 한 학년에 한 학급만 있고 학생도 25명뿐이어서 최상의 분위기에서 공부한다. 제주도에서 다니던 학교는 한 학년에 10∼12반까지 있었으며 학생수도 학급당 40명이 넘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마음에 든다고 하나. 영어로 수업받는 게 힘들 듯한데….

    (A, B가정) : “아이들 모두 좋아한다. 한국에서 원어민 과외를 받는 등 영어준비를 많이 했지만 처음 몇 달은 힘들어했다. 그러나 ESL 클래스에서 공부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제주도의 아빠와는 어떻게 연락하나.

    (A, B가정) : “전화와 메신저, 이메일 등을 이용한다. 또한 싸이월드에 사진을 자주 올려 서로 표정을 확인한다. 그러다 보니 몸만 떨어져 있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이다. 다만 아빠들이 조금 힘들어한다.”

    -조기유학 기간을 2년으로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A가정) : “1년은 너무 짧고 2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B가정) : “큰애가 중학교 입학을 위해서 추첨을 해야 한다.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에서 영어를 습득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 만족한다.”

    -학비와 생활비는 얼마나 드나.

    (A, B가정) : “학비는 1인당 1년에 1만4000호주달러(약 1120만원)를 낸다. 한몫에 납부하는 것이 힘겹지만 한국에서도 사교육비가 그 정도는 든다. 생활비는 한국과 비슷하다. 우리는 두 가정이 함께 지내기 때문에 공과금 같은 지출에서 많이 절약한다.”

    두 엄마는 “아이들이 한국의 학과목도 익혀야 하기 때문에 밤 9시까지 계속 공부한다”고 했다. 엄마들이 직접 지도하고 토요일 오전에는 1주일 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시험도 치른다고 했다.

    두 가정의 집 근처에 있는 성 앤터니 초등학교로 찾아가서 M. 우즈 교장을 만났다. 그는 “네 명의 한국 학생이 예상외로 영어를 잘한다. 다만 자기들끼리 어울려 노는 것 같아 따로따로 놀도록 지도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공부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우즈 교장은 이어서 “한국에서의 습관인지 과제를 내주면 너무 쉽게 빨리 끝낸다. 그래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하도록 일러줬다. 특히 하나의 주제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훌륭하게 완성했다”고 놀라워했다.

    이 학교엔 한국 유학생 4명이 공부하고 있는데 모두 두 가정의 자녀들이다. 우즈 교장이 부임하기 전에는 유학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여러 명 있었는데 결과가 실망스러웠다”고 우즈 교장은 말했다.

    조기유학 선구자들의 성공시대

    은주연(25)양은 명문 NSW대학교에서 음악과 일본어를 전공하고 지금은 시드니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되려면 교육학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양은 1995년 고등학교 재학 때 동생과 함께 호주로 조기유학을 감행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형제가 그와 동생뿐이어서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는 조기유학이 드물 때여서 친구들은 은양을 부러워하면서도 걱정했다. 그러나 은양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관철했다.

    학비 부담 때문에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은양은 대학교 3학년 때 영주권을 받아 학비부담을 덜었다. 피아노 전공이라서 레슨과 웨딩연주 등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뤘다. 호주는 대학졸업자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추세다.

    NSW대학에서 회계와 금융을 공부한 안정우(26)군은 1996년 뉴질랜드로 조기유학을 왔다가 호주의 대학에 진학한 ‘징검다리 유학파’다. 대학 1학년 때인 2001년에 육군에 입대해서 만기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다.

    안군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해외유학을 꿈꿨지만 아버지가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그 꿈을 접어야 할 처지였다.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때, 형과 그 중에서 한 명만 유학을 보내기로 집안에서 결정했다. 형이 유학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안군이 친척이 살던 뉴질랜드로 떠났는데, 무엇보다 인종차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나 당시엔 동양인이 많지 않아서 심할 땐 버스를 못 탄 경우도 있었다.

    안군은 뉴질랜드에 깊은 정이 들어 그곳에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작은 나라의 한계가 느껴져 호주의 명문인 NSW대학을 선택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한 안군은 앞으로 싱가포르의 금융회사에서 인턴으로 경력을 쌓은 후 국제금융인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호주 조기유학 百態

    호주 조기유학에 성공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꿈과 의지를 가졌다는 것. NSW대학교에서 만난 신기현 교수, 한정우군, 은주현양, 정청송군, 서충석 교수(왼쪽부터).

    NSW대학 전기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정청송(24)군은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중국 룽징(龍井)중학교 출신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호주로 유학을 온 옌볜 동포 호주유학생 1호다.

    정군은 교회에서 열린 성경퀴즈대회 챔피언이 되던 날, 마침 선교차 룽징을 방문 했던 호주 한인 동포 목사의 주선으로 유학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중국 국적으로 호주에 유학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유학비자를 받는 데 무려 4년이 걸렸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1년 평균 2만 호주달러(중국돈으로 약 12만위안)나 드는 유학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노동자의 월급이 600위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돈이다. 그는 아버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 돈벌이와 학업을 병행하며 8년을 보냈다.

    그는 룽징중학교 시절 배운 영어로 호주에 입국한 지 2개월 만에 콩코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호주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한 다음, 호주의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중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할 예정이다.

    위의 세 학생이 대학과정을 공부한 NSW대학은 시드니대학과 함께 호주의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데 유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로도 유명하다. 그건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학교 당국이 유학생을 위한 각종 혜택을 주면서 유학생 유치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인지 한국인 교수도 18명이나 된다.

    호주는 1950년대에 일명 ‘콜롬보 계획’이라는 인도적인 교육정책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들에게 무료 교육을 해 남북문제를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후 1970년대 초에는 노동당 출신인 고프 휘틀럼 총리가 집권하며 호주에서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 적도 있다. 거기엔 유학생도 포함돼 학비 한푼 안 내고 호주 유학생활을 영위하던 꿈 같은 시절도 있었다.

    학비 랭킹 세계 5위

    그러나 지금은 교육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수출상품으로 개발돼 호주의 대학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유학생이다. 호주가 유학을 이용해서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나온다. 대학 교육비도 일본, 뉴질랜드, 영국, 미국에 이어 상위 5위에 오를 정도로 비싸다.



    사정이 이런데도 영어 정복을 꿈꾸며 호주로 건너오는 한국인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학부모 세 명 중 한 명이 조기유학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단다. 반면에 조기유학의 성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썩 좋지 않다는 뉴스도 전해온다.

    ‘나홀로 유학’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인 수연이를 보내던 날도 조기유학을 위해서 시드니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학생을 많이 목격했다. 대부분 엄마와 함께 들어왔지만 혼자 들어오는 아이도 많았다. 그날 아침의 시드니 공항은 잔뜩 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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