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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⑧

6년 학력의 대문호 김달수 上

넝마주이 망태 속에 피워낸 민족문학의 꽃

  •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6년 학력의 대문호 김달수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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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 살 때 일본으로 건너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간신히 연명했다.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간 아버지와 형, 잡역부를 전전하던 어머니, ‘람보’가 돼야 했던 자신…. 하지만 넝마 속에 버려진 책은 그의 인생을 밝히는 등불이 됐다. 가난한 식민지 문학소년은 재일 한국인 문학의 제1인자, 나아가 일본의 대문호로 성장했다. 그가 정식으로 학교를 다닌 기간은 6년에 불과했다.
6년 학력의 대문호 김달수 上
작가 김달수(金達壽). 파란만장의 인생이다. 일본 인명사전에 나오는 그의 별난 이력부터 보자.

“1919년 한국 경상남도 창원 출생. 1997년 사망. 열 살 때 일본에 건너와 야학, 고학을 거쳐 일본대학 예술과를 졸업. 정식으로 학교에 다닌 기간은 통산 6년. 대학입시에서 학력 자격이 미달해 사촌형의 성적표를 떼어다 변조해 들어갔다.

가정이 빈한해 넝마주이, 건전지공장 공원, 토목공사장 인부, 부두노동자, 목욕탕 심부름꾼, 가내공장 입주공원, 공사장 토사운반차 밀기, 영화관의 영사기사 등을 하면서 문학을 향한 꿈을 키웠다. 독학에 필요한 책과 자료는 거의 다 넝마업자에게서 얻은 것이다.

재일교포 사회의 잡지 ‘민주조선’의 편집과 창작을 통해 민족운동에 참가. 1948년 장편소설 ‘후예의 거리’를 발표. 이후 대표작 ‘현해탄’ ‘태백산맥’을 쓰고, 소설 ‘고국 사람’ ‘박달(朴達)의 재판’ ‘밀항자’를 발표했다. 민족문학 문화운동에 관한 평론도 집필, 재일 한국인 문학의 제1인자로 떠올랐다.

그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일본에 소개하는 고대사 연구가이기도 하다. 일본 각지에 남은 한국 문화 이입의 흔적을 찾아 취재 기록한 ‘일본 속의 한국문화’가 있다. 그는 한일 고대사와 문화교류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고대 한일관계사 입문’ ‘일본 고대사와 한국문화’ ‘나의 아리랑 노래’ 같은 작품이 있다.”

김달수는 1919년 11월 경상남도 창원군 내서면 호계리 구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병규, 어머니 손복남 사이에서 태어난 4남매 중 셋째아들. 위로 여섯 살 많은 성수, 두 살 많은 양수, 그리고 여동생 면수가 있었다.

중농의 아버지는 큰아들 성수를 4km 떨어진 내서면 공립보통학교에 보내고 양수와 달수는 서당에 보냈다. 당시 농촌 형편에 보통학교 학비는 꽤나 부담스러웠다. 구미동에서 보통학교에 다닌 건 성수와 또 다른 한 명, 둘뿐이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 집 우(宇) 집 주(宙) 넓을 홍(洪) 거칠 황(荒)….”

달수가 네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천자문의 첫머리다.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간 父子

서른 살의 아버지는 한량이었다. 마산의 기생집에서 주색잡기로 소일했다. 전답을 날려가면서 유흥삼매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10년 한일강제합방이 되자 나라 잃은 청년이 미래를 자포자기했던 것이었을까.

1925년 아버지가 가산을 완전히 탕진해 집마저 차압당해 빼앗기게 됐다. 패가망신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성수, 누이동생 면수를 데리고 사촌이 먼저 이주해 살던 일본으로 향했다.

달수와 양수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빈손으로 가는 일본행이라 식구를 줄이는 것이 안전했다. 할머니가 고향을 지키며, 두 손자를 데리고 먹여 살리는 책임을 졌던 것이다. 그러나 양수는 빈궁한 살림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영양실조나 폐결핵으로 추정되지만, 의사를 찾아가 진찰받을 돈이 없었다. 달수는 형이 병명조차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헤어진 3년 뒤인 1928년 아버지도 도쿄에서 사망했다. 객지의 토목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병이 들었으나 의사를 찾아볼 여력이 없었다. 아버지도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비참하게 세상을 떴다. 친척이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와 고향 선산에 묻었다. 돈이 없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아버지였다.

1930년 열 살이 되던 해, 달수는 일시 귀국한 형 성수를 따라 도쿄로 향했다.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下關)까지 가고 거기서 기차로 도쿄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관부연락선에서부터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 일본사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유롭게 타고 내렸다. 하지만 같은 ‘일본 국민’이라고는 해도 한국인은 경찰이 발부하는 ‘도항증명서’ 혹은 ‘일시 귀국증명서’가 없으면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증명서가 있어도 한국인에게는 여러 가지 조사 절차가 따라붙어 일본인이 모두 승선한 뒤에야 배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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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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