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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도의 한국혼 ⑩

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야만의 왜인들에 사람의 도리 가르치다

  •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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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진영은 고금의 책을 폭넓게 읽어 학식이 풍부했다. 고된 농노생활을 하다 풀려나 글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었는데, 새 통치자 요리노부에게 정중하게 번정 건의문을 올렸다가 존경받는 시강(侍講)이 된다. 끝내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책과 원고는 장남 매계를 유신(儒臣)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매계는 일본인의 교육헌장이나 다름없는 ‘부모장’을 만들어 이름을 날렸다.
와카야마 유학의 비조(鼻祖) 이진영 父子

이진영·매계 부자를 기리는 현창비. 1998년 합천 이씨 종친회와 와카야마시가 공동으로 오카 공원에 세웠다.

오사카에서 와카야마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유명한 와카야마성(和歌山城)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성 바로 아래 오카(岡)공원에 들렀다. 오사카총영사관의 정화태 총영사가 귀띔해준 대로다. 정 총영사는 “‘이진영’을 취재하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세요” 하고 가르쳐줬다.

큰길가에 우뚝 선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진영 매계 현창비(李眞榮 梅溪 顯彰碑).’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왔다가 끝내 일본의 흙이 된 조선 선비 이진영과 그의 아들 이매계를 기리는 비석이다. 높이 2m가 넘는, 현대식 디자인의 석비다. 뒷면에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 이상희 전 건설부 장관을 비롯한 합천 이씨 종친들의 이름이 보인다. 1998년 7월 종친들과 와카야마시가 협력해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이진영. 귀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 섬나라에서 이울고 만 삶. 그의 이루지 못한 귀향을 생각하니 문득 강항(姜沆)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비가 한번 지나고 나면(春雨一番過)돌아가고 싶은 마음 한층 더 하네(歸心一倍多)언제께나 우리 집 담장 밑 돌아가(何時短墻下)내가 심었던 꽃 다시 볼까나(重見手栽花)

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던 선비 강항이 지은 시다. 전남 영광이 고향인 강항은 1597년 남원성 전투때 납치됐다가 요행히 3년 만에 귀향했다. 그는 일본에서 겪은 일을 ‘간양록(看羊錄)’으로 남겼다. 이진영은 강항 같은 행운을 잡지 못했다. 임란이 끝나고 조선 정부가 피랍자 송환을 위해 쇄환사(刷還使)를 보냈지만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와카야마성에 올라가 본다. 천수각의 맨 위층에 이진영의 아들, 매계의 ‘가르침’이 걸려 있다. 과연 이진영과 매계 부자가 이 지역 유학의 비조(鼻祖)로 일컬어지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매계가 설파한 ‘부모 모시는 글(父母壯)’이다.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법도를 지키며, 염치와 겸손을 제일로 중시해야 하는 것, 정직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좀더 다짐하기 위해서는 항상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 옳다.’

이 짤막한 글은 에도 시대 일본인들의 자녀교육지침이 되었다. “메이지 천황 시절인 1890년 교육칙어가 나오기 전까지, ‘부모장’이야말로 일본인의 ‘교육헌장’이었다”고 전해온다.

지옥보다 처참한 납치

이진영은 1571년 지금의 경남 창녕군 계성면 명리의 영취산 서쪽 산기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공제(李公濟)는 진사였다. 합천 이씨 집성촌인 이 마을은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꽤 여럿일 정도로 면학의 기풍이 잡힌 곳이었다.

어린시절 이진영은 ‘천자문’ ‘동몽선습’, 그리고 ‘소학’ ‘사서삼경’에 이르기까지 한학을 두루 배웠다. 소년시절에는 주역(周易)도 깊게 배워 나름대로 괘(卦)를 빼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목표는 과거 시험이었을 것이다.

이진영이 22세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592년 4월 1만8700명의 왜병이 대마도에서 병선을 타고 와 부산성을 급습한 것이다. 진영은 의병장 곽재우 휘하에 의병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그러다 진주성 전투 때 수비군으로 가담해 싸우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 아사노 유키나가 부대의 포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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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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