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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진실

  • 김기정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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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진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경복궁 근정전엔 일장기가 걸렸다.

[9월30일 주미대사관에 대한 국회 외교통상위 국정감사에서 재연된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한미 과거사 논란으로 번졌다. 최성 의원(열린우리당)이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미국민에게 여러 가지 오해와 서운함을 안겨준 데 대해 여당 의원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며 질의를 시작하자 같은 당 김원웅 의원은 미국측의 반응을 이해한다면서도 “100년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미국측의 역사적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한 것. 이에 대해 박계동 의원(한나라당)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갖고 미국이 (한반도의) 식민지화 과정에 악역을 했다는 주장은 재고해야 한다”고 반박함으로써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존재 여부와 일본의 한반도 병탄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놓고 역사 논란이 제기됐다.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해줌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과연 존재했던 조약인가. 아니면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가공(架空)의 산물인가.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 분단과 6·25전쟁, 냉전의 근본원인으로 간주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정체를 알아본다.]

1905년7월27일, 미국 육군성(국방부의 전신) 장관인 윌리엄 태프트는 일본 도쿄를 방문해 가쓰라 다로(桂太郞) 수상과 장시간 회담을 했다. 1924년에야 그 내용과 실체가 알려진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 회담의 산물이다. 도대체 밀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밀약과 관련해 어떤 점이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우선, 1905년 7월의 동북아 국제정치 상황부터 살펴보자. 1904년 2월 발발한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두 강대국이 벌인 일전이었다. 일본은 1905년 초,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러시아 점령하의 뤼순(旅順)을 함락시켰고, 3월에는 펑톈(奉天·지금의 선양)의 육전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그해 5월 동해상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러시아의 발틱함대까지 전멸시킴으로써 마침내 전쟁의 승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은 러시아는 물론, 일본 또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외교적 협상 구도를 미국을 통해 모색하고 있었고, 따라서 미국의 협조는 불가결했다. 우선 절실했던 것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권을 관련 열강으로부터 확인받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본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명한 나라가 미국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 배경에서 탄생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당시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대해 일본이 어떤 공세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는 점, 둘째 일본측의 일본-영국-미국 ‘비공식 동맹’ 제안에 대해 태프트는 미국이 의회의 승인 없이 ‘조약적 의무’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점, 셋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일본의 의견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회담 내용의 일부는 1905년 10월 일본 신문 ‘고쿠민(國民)’ 지면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회담의 전체 내용은 1924년 미국 외교사학자 타일러 데넷에 의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일 비밀조약(Theodore Roosevelt’s Secret Pact with Japan)’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전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밀약’이라는 표현은 데넷의 글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韓-比 맞교환 가능성은 낮아

데넷의 논문에는 회담 직후 태프트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이 실려 있는데, 전문에 나타난 회담 내용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세 번째 사안이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문제와 관련해 가쓰라는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이는 일본에 실로 중대한 문제”임을 밝혔다. 또한 그는 “만약 전쟁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한국에 맡긴다면 한국은 또다시 다른 국가들과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상황을 재발시킬 것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모종의 확실한(definite)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내세운 논리, 즉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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